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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로 흐르는 삶, 앞으로 사는 용기|〈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2008)> 리뷰

by dreamobservatory 2025. 9. 2.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한국판 공식 포스터

데이비드 핀처 감독의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는 F. 스콧 피츠제럴드의 동명 단편소설을 원작으로 하여, 2008년에 개봉한 판타지 드라마 영화다. 영화를 끝까지 보지 않은 사람은 단순히 노인으로 태어나 시간이 거꾸로 가는 남자의 아야기라고 알겠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삶의 유한함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살아가야 하는가라는 철학적인 질문을 우리에게 던진다.

인생은 분으로 재지 않는다. 순간으로 재는 것이다

영화는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뉴올리언스를 강타하던 시점으로 시작한다. 병상에 누운 데이지(케이트 블란쳇)는 죽음을 앞두고 딸 캐롤라인에게 한 남자의 일기를 읽어 달라고 부탁한다. 그 일기의 주인공이 바로 벤자민 버튼이다.

노인의 모습으로 태어난 벤자민

벤자민은 1918년 제1차 세계대전 종전일, 노인의 외모와 신체 조건으로 태어난다. 노인의 모습을 한 아들에 충격을 받은 친부는 그를 버리고, 양녀 퀴니(타라지 P. 헨슨)의 손에서 자라난다. 의사들은 오래 살지 못할 것이라 예견했지만, 벤자민은 점점 나이를 거꾸로 먹으며 성장한다.

어린아이의 정신을 가진 노인으로 요양원에서 자라던 그는, 그곳을 찾은 어린 소녀 데이지와 만나 운명적인 인연을 맺는다. 시간이 흐르며 벤자민은 신체적으로 젊어지고, 데이지는 나이 들어가며 둘은 엇갈리지만 결국 사랑을 이어간다.그러나 시간은 잔인하다. 서로의 나이가 교차하는 짧은 순간, 둘은 진정한 사랑을 나누지만 결국 다시 어긋난다. 데이지는 무용수로 삶을 살아가고, 벤자민은 세계를 떠돌며 자신만의 시간을 보낸다.

영화의 후반부에서 벤자민은 아기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데이지는 노년의 모습으로 그를 돌보다가 결국 품에 안긴 채 숨을 거두는 벤자민을 지켜본다. 데이지가 죽음을 앞두고 회상하는 벤자민의 삶은, 시간의 방향과 상관없이 인간의 삶이 결국은 소중하고 덧없음을 보여준다.

삶은 뒤돌아볼 때 이해되지만, 살아내는 건 언제나 앞으로다

이 영화는 단순한 판타지가 아니다. ‘거꾸로 흐르는 시간’이라는 기묘한 장치를 통해, 인생이란 결국 피할 수 없는 소멸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임을 극적으로 드러낸다.

내가 이 영화를 통해 가장 크게 느낀 점은, 삶의 소중함은 시간의 길이가 아니라 순간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벤자민은 원치 않는 운명을 타고났지만, 그것을 탓하지 않고 묵묵히 받아들인다. 그는 병약한 노인으로 시작했지만, 점차 젊어지며 세상을 여행하고, 사랑을 하고, 딸을 낳는다. 그는 자신의 운명이 불가피하게 사랑을 파괴할 것임을 알면서도, 그 순간만큼은 충실하게 살아낸다.

이는 곧 우리 삶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누구나 원치 않는 사건이나 시련을 맞닥뜨리지만, 중요한 것은 그것을 부정하거나 회피하기보다 결과를 받아들이고 앞으로 나아가는 자세다. 벤자민처럼 말이다.

비평가들도 이 점에 주목했다. 뉴욕 타임스는 영화가 “시간의 흐름과 죽음의 불가피성을 낭만적이고 우울하게 동시에 묘사했다”고 평했으며, 롤링스톤은 “사랑과 상실을 통한 인생의 은유”라고 해석했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평가에 동의한다. 단지 특수효과로 점철된 기이한 설정이 아니라, 오히려 더 인간적인 삶의 이야기였다.

무엇이 되었든, 당신이 원하는 사람이 되기엔 결코 늦지 않다

영화는 피츠제럴드의 1922년 단편소설을 원작으로 하지만, 상당히 다른 결을 가진다. 원작 속 벤자민은 풍자적 캐릭터에 가깝다. 그는 나이를 거꾸로 먹으며 사회적 규범과 부조리를 드러내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영화는 그 풍자를 서정적 멜로로 변주했다. 핀처 감독은 원작의 아이디어를 빌려왔을 뿐, 인생과 사랑, 죽음의 성찰을 담은 완전히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냈다.

벤자민의 삶은 ‘죽음을 향해 젊어지는’ 기묘한 궤적을 그리지만, 사실상 우리와 다르지 않다. 결국 누구나 태어나고, 사랑하고, 늙고, 죽는다. 단지 그 순서가 바뀌었을 뿐이다. 이 영화는 시간의 방향이 바뀐다고 해서 삶의 본질이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내가 생각하는 영화의 메시지는 명확하다. 삶은 언제나 예기치 못한 사건으로 가득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주어진 시간을 받아들이고 살아가야 한다. 사랑이든 상실이든, 기쁨이든 고통이든 결국 그것이 우리의 인생을 만든다.

어떤 이들은 강가에 앉으러 태어나고, 어떤 이들은… 춤추기 위해 태어난다.

일부 평론가들은 이 영화를 지나치게 느리고 감상적이라 비판하기도 했다. 가디언은 “지나친 서정성이 영화의 긴장감을 해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많은 관객과 평론가들은 오히려 그 느린 호흡 속에서 삶의 소중함을 더 깊이 체험했다고 말한다. 결말에서 데이지의 고백을 제외하면 영화는 큰 반전 없이 일정한 흐름으로 전개된다. 감독은 관객들이 벤자민의 삶을 바라보며 자신의 삶을 되돌아볼 시간을 갖게끔 하고자 했던 것이 아닐까.

벤자민 버튼(브래드 피트 분)과 데이지(케이트 블란쳇 분)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는 단순히 ‘시간이 거꾸로 흐르는 남자’의 기묘한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곧 삶의 덧없음과 소중함에 대한 비유다. 우리는 누구나 원치 않는 상황을 맞닥뜨린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순간을 어떻게 이겨내는가다. 벤자민은 묵묵히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며, 짧게나마 사랑과 행복을 경험한다. 이는 우리에게도 삶을 대하는 자세를 일깨워 준다. 어차피 삶의 종착지는 죽음일텐데 우리는 왜 그렇게 고통받고 발버둥치며 살아갈까.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동안 세상을 탐험하고, 다양한 사람을 만나며 그들을 진심으로 사랑할것. 영화는 벤자민의 삶을 빌려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다시 영화는 관객에게 묻는다. “당신은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삶의 소중함을 되새기며, 나는 이 영화를 단순한 판타지가 아니라 삶과 사랑에 대한 철학적 성찰로 기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