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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도가 떨어지면 폭발한다! 스피드(1994) 영화 리뷰

dreamobservatory 2026. 1. 23. 17:27

스피드-포스터
스피드 포스터

 만약 당신이 탄 버스가 시속 50마일 아래로 떨어지는 순간 폭발한다면, 가장 무서운 건 폭탄이 아니라 ‘멈추고 싶은 마음’일지도 모른다. 《스피드》는 단순한 추격전이 아니라, 한 도시의 일상을 인질로 잡고 초 단위로 관객의 맥박을 쥐락펴락하는 영화다. 엘리베이터와 고속도로, 그리고 달리는 버스라는 제한된 공간을 무대로 삼아 다음 장면이 아니라 바로 다음 10초를 기다리게 만든다.

개봉: 1994
감독: 얀 드봉
장르: 액션, 스릴러
출연: 키아누 리브스, 산드라 블록, 데니스 호퍼
평점: 메타크리틱 78점 / 로튼토마토 신선도 95%

멈추는 순간, 모든 게 끝난다

 LAPD 폭발물 처리반 출신의 테러리스트 하워드 페인(데니스 호퍼)은 돈을 요구하며 도심 곳곳에 폭탄을 설치한다. 초반, 잭 트래번(키아누 리브스)이 엘리베이터 폭탄 사건을 가까스로 막아내자, 페인은 ‘개인적인 복수’의 톤으로 판을 키운다. 다음 표적은 더 잔인하고도 단순하다. 시내버스에 폭탄을 달아 시속 50마일 아래로 내려가면 폭발하도록 만든 것. 이 장치 하나로 버스는 곧바로 달리는 감옥이 된다.

 잭은 고속도로 위 버스에 뛰어올라 승객들을 진정시키고, 운전석을 사수하며, 경찰 무전으로 상황을 통제한다. 문제는 통제가 “완벽히” 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도로는 막히고, 승객은 공포로 흔들리고, 페인은 무전기 너머에서 여유롭게 다음 조건을 던진다. 이 와중에 뜻밖의 인물이 중심에 선다. 사고로 인해 운전대를 잡게 된 승객 애니(산드라 블록). 애니는 공포에 떨면서도 버스를 도로 위에 ‘붙들어두는’ 역할을 해낸다. 잭은 버스 밖에서, 애니는 버스 안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시간을 번다.

 영화의 유명한 고속도로 점프 장면은 영화의 비현실성을 지적하기보다 영화에 몰입하게 만든다. 잭은 공사 중인 구간을 정면 돌파하는 결정을 내리고, 버스는 잠깐의 공중 부양을 거쳐 착지한다. 승객들은 살아남지만, 페인은 곧바로 다음 국면으로 몰고 간다. 잭과 애니가 버스에서 탈출한 뒤에도 끝이 아니다. 페인은 애니를 인질로 잡아 지하철에 또 다른 폭탄을 장착하고, 잭을 마지막 게임으로 초대한다.

 마지막 추격은 지하철 터널에서 폭발과 쇳소리가 뒤엉킨 채 진행된다. 잭은 페인의 계산을 역이용해 그를 제압하고, 애니를 구해낸다. 질주는 그렇게, 속도의 승리가 아니라 판단력의 승리로 결말을 맺는다.

액션의 교과서가 된 질주

 《스피드》를 다시 보며 가장 인상적이었던 점은 편집 리듬의 정확함이었다. 이 영화는 액션을 “크게” 찍기보다 “끊어서” 몰아친다. 버스 내부의 동요, 잭의 외부 액션, 경찰 지휘본부의 상황 브리핑을 짧은 호흡으로 교차 편집해, 관객이 한 장면에서 숨 돌릴 틈을 얻기 전에 다른 장면으로 이송된다. 덕분에 속도감은 차량의 속력보다 편집의 템포에서 만들어진다. 그래서 나는 오랜만에 이 영화를 틀어놓고도 “잠깐만 보고 끄자”가 안 됐다. 장면이 끝날 때마다 바로 다음 액션이 긴박하게 나왔기 때문이다.

 연출은 공간을 읽는 방식에서 빛난다. 얀 드봉은 버스의 통로, 창문, 바닥 해치 같은 요소를 단순한 소품이 아니라 서스펜스 장치로 바꿔 놓는다. 승객들이 서로의 표정을 확인하는 컷과, 잭이 무전으로 외부 정보를 받아들이는 컷이 맞물리며 공포의 전달 경로가 생긴다. 여기에 롱 렌즈로 압축된 도로의 밀도, 상황을 급박하게 보이게 하는 푸시 인, 차량의 미세한 흔들림을 살린 촬영이 더해져 화면 자체가 불안정한 호흡을 갖는다. 특히 버스가 차선을 가르며 빠져나갈 때의 시점 샷은, 관객을 안전한 관찰자가 아니라 동승자로 바꿔 버린다.

 각본의 강점은 규칙을 일찍 제시하고, 그 규칙을 변주하며, 마지막에 뒤집는 구조다. “50마일 아래로 떨어지면 폭발”이라는 룰은 너무 단순해서 유치할 수 있는데, 영화는 그 단순함을 장점으로 사용한다. 관객도 룰을 즉시 이해하니, 서사를 풀어나가는 열쇠는 선택의 연속이다. 막히는 도로를 어떻게 통과할지, 승객의 패닉을 어떻게 다룰지, 한 번의 실수가 어떤 연쇄 폭발을 부를지. 나는 특히 애니가 운전대를 잡고 “나 운전 제대로 못 해요”라고 소리치던 순간이 오래 남는다. 그 장면은 히어로 서사의 멋있는 대사가 아니라, 위기 속에서 누구나 할 법한 솔직한 공포를 꺼내 놓고, 그 공포를 ‘행동’으로 바꾸는 과정을 보여준다.

 비평과 평점은 이 영화의 효율성을 증명한다. 로튼토마토는 신선도 95%로, 긴장감과 에너지, 배우들의 조합을 강점으로 꼽는다. 메타크리틱은 78점으로 ‘대체로 호평’ 쪽에 놓여 있다. 로저 이버트는 이 영화를 강한 흥분의 체험으로 평가하며 액션의 쾌감을 높이 샀다. 나는 그 평가에 고개가 끄덕여지면서도, 이 영화가 오래가는 이유가 액션만은 아니라고 덧붙이고 싶다. 잭과 애니의 관계가 과장된 로맨스가 아니라 “같은 공포를 공유한 사람끼리 생기는 신뢰”로 설계돼서, 관객이 액션 사이사이 숨을 쉬게 해주기 때문이다.

 《스피드》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음향상과 음향효과편집상을 수상했고, 편집상 후보에도 올랐다. 이건 ‘시끄러워서’가 아니라, 소리로 속도와 거리, 위험의 크기를 설계했다는 뜻에 가깝다. 실제로 버스 내부의 금속 진동, 도로 마찰음, 무전기의 거친 질감이 합쳐져 관객의 신체 감각을 흔든다. 또한 촬영 비하인드로는 유명 장면들이 여러 앵글과 트릭으로 ‘짧은 순간을 길게’ 느끼게 만들었다는 점이 자주 언급된다. 30주년 행사에서 배우들이 촬영 당시 실제 차량과의 충돌 장면이 꽤 생생하게 진행됐다고 회상한 이야기들도, 이 영화가 가진 물리적 현실감을 뒷받침한다.

위기는 사람을 드러내고, 관계를 남긴다

 《스피드》를 보고 나면 묘하게 현실적인 생각이 남는다. 재난 상황에서 영웅 한 명이 모두를 구한다는 판타지보다, “사람들이 어떤 방식으로 공포를 소비하고 전염시키는가”가 더 또렷이 보이기 때문이다. 버스 승객들은 누군가는 이기적으로 변하고, 누군가는 과잉 정의감을 내세우고, 누군가는 끝까지 질서를 지키려 한다. 영화는 그들을 평가하지 않고, 그냥 보여준다. 그래서 나는 이 영화를 볼 때마다 ‘나는 저 안에서 어떤 사람이 될까’라는 질문을 하게 된다.

 개인적으로 가장 큰 가치로 남는 건 “침착함은 성격이 아니라 기술”이라는 메시지다. 잭은 겁이 없어서 침착한 게 아니다. 상황을 쪼개서 판단하고, 다음 행동을 선택할 뿐이다. 애니도 마찬가지다. 처음엔 공포에 휩쓸리지만, 해야 할 일을 하나씩 처리하며 운전자의 자리에 적응한다. 이 영화가 내 일상에 던지는 힌트는 단순하다. 큰 문제 앞에서 ‘한 번에 해결’에 매달리면 공포가 커지고, 할 수 있는 단위를 찾아 움직이면 길이 열린다. 결국 속도보다 중요한 건, 멈추지 않게 만드는 작은 선택들의 연속이다.

 그래서 《스피드》는 90년대 액션이라는 시대감 속에서도 아직 유효하다. 디지털로 무엇이든 가능해진 시대에 오히려 이 영화는 “몸으로 찍힌 액션”의 설득력을 상기시킨다. 그리고 한 번 더, 묻는다. 삶이 폭주하는 날이 오더라도, 나는 내 속도를 내가 정할 수 있을까. 적어도 이 영화는 대답을 강요하지 않는다. 다만 버스의 엔진 소리처럼, 선택의 타이밍을 계속 들려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