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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 케인(1941) 영화 정보, 리뷰 | 우리의 로즈버드는 무엇인가?

by dreamobservatory 2025. 9. 10.

시민 케인 포스터

 영화 〈시민 케인〉(Citizen Kane, 1941)은 오슨 웰스(Orson Welles)가 감독·각본·주연을 동시에 맡으며 세상에 내놓은 전설적인 데뷔작이다. 개봉 당시에는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지만, 시간이 흐르며 영화사 전체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작품으로 손꼽히게 되었다. 미국영화연구소(AFI)에서는 수차례 ‘미국 영화 100선’ 1위에 올렸고, 《사이트 앤 사운드(Sight & Sound)》가 실시한 평론가 투표에서도 오랫동안 정상을 차지했다. 단순한 흑백 고전영화가 아니라, 현대 영화 문법의 기초를 닦은 교과서적 걸작으로 불린다.

 이 영화가 특별한 이유는 단순히 웰스의 천재성 때문만은 아니다. 당시만 해도 낯설었던 딥 포커스(Deep Focus) 촬영 기법, 시점을 교차하며 이야기를 풀어내는 비선형적 내러티브 구조, 그리고 언론 권력과 인간 내면을 함께 파헤치는 주제의식이 맞물리며, 이후 수많은 감독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특히 케인의 마지막 한 마디 “로즈버드(Rosebud)”는 영화사에서 가장 유명한 미스터리로 남아, 지금까지도 수많은 해석을 낳고 있다.

로즈버드를 찾아서

 영화는 한겨울, 거대한 저택 제나두(Xanadu)의 어두운 실루엣에서 시작한다. 세상을 호령하던 언론 제국의 왕, 찰스 포스터 케인(오슨 웰스)이 70세의 나이로 홀로 생을 마감하는 장면이다. 마지막 순간, 그는 단 한 단어“로즈버드”를 내뱉고 눈을 감는다.

그의 죽음은 곧 세상의 큰 뉴스가 된다. 여러 언론들은 그의 일대기를 다루지만, ‘로즈버드’의 의미는 누구도 알지 못한다. 잡지 기자 톰슨(제리 버나드 앨런 분)은 이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케인의 지인들을 찾아다니며 인터뷰를 시작한다. 영화는 바로 이 취재 과정을 따라가는 다층적인 플래시백 구조로 전개된다.

케인의 어린 시절은 콜로라도의 황량한 농장에서 시작된다. 가난한 집안이었지만, 우연히 소유한 땅에서 금광이 발견되며 가족은 졸지에 부자가 된다. 그러나 그 대가로 어린 찰스는 부모와 떨어져 부유한 은행가의 보호 아래 뉴욕으로 보내진다. 눈 덮인 언덕에서 썰매를 타며 웃던 소년은 그렇게 순수한 시간을 뒤로한 채, 돈과 권력을 좇는 새로운 삶을 살게 된다.

성인이 된 케인은 막대한 유산을 바탕으로 뉴욕 인콰이어러(New York Inquirer)를 인수한다. 그는 “국민을 위해, 약자를 위해 봉사하는 언론이 되겠다”는 이상적인 선언을 하며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자극적인 기사와 대담한 폭로로 신문은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고, 케인은 언론계의 거물이 된다.

그러나 그의 삶은 이상과 달리 점점 왜곡된다. 1900년, 케인은 대통령의 조카인 에밀리 노튼(루스 워릭 분)과 결혼하며 사회적으로 완벽한 위치에 올라선다. 두 사람 사이에서 아들 찰스 주니어가 태어나지만, 케인의 마음은 채워지지 않는다. 결국 그는 젊고 아름다운 가수 지망생 수잔 알렉산더(도로시 커밍고어 분)와 염문을 일으키고, 이 사실이 선거 기간 폭로되면서 그의 정치적 야망은 물거품이 된다.

에밀리와는 이혼하고, 곧 불의의 교통사고로 그녀와 아들마저 잃는다. 외로움 속에서 케인은 수잔과 결혼하고, 그녀를 억지로 오페라 가수로 만들려 애쓴다. 하지만 무대 위의 수잔은 번번이 실패하고, 결국 압박감에 무너져 자살 소동을 일으킨다. 그 후에도 케인은 권력을 놓지 않으려 발버둥 치지만, 경제 대공황과 함께 그의 제국은 무너져 내린다. 1932년, 수잔마저 떠나고, 남은 건 텅 빈 제나두의 저택뿐이다. 그리고 케인은 홀로 “로즈버드”를 속삭이며 눈을 감는다.

영화의 마지막, 하인들이 케인의 소지품을 불태우는 장면에서 카메라는 오래된 눈썰매를 태우는 불길 속의 글자 ‘ROSEBUD’를 비춘다. 그러나 이 비밀은 오직 관객만 알 뿐, 영화 속 인물들에게는 끝내 밝혀지지 않는다.

불행한 부자 이야기

〈시민 케인〉을 처음 봤을 때, 솔직히 “이게 왜 최고의 영화로 꼽히지?”라는 의문이 들었다. 흑백 화면, 다소 낯선 연출, 길게 이어지는 플래시백은 빠른 전개와 자극에 익숙해진 우리에게 다소 낯설다. 하지만 이야기가 차곡차곡 쌓이며 케인의 일생이 드러날수록, 영화가 던지는 무게감은 점점 더 깊어진다.

시민 케인 스틸컷

 가장 가슴을 울린 건 케인이 마지막으로 손에 쥔 눈썰매가 불길 속에서 사라지는 장면이었다. 수많은 부와 권력, 수십 개의 저택과 보물들 속에서도 그가 끝내 찾고자 했던 건 어린 시절의 짧은 행복, “로즈버드”였다. 그 순간, 나 역시 문득 내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지금의 나는 무엇을 잃어버린 채 살아가고 있는지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었다.

 케인의 이야기는 단순한 몰락담이 아니다. 성공과 욕망의 끝에 기다리고 있는 것이 진정한 행복이 아님을 보여주는, 시대를 초월한 인간의 초상이다. 돈으로는 살 수 없는 것, 권력으로도 채울 수 없는 공허함. 어쩌면 우리 모두가 평생 찾아 헤매는 것은, 케인의 “로즈버드” 같은 작은 온기일지도 모른다.

영화와 현실의 교차

 영화 속 케인은 실존 인물인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를 모델로 한다. 허스트 역시 20세기 초 미국 언론계를 장악했고, 정치에 뛰어들며 대통령 선거까지 도전했지만 실패로 돌아갔다. 또한 그는 자신의 연인이었던 배우 마리온 데이비스를 스타로 만들려 애썼는데, 이는 영화 속 케인이 수잔 알렉산더를 억지로 무대에 세우는 장면과 묘하게 겹쳐진다.

 허스트는 이 영화를 극도로 싫어해 자신의 언론 제국을 총동원해 상영을 방해하려 했다. 실제로 〈시민 케인〉은 개봉 당시 흥행에 실패했지만, 시간이 흐르며 영화사 최고의 걸작으로 평가받게 된다. 오히려 억압하려던 그의 행동이 역설적으로 이 영화를 더욱 전설로 만들었다는 점이 아이러니하다.

실제 허스트의 삶은 케인과 닮은 듯 달랐다. 허스트는 말년에 파산을 맞이했지만 완전히 고립되지는 않았고, 마리온 데이비스와의 관계도 영화 속처럼 비극적이지 않았다. 그러나 허스트가 언론을 통해 권력을 휘두르고, 동시에 사적인 행복을 온전히 누리지 못했다는 점은 케인의 허구적 삶과 묘하게 닮아 있다. 허구와 현실이 교차하며, 진실과 허구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순간, 관객은 “로즈버드”라는 단어에 더욱 사로잡힌다.

 

〈시민 케인〉은 한 권력자의 몰락을 그리지만, 사실은 우리 모두가 마음속에 묻어둔 어린 시절의 순수와 행복에 대한 이야기다. 케인이 끝내 부르짖은 “로즈버드”는 단순한 물건의 이름이 아니라, 우리가 성장하며 잃어버린 어린 시절의 순수함이자 진정한 행복이다. 영화를 보고 나면, 성공과 부, 명예가 아닌 진짜 중요한 것은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되묻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