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폐화된 지구를 살려라, 21세기 가장 위대한 애니메이션 월-E(2008) 리뷰

먼 미래, 지구는 황폐해지고 인류는 종적을 감추었다. 쓰레기만 남은 지구에서 작은 로봇 하나가 끊임없이 정화 작업을 실시한다. 그러던 중 우주에서 날라온 흰 색 로봇 이브를 만나게 되고 우여곡절 끝에 우주로 날라가버리는데, 월-E는 과연 지구를 정화하는 임무를 완수할 수 있을까?
개봉: 2008
감독: 앤드루 스탠턴
장르: 애니메이션, SF, 로맨스
출연: 벤 버트, 엘리사 나이트
평점: 메타크리틱 95점 / 로튼토마토 신선도 95%
쓰레기장이 되어버린 지구
월-E의 하루는 단순하다. 쓰레기를 압축하고, 큐브로 쌓고, 태양광으로 충전하며 다음 날을 준비한다. 그러나 월-E는 정해진 작업만 수행하는 단순한 로봇이 아니다. 오래된 비디오테이프를 반복해 보고, 잡동사니를 수집하고, 바퀴벌레를 애완동물 처럼 키운다. 월-E는 평범한 로봇이 아닌 마치 인간처럼 취향과 감성을 가진 것이다. 평소처럼 쓰레기를 압축해 버리고 잡동사니를 모으던 일과를 반복하던 중 식물을 발견한다.
그러던 어느 날, 하늘에서 하얀 우주선이 내려오고 이브가 등장한다. 호기심 가득한 월-E는 이브에게 다가가 보지만 이브는 월-E를 적으로 인식해 공격하고 만다. 그러나 월-E는 이브에게 다가가고자 끊임없이 노력하고 이브도 결국 월-E에게 마음을 열게된다. 월-E는 이브를 자신의 아지트로 데려와 자신이 모은 잡동사니들과 영화를 보여준다.
월-E는 이브에게 자신이 발견한 식물을 보여주는데 이브는 식물을 발견하자 임무 모드로 전환되고, 정지 상태에 들어간다. 월-E는 이브가 갑자기 정지 모드가 된 영문을 모르지만 계속해서 이브의 곁을 지켜준다. 그러던 중 이브를 데리러 온 귀환선이 지구에 도착하고 얼떨결에 월-E도 이브와 함께 지구를 떠난다.
우주선을 타고 그들이 도착한 곳은 인류가 머무는 우주선 액시엄이다. 이곳의 인간들은 걷지 않는다. 모든 행동은 자동화된 의자 위에서 이뤄지고, 옆사람과 대화조차 하지 않고 화면을 통해서만 소통한다. 이브가 식물을 가져왔다는 소식은 엑시엄호의 선장에게 전해지고 선장은 지구로의 귀환을 준비한다.
그러나 몇백년전 지구로의 귀환은 영원히 취소한다는 명령을 들은 로봇이 반란을 일으켜 선장을 감금하고 식물을 우주공간으로 버리고 만다. 하지만 난생 처음 두 발로 일어서 로봇에 맞선 선장의 용기와 월-E와 이브의 기지로 식물을 다시 가져오고 엑시엄호는 마침내 인류의 고향, 지구로 귀환한다.
인간, 다시 일어서다
《월-E》를 여러번 돌려보며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이 영화가 굉장히 정교한 연출 위에 세워져 있다는 것이다. 픽사는 월-E의 눈동자 각도, 고개를 기울이는 속도, 바퀴가 멈칫하는 타이밍까지 계산해 감정을 설계한다. 이는 무성영화 시대의 연기 방식과도 닮아 있다. 찰리 채플린의 슬랩스틱처럼, 대사가 아닌 움직임과 시선으로 감정을 전달한다.
촬영 기법 역시 인상적이다. 실제 렌즈의 심도 표현을 흉내 낸 가상 카메라, 핸드헬드 촬영을 연상시키는 미세한 흔들림, 자연광에 가까운 조명 설계는 마치 애니메이션이 아닌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착각이 들게 한다. 특히 지구 장면에서의 색감은 의도적으로 채도를 낮춰, 폐허의 이미지를 전달한다. 반대로 액시엄 내부는 과도하게 밝고 깨끗해, 오히려 불편함과 어색함을 유발한다.

영화에 환경을 보호해야 한다는 직접적인 대사는 없다. 대신 환경 파괴의 결과만을 보여준다. 지구는 황폐해져 생명의 흔적을 찾을 수 조차 없고 인간은 스스로 걷는 능력마저 상실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오히려 인간처럼 감성을 갖고 사색하며 자연을 사랑하는 존재는 로봇이다. 실제로 많은 평론가들이 《월-E》를 두고 픽사의 가장 정치적인 영화라고 평가했는데, 개인적으로는 그 정치성이 간접적인 시선에서 나온다는 점이 더 인상 깊었다.
로저 이버트는 이 영화를 “침묵 속에서도 완벽히 이해되는 이야기”라고 평했다. 그 말에 깊이 공감한다. 대사가 적다는 것은 설명을 포기했다는 뜻이 아니라, 관객이 스스로 감정을 떠올리게 하려는 의도이다. 영화는 해석의 여지를 남기고, 그 여백을 관객의 경험으로 채우게 만든다. 나 역시 월-E가 이브의 손을 잡으려다 망설이는 장면에서,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을 느꼈다. 기계의 몸을 하고 있지만, 그 순간만큼은 누구보다 인간다웠다.
엔딩에서 인간들이 다시 걷기 시작하는 장면은 덤덤하게 희망을 전한다. 완벽한 복구가 아니라, 다시 시도해보겠다는 선언에 가깝다. 월-E와 이브가 식물 옆에 서 있는 마지막 컷은, 미래가 이미 정해진 것이 아니라 선택의 결과임을 다시금 일깨워 준다. 월-E는 장편 애니메이션 부문 아카데미상과 골든 글로브 애니메이션 상 외 다수의 상을 수상했으며 롤링 스톤, 뉴욕타임스, BBC선정 21세기 100대 영화에 선정되었다. 영화를 보고나면 각본, 연출, 음악까지 완벽에 가장 가까운 애니메이션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우리는 인간다운 삶을 살고 있는가?
《월-E》는 아이들을 위한 애니메이션처럼 보이지만, 감상 후 전해지는 감정은 어른을 위한 것이다. 편리함에 익숙해진 삶, 관계를 화면으로 대체한 일상, 움직이지 않는 되는 사회. 이 모든 것 위에서 《월-E》는 묻는다. 우리는 인간답게 살고 있는가. 영화를 보고난 후 내 삶을 돌아보았다. 나 역시 엑시엄 호의 인간들에 가까운 삶을 살아왔을지도 모르겠다. 언제부턴가 타인과 얼굴을 보며 대화하고 자연을 만끽하며 걷는 시간보다 의자에 앉아 화면을 바라보는 시간이 더 많아진 것 같다.
이제부터는 월-E처럼 인간다운 삶을 살아보아야겠다. 밥 먹을 때 핸드폰 화면 대신 친구, 가족의 얼굴을 보며 정겨운 대화를 나누고 쉬는 시간에 핸드폰 영상을 보기보다 햇살을 맞으며 산책하는 습관을 들여야겠다. 우리는 AI와 로봇에 일자리를 빼앗기는 것을 걱정한다. 하지만 우리가 가장 두려워해야 하는것은 기술의 진보가 가져온 안락함 속에서 인간성을 잃는 것이다. 엑시엄호의 사람들이 월-E와 이브의 도움으로 인간성을 회복했듯이 우리도 이 영화를 계기로 인간다운 삶을 되찾길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