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양 전쟁의 판도를 바꾼 역사적인 해전 영화 미드웨이(2019) 리뷰

승패를 가른 것은‘용기’보다 먼저 도착한 ‘정보’였다. 《미드웨이》는 태평양 전쟁의 흐름을 바꾼 단 한 번의 해전을, 항공모함 갑판 위의 땀 냄새와 무전기의 잡음까지 붙잡아가며 되살린다. 진주만의 잿빛 연기에서 시작해, 암호 해독실의 침묵과 조종석의 떨림을 거쳐, 하늘에서 떨어지는 급강하 폭격의 각도로 역사가 바뀌는 순간까지. 영웅담으로만 밀어붙이지 않고 양측 지휘부의 현명함과 오판을 교차시키며, 미국과 일본, 더 나아가 전세계의 흐름을 바꾼 역사적인 해전의 전말을 보여준다.
개봉: 2019
감독: 롤랜드 에머리히
장르: 전쟁, 역사, 드라마
출연: 에드 스크레인, 패트릭 윌슨, 루크 에번스, 우디 해럴슨, 애런 에크하트, 닉 조나스, 덴니스 퀘이드 외
평점: 메타크리틱 47점 / 로튼토마토 신선도 42퍼센트, 관객 점수 92퍼센트
암호문 한 줄이 바꿔버린 하늘의 방향
영화는 진주만 공습의 충격을 전면에 두고 출발한다. 불타는 전함과 뒤엉킨 비행장, 희생당한 동료의 넋을 기릴 시간조차 없다. 미군 지도부는 한시라도 빨리 일본군의 다음 타겟이 어디인지 알아야한다. 이때부터 《미드웨이》는 전선의 총탄만큼이나, 책상 위 전황도와 암호표가 무섭게 돌아가는 전쟁을 보여준다. 정보장교 에드윈 레이턴이 암호 해독팀과 함께 ‘다음 목표’를 추적하는 장면들은, 액션의 속도를 잠깐 눌러두고 서스펜스를 쌓는다. 적이 오기 전에 알아채는 전쟁. 그게 가능하냐는 의심이, 회의실과 무전실을 돌며 점점 확신으로 바뀐다.
일본의 기습으로 미국의 분노가 극에 달했을 때, 병사들의 사기를 올리고 국민들에게 희망을 줄 승전보가 필요하다. 둘리틀 중령이 이끄는 둘리틀 특공대는 일본 도쿄에 공습을 가하고 중국에 착륙한다. 천황이 있는 도쿄가 공습당한 일본은 충격에 빠지지만 승기를 가져오기엔 미미하다. 태평양의 패권을 결정할 영화같은 승리가 필요하다.
태평양에서 양국의 운명을 가른 결전을 준비중인데 워싱턴 DC의 국방부 장성들과 하와이의 정보팀의 의견이 다르다. 니미츠 제독은 정보팀의 의견을 수용해 미드웨이에서의 격전을 준비한다. 미군은 기습하는 입장이지만 일본군에 비해 열세인 전력에 초반에는 전투에 부진한다. 하지만 결정적인 5분에 양국의 운명이 완전히 뒤바뀌게 된다.
결전 파트는 구조가 명확하다. 첫째, 어긋나는 타이밍 속에서 공격편대가 흩어진다. 둘째, 폭격기는 목표를 찾지 못한 채 연료가 바닥을 친다. 셋째, 누군가는 내려가고 누군가는 올라간다. 고공의 급강하 폭격대가 적 항모를 찾아내는 순간, 영화는 편집의 리듬을 확 바꿔 ‘발견’의 쾌감을 터뜨린다. 불길이 치솟는 갑판, 연쇄 폭발, 바다로 추락하는 기체. 승리는 한 번에 오지 않고, 우연과 선택이 겹치며 겨우 손에 잡힌다. 마지막엔 살아남은 이들이 전우의 부재를 확인하며 전장을 정리하고, 이 승리가 “전쟁의 끝”이 아니라 “흐름의 전환”이었음을 남긴다.
스펙터클의 카메라, 인간의 표정을 끝까지 쫓을 수 있을까
내가 《미드웨이》를 보면서 가장 먼저 체감한 건, 롤랜드 에머리히가 전쟁을 ‘재난 영화의 스케일’로 번역한다는 점이었다. 항공모함이 움직일 때 화면은 거대한 질량감을 강조하고, 공중전에서는 렌즈가 비행기를 “그럴듯한 무게”로 믿게 만든다. 실제 촬영이든 디지털이든, 관객이 체감하는 건 속도와 거리의 감각인데, 이 영화는 그 감각을 과감하게 밀어붙인다. 덕분에 급강하 폭격 장면에서 나는 무의식적으로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조종석 시점이 길게 이어질 때는, 스로틀을 당기는 손과 계기판의 떨림이 묘하게 현실처럼 붙어온다.
기술적으로는 디지털 합성이 전면에 서 있는 영화다. 항모 전단과 해상 전투는 대규모 VFX가 아니면 재현이 어렵고, 영화는 그 한계를 숨기기보다 “보여줄 건 크게 보여주자”는 쪽에 가깝다. 로튼토마토의 평론가 종합 코멘트도 비슷한 결을 짚는다. “현대적 특수효과와 더 균형 잡힌 관점으로 익숙한 이야기를 되짚지만, 각본은 완전히 준비되지 않았다”는 평이다. 이 말이 정확히 와닿았던 지점이 있다. 전투의 박력은 분명한데, 인물의 서사가 장면 사이를 건너뛰며 연결될 때가 있다. 어떤 인물은 소개되자마자 전장으로 밀려 들어가고, 감정의 축적은 관객이 알아서 메워야 하는 순간이 생긴다.

반대로, 스펙터클 자체에 집중하는 관객이라면 만족도가 높아질 만하다. 실제로 로튼토마토 관객 점수는 높게 형성돼 있고 , 메타크리틱에서도 평단 평균은 ‘혼재’로 표시된다. 평가가 엇갈린 이유는 이 작품이 전쟁의 복잡한 윤리와 내면극보다는, “결정적 3일”을 관객의 몸으로 통과시키는 쪽에 집중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인상적인 건, 영화가 ‘사람이 만든 판단의 연쇄’에 집요하게 매달린다는 점이다. 암호 해독 파트는 전투 장면의 속도감과 다른 온도를 갖고 있고, 양측 지휘부를 교차해 보여주며 전쟁을 단선적인 영웅담으로 고정하지 않으려 한다. 제작 과정에서 미 해군의 역사 기관이 자문과 협조를 했다는 대목도, 이런 방향성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수상 실적 면에서는 대형 시상식을 휩쓴 작품은 아니지만, 젊은 배우 부문 후보에 오른 기록처럼, 이 영화의 가치는 “압도적 재현”과 “대중적 체험” 쪽에 놓여 있다. 어떤 평은 효과의 수준을 높게 보기도 한다. 메타크리틱에 인용된 한 리뷰는 효과가 스펙터클하고 현실적으로 보인다고 짚는다. 나는 여기에 한 줄을 보태고 싶다. 이 영화의 공중전은 ‘아름답게’ 찍히기보다 ‘위험하게’ 찍히려 한다. 그 선택이야말로 《미드웨이》가 가진 가장 솔직한 미학이다.
전쟁 영화가 남기는 질문, 내 일상에도 적용되는가
《미드웨이》를 보고 난 뒤 오래 남는 건 “대단했다” 같은 감탄보다, ‘어떤 선택이 결과를 바꾸는가’라는 질문이다. 미드웨이 해전의 핵심은 결국 제한된 정보 속에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사람들이다. 확신이 아니라 확률에 걸어야 하고, 타이밍을 놓치면 기회가 증발한다. 나는 그 감각이 지금의 일상과 꽤 닮아 있다고 느꼈다. 준비가 완벽해진 다음에 움직이겠다는 마음은 편하지만, 현실은 늘 기한과 변수의 싸움이다. 영화 속 인물들이 하는 건, 공포를 없애는 일이 아니라 공포를 안고도 판단을 실행하는 일이다.
또 하나. 이 영화는 ‘한 사람의 영웅’보다 ‘연결된 역할’이 성패를 만든다고 말한다. 해독실의 분석, 지휘부의 결심, 조종사의 실행이 한 줄로 이어질 때만 결과가 나온다. 보고 나서 나는 내 생활도 비슷하게 재정렬해봤다. 결과를 바꾸는 건 의욕의 크기보다, 정보 수집과 실행의 루틴이 연결돼 있는지 여부라는 것. 영화가 전쟁을 통해 보여준 시스템의 논리는, 이상하게도 내 책상 위 일정표까지 조용히 건드렸다.
그래서 《미드웨이》는 역사 재현 영화이면서 동시에 ‘결정의 영화’로 읽힌다. 거대한 사건을 다루지만 메시지는 의외로 소박하다. 준비하고, 확인하고, 그리고 지금 할 수 있는 한 번을 실행하라. 하늘이 열리는 순간은 늘 예고 없이 오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