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데이비드 핀처
장르: 스릴러, 범죄, 미스터리
출연: 브래드 피트, 모건 프리먼, 케빈 스페이시, 기네스 팰트로
평점: 로튼토마토 신선도 83%, 메타크리틱 65점
《세븐》은 인간의 본성 깊숙이 숨겨진 악과 그에 대한 심판을 다룬 잔혹한 범죄 스릴러다. 비 내리는 도시를 배경으로 ‘7개의 대죄(Seven Deadly Sins)’를 모티브로 한 살인 사건을 쫓는 두 형사의 이야기로, 데이비드 핀처 감독의 어두운 미학이 정점에 이른 작품이다. 탐욕, 나태, 폭식, 색욕, 교만, 질투, 분노라는 인간의 죄를 하나씩 구현한 살인사건은 종교적이면서도 철학적인 공포를 불러일으킨다. 결말부의 충격적인 반전은 단순한 범죄 스릴러의 틀을 넘어, 인간이 악을 마주했을 때 어디까지 무너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세븐》은 단순히 살인을 다루는 영화가 아니라, 죄와 도덕, 그리고 정의의 경계에 대한 냉혹한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세상은 아름답고 싸워볼 가치가 있다
어느 비 내리는 음울한 도시. 은퇴를 앞둔 노련한 형사 서머셋(모건 프리먼)과 새로 전입한 젊은 형사 밀스(브래드 피트)는 연쇄살인 사건을 수사하게 된다. 사건의 첫 희생자는 폭식죄의 희생자였다. 범인은 피해자를 억지로 먹게 만들어 죽게 한 뒤, 현장에는 ‘GLUTTONY(폭식)’라는 단어를 남긴다. 이어 탐욕(GREED), 나태(SLOTH), 색욕(LUST), 교만(PRIDE) 등 중세의 7대 죄악을 상징하는 살인들이 연쇄적으로 발생한다.
서머셋은 사건의 패턴이 단순한 연쇄살인이 아닌, 일종의 ‘심판’임을 직감한다. 범인은 인간의 죄를 응징하기 위해 치밀한 계획을 세운 듯했고, 피해자 각각은 사회적으로나 도덕적으로 ‘죄를 지은’ 인물이었다. 밀스는 냉정한 서머셋과 달리 분노와 정의감에 불타오르며 범인을 쫓는다. 두 사람은 점점 서로 다른 가치관의 충돌 속에서 인간의 본성과 정의의 의미를 고민하게 된다.
시간이 흐르고, 두 형사가 범인을 잡기 직전 사건은 돌연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든다. 범인 존 도(케빈 스페이시)가 스스로 경찰서에 찾아와 자수한 것이다. 그는 “나머지 두 개의 죄가 아직 남았다”며 자신이 준비한 마지막 장면으로 그들을 이끈다. 사막 한가운데, 밀스의 아내 트레이시(기네스 팰트로)의 머리가 들어 있는 상자가 도착하고, 존 도는 “그녀는 질투의 대상이었다”고 말한다. 충격에 빠진 밀스는 분노를 억누르지 못하고 존 도를 총으로 쏜다. 그 순간, 그는 마지막 죄악인 ‘분노(Wrath)’의 구현자가 된다.
사건은 그렇게 끝나지만, 남은 것은 무너진 정의와 허무한 인간의 본성뿐이다. 서머셋은 “세상은 여전히 가치 있는 곳이다”라는 말로 스스로를 다독이지만, 영화는 희망보다 절망에 가까운 여운을 남긴다.
악을 처벌하는 정의가 또 다른 악이 된다면, 우리는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가?
《세븐》은 철저히 구조화된 영화다. 어두운 톤의 도시, 끊임없이 내리는 비, 빛이라고는 거의 없는 공간 구성. 데이비드 핀처는 시각적 요소만으로도 인간 내면의 부패함과 도덕적 타락을 표현한다. 이 도시 자체가 마치 지옥의 한 단면처럼 느껴진다. 서머셋과 밀스는 각각 지성과 감정, 냉철함과 분노를 상징한다. 이 두 사람은 단순한 ‘파트너’가 아니라, 인간의 내면 속 빛과 어둠의 양면을 대표한다.
영화의 중심에는 ‘신의 역할을 자처한 인간’이라는 모티프가 있다. 존 도는 스스로를 심판자로 규정하며 인간의 죄를 ‘교훈으로 남기기 위한 예술’이라 주장한다. 그는 자신을 악이라 여기지 않는다. 오히려 세상에 무관심한 인간들을 ‘깨우는’ 메신저라 생각한다. 그의 논리는 비정상적이지만, 그 안에는 불편한 진실이 있다. 《세븐》이 무서운 이유는 바로 이 지점이다. 관객은 그의 방식에 동의하지 않으면서도, 그가 지적하는 사회의 부패에 대해 완전히 부정하지 못한다.
서머셋은 이런 세상에서 정의를 논하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느끼지만, 끝내 포기하지 않는다. 그는 인간이 악에 굴복하더라도, 그 속에서 여전히 ‘선의 가능성’을 찾으려 한다. 반면 밀스는 정의를 향한 열정이 오히려 자신의 분노를 제어하지 못하게 만든다. 트레이시의 죽음은 그의 이상이 얼마나 무력한지를 보여준다. 마지막 장면에서 그가 방아쇠를 당길 때, 관객은 분노와 동정, 그리고 절망을 동시에 느낀다.
《세븐》의 제목은 단순히 ‘7개의 죄’를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인간이 피할 수 없는 본성의 일곱 갈래 길이다. 우리는 탐욕과 질투, 분노 속에서 살아가며, 그 죄를 저지르지 않기 위해 애쓰지만, 결국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다. 영화는 인간의 본성을 비난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본성을 인정하고, 그 속에서 정의를 어떻게 세워야 하는가를 묻는다.
핀처는 인간의 타락을 자극적인 폭력으로 표현하지 않는다. 대신 그가 택한 방식은 ‘침묵’이다. 사건의 현장은 대체로 조용하고, 범인의 등장은 극도로 절제되어 있다. 관객은 직접적인 공포보다, 보이지 않는 불안에 압도된다. 이는 영화가 단순한 범죄 스릴러가 아닌 이유다. 《세븐》은 ‘악’을 소재로 삼았지만, 궁극적으로 ‘도덕의 경계’를 탐구하는 영화다.
《세븐》은 어두운 미로 속에서 인간의 본질을 탐사하는 영화다. 결말의 충격은 단지 반전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너무나 ‘논리적’이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계획되어 있었고, 모든 죄가 완성되었을 때 남은 것은 인간의 무력함뿐이다. 그러나 서머셋의 마지막 대사는 미묘한 희망을 남긴다. “세상은 여전히 가치 있는 곳이다.”
이 영화는 보는 내내 불편하고, 때로는 잔혹하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그 불편함은 우리가 현실 속 도덕과 정의를 되돌아보게 하는 장치다. 《세븐》은 결코 잊히지 않는 영화이며, 인간의 본성과 악의 경계에 대해 끝없이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