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2023년 작품 오펜하이머는 20세기 과학사의 결정적 순간을 정면으로 다룬 대작이다. 주인공 로버트 오펜하이머(킬리언 머피)는 ‘원자폭탄의 아버지’라는 무거운 수식어와 함께 역사 속에 기록되었지만, 그의 삶은 단순히 한 업적의 영광에 머무르지 않는다. 놀란은 과학과 권력, 이상과 현실이 충돌하는 지점을 세밀하게 포착하며, 인간의 지성이 지닌 윤리적 한계를 집요하게 묻는다. 아이맥스 70mm 카메라와 시간적 교차 편집은 인물의 내면과 역사의 소용돌이를 병치시키며, 웅장한 서사와 날카로운 심리적 긴장을 동시에 쌓아 올린다.
난 이제 죽음이오, 세상의 파괴자가 되었다
영화는 젊은 시절의 오펜하이머가 이론 물리학에 매혹되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그는 케임브리지와 괴팅겐에서 양자역학을 배우며 세계적인 학자들과 교류하고, 날카로운 직관으로 과학계에서 두각을 드러낸다. 그러나 그의 삶은 학문적 연구에만 갇혀 있지 않았다. 정치적 신념, 복잡한 인간관계, 그리고 당대 사회의 불안한 공기가 그의 삶에 겹겹이 스며든다.
1942년,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의 전황을 바꾸기 위해 맨해튼 프로젝트를 본격화한다. 오펜하이머는 로스앨러모스 연구소의 총책임자로 임명되어 수많은 석학들과 함께 역사상 가장 위험하고도 혁명적인 실험에 착수한다. 트리니티 실험으로 향하는 여정은 영화의 중심축이다. 놀란은 원자핵 분열과 양자역학 같은 난해한 개념을 화려한 시각적 이미지로 풀어내면서도, 그 과정을 단순히 과학적 설명에 가두지 않고 인간적 드라마로 끌어올린다.
실험의 성공은 곧 인류사의 분수령이 된다. 폭발 직전의 숨막히는 침묵, 연구원들의 불안한 눈빛, 그리고 세상을 흔드는 폭발의 충격은 관객에게 압도적인 경험을 남긴다. 그러나 원폭의 실전 투하 소식이 전해지는 순간, 오펜하이머는 환희가 아닌 죄책감에 휩싸인다. 그는 스스로가 파괴의 문을 열었다는 자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전후, 오펜하이머의 삶은 급격히 기울기 시작한다. 냉전 시대 미국은 과학자들을 정치적 도구로 활용했고, 오펜하이머의 과거 좌파적 성향과 인간관계는 곧 공격의 빌미가 된다. 1954년의 보안 청문회는 그의 사회적 입지를 완전히 무너뜨렸다. 아이러니하게도 미국을 위해 가장 큰 업적을 세운 과학자가, 미국 사회에서 고립되는 운명을 맞은 것이다.
후반부, 오펜하이머와 아인슈타인의 만남은 영화의 철학적 정점을 이룬다. 두 사람은 각기 다른 길을 걸었지만, 결국 말년에 사회와 동떨어진 존재가 된다. 아인슈타인은 상대성이론으로 세계를 바꾸었지만 핵무기 개발 이후 점차 주변부로 밀려났고, 오펜하이머 역시 냉전의 정치 논리 속에서 소외되었다. 두 과학자의 대화는 단순한 인물 간 교류가 아니라, 지성의 비극적 운명을 압축하는 장면으로 남는다.
아인슈타인과 오펜하이머, 두 천재의 평행한 말년
놀란의 작품은 언제나 철학적 질문을 바탕에 둔다. 오펜하이머 역시 단순한 인물 전기에 머무르지 않고, “지식은 인류에게 축복인가, 혹은 재앙인가”라는 근본적 물음을 던진다. 오펜하이머는 뛰어난 직관으로 세상을 바꾸었지만, 그 변화는 그를 고독하게 만들었다. 그는 영웅이자 죄인이며, 과학의 선구자이자 시대의 희생양으로 기록된다.
촬영 방식 또한 이러한 철학을 시각적으로 구현한다. 흑백 장면은 권력과 기록의 시선을, 컬러 장면은 오펜하이머 개인의 내면을 드러낸다. 특히 트리니티 실험 전후를 교차 편집으로 배열하면서, 관객은 역사적 사실과 개인의 체험을 동시에 체감하게 된다. 이는 단순한 사건 재현을 넘어, 기억과 트라우마를 빚어낸 독창적 형상화다.
인물 간 갈등은 영화 전반을 긴장으로 채운다. 오펜하이머와 군 장성, 정치가들, 그리고 동료 과학자들 사이의 대립은 과학이 결코 독립적인 학문이 아님을 보여준다. 로렌스와의 학문적 갈등, 스트라우스와의 정치적 충돌은 오펜하이머의 고립을 심화시키며, 결국 그를 파멸로 몰고 간다.
특히 아인슈타인과 오펜하이머의 삶을 교차시키는 서사는 깊은 울림을 준다. 두 사람은 인류의 미래를 바꾼 위대한 발견을 했지만, 말년에 모두 사회적 배제 속에서 불행을 겪었다. 아인슈타인은 시대가 만든 무기에 거리를 두려 했으나 영향력을 잃었고, 오펜하이머는 시대의 무기를 만든 책임으로 고립되었다. 두 과학자가 걸은 평행선은 영화가 영웅담을 찬미하는 데 머물지 않고, 역사와 인간의 아이러니를 성찰하게 만든다.
놀란은 인셉션에서 꿈과 현실, 인터스텔라에서 시간과 우주를 탐구했듯, 오펜하이머에서는 과학과 윤리의 충돌을 전면에 내세운다. 영화는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가 이해한 것보다 더 큰 힘을 손에 넣었을 때, 인간은 그것을 감당할 수 있는가?” 이 질문은 과거를 넘어 오늘날 핵무기와 첨단 기술의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오펜하이머는 전기의 외형을 빌리되, 그 안에 역사와 철학을 응축한 문제작이다. 과학과 권력, 이상과 현실이 얽힌 20세기의 초상을 집요하게 추적하며,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지식의 무게를 깊이 탐구한다. 자신이 헌신한 국가에 버림받은 오펜하이머의 쓸쓸한 말년과 핵폭탄으로 전쟁을 끝냈지만 결국 미사일로 핵을 투사하는 핵전쟁의 가능성이 열린 미래를 암시하며 인간 사회와 과학 기술의 발전의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최근 몇몇 AI 전문가들은 AI의 발전이 핵무기의 등장보다 더 인류에 위협적이라고 말한다. 인류가 아직 감당하지 못할 기술을 손에 넣었을 때 그것이 축복일지 저주일지 우리는 고민해보아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