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봉: 2018년
감독: 피터 패럴리
장르: 드라마
출연: 비고 모텐슨, 마허샬라 알리, 린다 카델리니
평점: 메타크리틱 69점 / 로튼토마토 신선도 94%
《그린북》은 1960년대 인종 차별이 짙게 드리워진 미국 남부를 배경으로, 서로 다른 세계에서 온 두 남자의 여정을 그린 실화 기반의 감동 드라마다. 거칠지만 따뜻한 운전사 토니와 고결하고 고독한 피아니스트 셜리 박사가 함께 떠나는 투어는, 차별과 편견의 벽을 넘어 진정한 인간애와 신뢰로 이어진다.
편견의 도로 위를 함께 달리다
1962년 뉴욕 브롱크스의 클럽 경비원 토니 발레롱가, 일명 ‘토니 립’은 가족을 위해 일하며 살아가는 평범한 이탈리아계 남성이다. 그의 일상은 소박하지만, 한 통의 제안으로 흔들린다. 흑인 피아니스트 돈 셜리 박사가 남부 순회공연을 위해 운전사를 찾고 있었던 것이다. 서로 다른 세계에 속한 두 남자의 만남은 처음부터 어색하고 불편했다.
토니는 직설적이고 세속적이며, 셜리는 예술과 품위를 중시하는 완벽주의자다. 차 안은 좁았지만, 그 안에서 두 사람의 간극은 훨씬 넓었다. 그러나 여행이 길어질수록, 차별이 일상화된 남부의 현실 속에서 그들은 조금씩 서로를 이해하기 시작한다. 서로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견뎌왔던 두 사람은 결국 같은 인간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여행 중 셜리는 숱한 차별을 마주한다. 연주회장에서는 천재로 칭송받지만, 무대 아래에서는 식당조차 이용할 수 없었다. 흑인 전용 숙소를 찾아야 했고, ‘그린북’이라 불리는 여행 안내서를 의지해야 했다. 토니는 그런 현실을 보며 서서히 분노와 부끄러움을 느낀다. 그는 셜리를 단순한 고용주가 아닌 친구로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비 오는 밤, 경찰의 부당한 단속에 셜리가 체포될 위기에 처하자, 토니는 주저하지 않고 나선다. 그 순간부터 둘은 운전사와 주인의 관계를 넘어선 동반자가 된다. 서로에게 의지하며, 차별의 도로 위를 함께 달리는 두 남자의 여정은 그렇게 이어진다.
신뢰와 존중이 만들어낸 인간의 음악
《그린북》이 빛나는 이유는 거창한 사건보다도 인간의 변화에 있다. 토니는 처음엔 무심한 농담으로 셜리를 상처 입히던 인물이었지만, 여행을 통해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고, 진심으로 존중하는 사람으로 성장한다. 반대로 셜리는 냉철하고 외로웠던 마음을 서서히 열며 인간적인 따뜻함을 되찾는다.
셜리 박사는 인종차별에 맞서 싸우되, 폭력 대신 ‘음악’으로 저항한다. 그는 건반 위에서 품격과 자존심으로 자신을 증명한다. 백인 상류층의 시선 속에서도 당당하게 연주하며, 예술이야말로 편견을 넘어설 수 있는 힘임을 보여준다. 그의 음악은 단지 아름다운 선율이 아니라, 침묵의 항의이자 인간 존엄에 대한 선언이다.
토니와 셜리의 관계는 점점 가족처럼 변해간다. 피로 맺어진 인연이 아닌, 이해와 신뢰로 엮인 새로운 형태의 가족이다. 특히 토니가 셜리에게 ‘치킨은 손으로 먹는 법’을 가르쳐주는 장면은 두 사람의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 순간, 차별과 품격의 벽이 허물어지고, 두 사람은 진짜 친구가 된다.
당신의 마음을 움직이는 가장 따뜻한 여정
《그린북》은 인종과 신분, 문화의 벽을 넘어 인간의 존엄을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셜리 박사의 품격과 토니의 인간미는 서로의 결핍을 메우며 함께 성장한다. 이 영화는 옳고 그름을 따지기보다, 따뜻함을 선택하는 용기를 보여준다. 진정한 우정은 거창한 약속이 아니라, 작은 이해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전한다.

도로 위에서 싹튼 그들의 신뢰는 ‘인간이 인간을 믿는 법’을 다시 가르쳐준다. 피터 패럴리 감독은 코미디와 드라마의 균형을 절묘하게 맞추며, 현실의 부조리를 웃음으로 넘긴다. 그래서 《그린북》은 눈물보다 미소로 기억되는 영화가 된다. 편견의 시대를 사는 지금, 그 메시지는 여전히 유효하다.
마지막 장면에서 토니의 가족이 셜리를 맞이하는 장면은 잔잔하지만 강렬한 여운을 남긴다. 그들이 도착한 곳은 남부의 마지막 공연장이 아니라, 서로의 마음이었다. 그 여정의 끝에서 우리는 깨닫는다. 피부색이 달라도 서로를 믿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진실한 친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