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갱스 오브 뉴욕》은 피와 증오, 욕망이 뒤엉킨 거리에서 역사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문명 이전의 뉴욕은 법보다 주먹이 먼저였고, 국기보다 부족의 깃발이 더 큰 힘을 가졌다. 이 영화는 한 개인의 복수극을 넘어, 국가와 정체성이 어떻게 폭력과 혼란 위에서 형성되었는지를 집요하게 파헤친다.
개봉: 2002
감독: 마틴 스코세이지
장르: 범죄, 드라마, 역사
출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다니엘 데이 루이스, 캐머런 디아즈
평점: 메타크리틱 72점 / 로튼토마토 신선도 75%
피로 쌓아 올린 도시의 시작
영화는 1846년 뉴욕 파이브 포인츠에서 시작된다. 이곳은 지금의 뉴욕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이민자와 토착민, 범죄자와 노동자가 뒤엉킨 무법의 공간이며, 각 구역은 조직과 주먹패가 지배한다. 이 지역을 장악한 인물은 ‘빌 더 부처’라 불리는 윌리엄 커팅이다. 그는 신대륙을 피로 지켜낸 토박이라는 자부심을 지닌 인물로, 외부에서 유입되는 이민자들을 적대시한다.
이에 맞서는 세력은 아일랜드계 이민자들이 중심이 된 데드 래빗츠 조직이다. 그 수장인 프리스트 발론은 폭력의 세계 속에서도 나름의 질서와 신념을 지키려는 인물이다. 영화의 첫 장면에서 펼쳐지는 두 조직의 충돌은 단순한 싸움이 아니다. 이는 뿌리와 뿌리가 부딪히는 충돌이며, 누가 이 땅의 주인이 될 것인가를 결정하는 선언에 가깝다.
결투는 잔혹하게 끝나고, 프리스트 발론은 빌의 칼에 쓰러진다. 그의 어린 아들 암스테르담은 아버지가 죽는 모습을 눈앞에서 지켜본 뒤 보호시설로 보내진다. 그날의 기억은 아이의 가슴에 깊은 상처로 남고, 세월이 흘러 그는 복수를 품은 청년으로 성장한다. 성인이 된 암스테르담은 다시 파이브 포인츠로 돌아와, 자신의 정체를 숨긴 채 빌의 조직에 접근한다.
빌은 잔혹한 폭군이면서도 묘한 카리스마를 지닌 인물이다. 그는 폭력을 통치 수단으로 사용하지만, 동시에 자신의 방식으로 도시를 사랑한다. 암스테르담은 그 곁에서 일을 도우며 기회를 엿본다. 이 과정에서 소매치기 제니와 가까워지고, 점차 이곳의 질서와 인간관계를 이해하게 된다. 복수는 여전히 그의 목적이지만, 도시는 그를 쉽게 놓아주지 않는다.
결국 암스테르담의 정체는 드러나고, 빌은 공개적으로 그를 모욕하며 권력을 과시한다. 암스테르담은 모든 것을 잃고 다시 밑바닥으로 떨어진다. 그러나 이번에는 혼자가 아니다. 그는 아버지의 옛 동료들과 이민자 세력을 규합하며, 또 다른 싸움을 준비한다. 그 싸움은 개인적인 복수를 넘어, 도시의 미래를 건 대결로 확장된다.
영화의 마지막, 뉴욕은 징병 반대 폭동으로 혼란에 빠진다. 거리에서는 시민들이 군대와 충돌하고, 상공에서는 전함이 포격을 시작한다. 개인의 칼싸움과 국가의 폭력이 동시에 벌어지는 장면 속에서, 빌과 암스테르담의 결투는 마치 역사에 삼켜지는 듯 마무리된다. 싸움은 끝났지만, 도시는 계속 변해간다.
폭력 위에 세워진 국가라는 질문
영화 속 뉴욕은 낭만과는 거리가 멀다. 진흙탕 같은 거리, 피비린내가 가득한 골목, 언제든 배신이 일어날 수 있는 세계다. 그러나 영화는 그런 잔혹함 속에서도 역사는 계속된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빌 더 부처는 이 영화의 심장과도 같은 인물이다. 다니엘 데이 루이스의 연기는 캐릭터를 단순한 악당으로 두지 않는다. 그는 잔혹하지만 일관된 신념을 지니고 있으며, 자신이 지켜온 질서가 무너지는 것을 누구보다 두려워한다. 그의 분노는 개인적인 악의라기보다, 시대에 뒤처진 신념이 만들어낸 폭발에 가깝다.
반면 암스테르담은 전통과 변화 사이에서 흔들리는 존재다. 그는 아버지의 피를 기억하며 자랐지만, 동시에 새로운 시대의 흐름 속에 놓여 있다. 복수를 향한 집착은 그를 움직이게 하지만, 영화가 진행될수록 그의 시선은 점차 개인을 넘어 도시 전체로 확장된다. 이 변화는 복수가 더 이상 유일한 해답이 될 수 없음을 암시한다.

스코세이지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미국 이민사의 이면을 날것 그대로 드러낸다. 자유와 기회의 나라라는 이상은 수많은 충돌과 희생 위에서 만들어졌다. 이민자와 토착민, 권력자와 약자 사이의 갈등은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도 반복되고 있는 문제임을 보여준다.
역사는 싸움이 끝난 뒤에야 모습을 드러낸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카메라는 시간이 흐른 뉴욕을 비춘다. 무덤 위로 도시가 성장하고, 빌과 암스테르담의 싸움은 역사 속 작은 점으로 사라진다. 그러나 그들이 흘린 피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은 도시의 토대가 되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여전히 숨 쉬고 있다.
《갱스 오브 뉴욕》은 편안하게 볼 수 있는 영화는 아니다. 폭력적이고 거칠며, 때로는 불쾌할 만큼 직설적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국가와 정체성, 그리고 우리가 서 있는 땅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정면으로 마주하게 한다. 역사는 언제나 아름답게만 기록되지 않는다. 이 작품은 그 불편한 진실을 외면하지 않도록 관객을 붙잡는다. 자랑스럽게 묘사되는 미국의 역사와 뉴욕이라는 낭만적인 도시의 이면을 이 영화는 낱낱이 파헤친다. 낭만과는 다소 거리가 먼 잔혹한 현실을 다룬 영화를 찾는다면 《갱스 오브 뉴욕》은 훌륭한 선택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