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처음부터 “이건 사랑 이야기가 아니다”라고 말해버리는 로맨스가 있다. 《500일의 썸머》는 연애의 흥망성쇠를 한 줄로 요약하지 않는다. 대신 기억의 편집 방식 그대로, 어떤 날은 과장되게 반짝이고 어떤 날은 유난히 쿨하게 식어버리는 장면들을 날짜로 쪼개서 펼쳐놓는다. 그래서 이 영화는 이별담이라기보다 한 사람이 스스로 만들어낸 서사와, 그 서사가 무너지는 순간을 관찰하는 기록에 가깝다. 보고 나면 상대를 탓하기보다, 내가 무엇을 보고 싶어 했는지부터 떠올리게 된다.
개봉: 2009
감독: 마크 웹
장르: 로맨스, 코미디, 드라마
출연: 조셉 고든 레빗, 주이 디샤넬
평점: 메타크리틱 76점 / 로튼토마토 신선도 86%
기억은 순서대로 오지 않는다
카드 문구를 쓰는 남자 톰은 ‘운명적인 사랑’이라는 단어를 쉽게 믿는 사람이다. LA에서 일하던 어느 날, 회사에 새로 온 썸머를 보고 톰은 단번에 마음이 기운다. 썸머는 똑똑하고 가볍게 웃으며, 무엇보다 “진지한 관계를 원하지 않는다”는 말을 담담히 꺼낼 줄 아는 사람이다. 톰은 그 말을 듣고도 크게 개의치 않는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들었는데도 마음속에서 다른 번역으로 바꿔 적는다.
두 사람은 가까워지고, 영화는 이 관계를 날짜의 파편으로 보여준다. 좋아하는 음악 취향이 맞아떨어지는 순간, 사무실 복도에서 어색하게 마주치는 순간, 바에서의 농담이 묘하게 오래 남는 순간들이 톰의 기억처럼 편집된다. 행복이 절정에 닿는 시기에는 톰의 걸음이 가벼워지고, 거리마저 뮤지컬 무대처럼 변한다. 그러나 썸머는 계속해서 선을 그어둔다. 연애의 규칙을 정하지 않은 채 함께 있는 시간을 즐기고 싶어 한다.
균열은 아주 일상적인 장면에서 시작된다. 톰은 ‘우리가 특별하다’는 확신을 쌓아가지만, 썸머는 ‘지금이 좋다’는 말로만 머문다. 어느 날 썸머는 갑자기 이별을 통보하고, 톰은 뒤늦게 500일을 되감기 시작한다. 그 과정에서 영화는 관객에게도 같은 질문을 던진다. 그때의 신호들은 정말 사랑이었나, 아니면 톰이 원하는 방향으로 정렬된 해석이었나.
마지막에 톰은 썸머를 다시 만나고, 그녀가 이미 다른 사람과 약혼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썸머는 톰과 함께한 시간이 거짓은 아니었지만, 자신에겐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고 말한다. 톰은 충격을 받지만 동시에 이해의 문턱에 가까워진다. 이후 톰은 자신이 미뤄두었던 꿈을 다시 붙잡고 면접을 보러 다니며, 그 자리에서 ‘어텀’이라는 새로운 사람을 만난다. 영화는 해피엔딩 대신, 다음 계절의 시작을 건네며 끝난다.
사랑을 찍는 게 아니라 착각을 찍는다
《500일의 썸머》의 가장 큰 미덕은 ‘연애의 사건’보다 ‘연애를 바라보는 시선’에 카메라를 고정한다는 점이다. 비선형 구조는 단순한 장난이 아니라, 이별 이후에 우리가 기억을 복기하는 방식과 닮아 있다. 좋은 날만 골라 재생하다가, 갑자기 불편했던 표정 하나가 튀어나오고, 그제야 전체 서사가 다른 의미로 읽히는 순간. 영화는 그 심리적 리듬을 편집 리듬으로 번역한다.
연출은 뮤직비디오 감각을 서사 기술로 끌어올린다. 톰의 기분이 최고조에 달할 때는 거리의 리듬, 군중의 동선, 음악의 박자가 한 덩어리로 맞물리며 몽타주가 폭발한다. 반대로 감정이 식는 구간에서는 프레이밍이 더 건조해지고, 장면 전환이 톡 끊기며 여백이 늘어난다. 특히 ‘기대와 현실’의 분할 화면은 로맨틱한 망상이 어떻게 붕괴하는지 한 컷에서 보여주는 장치로, 이후 대중문화에서 반복 인용될 정도로 강한 생명력을 얻었다. 그 아이디어가 음악비디오 문법과 맞닿아 있었다는 제작진 회고도 흥미롭다.

색채 역시 서사를 돕는다. 썸머가 등장하는 장면에서 파란 계열이 유난히 자주 눈에 들어오는데, 그 푸른 기운은 톰이 썸머를 ‘어떤 이미지’로 고정해두는 방식과 겹쳐 보인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 색은 로맨스의 신호라기보다 집착의 포장지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런 시각적 선택들이 쌓이면서, 영화는 로맨틱 코미디의 문법을 빌려 로맨틱 코미디의 함정을 해부한다.
비평의 결도 흥미롭다. 로저 이버트는 이 영화를 “결말을 먼저 말해놓고도 끝까지 살아있는 발명품 같은 영화”라고 칭찬하며 톰의 시점이 가진 특징을 날카롭게 짚었다. 로튼토마토의 크리틱 총평 역시 ‘솔직하고 매력적’이라는 표현으로 이 영화의 균형감을 강조한다. 반면 관객 담론에서는 오래도록 “썸머가 나쁜 사람인가, 톰이 자기 환상에 취한 사람인가”라는 논쟁이 이어졌고, 그 논쟁 자체가 영화의 지속성을 증명한다.
수상과 성과도 이 영화의 위상을 뒷받침한다. 조셉 고든 레빗과 작품은 골든글로브 주요 부문 후보에 올랐고, 각본은 WGA 후보로도 지명됐다. 또한 인디 스피릿 어워즈에서 각본상을 수상하며 ‘아이디어의 영화’가 ‘산업의 영화’로 인정받는 순간도 만들었다.
사랑은 상대보다 내 머릿속에서 먼저 커진다
나는 《500일의 썸머》를 볼 때마다, 이별 후에 혼자만 영화 편집자처럼 살았던 시간을 떠올린다. 기분 좋았던 대화는 확대하고, 불편했던 말은 자막처럼 작게 줄여서 넘기던 시기. 그러다 어느 날 문득, 상대가 분명히 했던 문장을 제대로 다시 듣게 되면 그동안의 편집본이 무너진다. 톰이 썸머의 “진지한 관계는 원하지 않는다”를 듣고도 다른 의미로 저장해버렸던 것처럼, 나도 종종 ‘좋아한다’와 ‘함께하고 싶다’를 같은 문장으로 오해했다.
이 영화가 남기는 질문은 연애 기술이 아니라 인식의 문제다. 상대를 이해한다고 말하면서, 사실은 내가 만든 캐릭터를 사랑하고 있지 않았는지. ‘우리가 특별하다’는 감정이 상대의 동의로 완성된 게 아니라 내 욕망으로 조립된 건 아니었는지. 톰이 마지막에 무너진 뒤에도 삶을 다시 세우는 선택을 하는 이유는, 썸머가 돌아오지 않아서가 아니라 자신이 진짜로 좋아하던 것을 다시 기억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500일의 썸머》의 결말이 마음에 든다. 새로운 연애를 약속하는 엔딩이 아니라, 새로운 계절을 받아들이는 엔딩이기 때문이다. 사랑이 끝나면 세계가 끝나는 것처럼 굴던 시기를 지나, “내가 어떤 사람인지”라는 질문으로 돌아오는 과정. 톰이 ‘어텀’이라는 이름을 만나는 마지막 장면은, 운명이라기보다 회복의 리듬처럼 보인다. 관계가 실패해도 사람은 계속 성장하고, 그 성장만큼 다음 이야기는 다른 톤으로 시작될 수 있다는 사실. 그게 이 영화가 건네는 가장 현실적인 위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