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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곤충과 인류의 전쟁 스타쉽 트루퍼스(1997) 영화 리뷰

by dreamobservatory 2026. 1. 29.

스타쉽-트루포스-포스터
스타쉽 트루퍼스 포스터

 시원시원한 액션 장면이 지나간 후에 마음 한켠에는 이유모를 찝찝함이 남아있다. 《스타쉽 트루퍼스》는 거대한 벌레와의 전쟁을 내세우지만, 진짜 전장은 화면 밖 우리 사회다. 선전 영상 같은 뉴스, 군복에 스민 미학, 웃음처럼 보이는 장면의 불편한 잔향이 관객을 시험한다. 이 영화가 ‘명작인가, 문제작인가’로 오래 논쟁되는 이유는 스펙터클 때문이 아니라 그 스펙터클을 바라보는 우리의 태도에 칼끝을 대기 때문이다.

개봉: 1997
감독: 폴 버호벤
장르: SF, 액션
출연: 캐스퍼 반 디엔, 디나 메이어, 데니스 리처즈, 닐 패트릭 해리스, 마이클 아이언사이드
평점: 메타크리틱 52점 / 로튼토마토 신선도 72%

전쟁은 ‘입대 신청서’로 시작된다

 먼 미래, 인류는 연방 체제 아래 ‘시민권’을 군복무와 연결해 둔 사회에 살고 있다. 고등학생 조니 리코는 연인 카르멘을 따라 군에 지원하고, 카르멘은 조종사 코스로, 리코는 기동보병으로 갈라진다. 훈련소에서 리코는 혹독한 규율과 상명하복을 몸으로 배우며, 교관 지미는 “살아남는 법”을 전쟁의 언어로 주입한다. 같은 신병 디지 플로레스는 리코를 지지하며 함께 최전선으로 향한다.

 그러나 전쟁은 로맨스나 성장담의 속도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버그’라 불리는 거대 곤충 종족과의 충돌은 순식간에 참호전으로 변하고, 첫 대규모 상륙 작전에서 보병들은 준비되지 않은 채 도살에 가까운 패배를 겪는다. 뉴스 화면은 패전을 ‘결의’로 포장하고, 더 많은 지원을 독려하는 선전으로 분위기를 덮는다. 리코는 부상을 입고 후방으로 빠지지만, 전선에 남은 동료들의 소식이 그를 다시 전쟁으로 끌어당긴다.

 이후 리코는 베테랑 라즈착의 부대에 합류해 실전에 적응해간다. 전투는 점점 잔혹하고 효율적으로 변하며, 연방은 ‘버그의 두뇌’로 불리는 브레인 버그를 포획하는 작전을 추진한다. 클라이맥스에서 라즈착의 부대는 희생을 감수하며 핵심 목표에 접근하고, 결국 브레인 버그를 생포하는 데 성공한다. 엔딩은 승전의 환호로 마무리되지만, 그 환호가 무엇을 정당화하는지까지 함께 남겨두며 관객에게 찜찜한 질문을 던진다.

화려한 선전물처럼 찍어, 씁쓸하게 남긴다

 처음 볼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전투의 쾌감이다. 하지만 《스타쉽 트루퍼스》의 연출은 “쾌감만 느끼고 끝내기”를 허락하지 않는다. 버호벤은 영화 곳곳에 ‘연방 뉴스’ 형식의 삽입 영상을 배치해, 관객이 전쟁을 소비하는 방식 자체를 풍자한다. 화면 구성은 광고처럼 또렷하고, 편집은 과감하게 단정하며, 구호는 귀에 착 붙는다. 이 유려함이 오히려 위험하다. 메시지가 아니라 형식이 먼저 설득해버리기 때문이다.

 촬영과 미장센도 계산이 뚜렷하다. 교실에서 시민권과 폭력을 ‘상식’처럼 가르치는 장면, 제복과 깃발이 만드는 기하학적 정렬, 인물들이 카메라 정면을 향해 말하는 순간의 선전 포스터 같은 구도는 ‘프로파간다 영화의 문법’을 그대로 가져온다. 전투 장면은 와이드 샷으로 스케일을 보여주다가, 근접 샷에서 피와 절단을 숨기지 않고 들이민다. 관객이 열광하는 지점과 혐오하는 지점을 같은 프레임 안에서 충돌시키는 방식이, 이 영화의 정서적 함정을 만든다.

스타쉽-트루퍼스-스틸컷-군인들과-거대-곤충
스타쉽 트루퍼스 스틸컷

 특수효과는 지금 봐도 놀랍다. 거대한 벌레의 질감과 군중 전투의 규모는 당대 기준으로 ‘가능한 최대치’를 끌어올린 결과다. 이 작품은 제24회 새턴 어워즈에서 특수효과 부문 수상을 포함해 여러 부문 후보에 오르며 기술적 성취를 인정받았다. 다만 이 기술이 멋있어서가 아니라, “전쟁을 멋있어 보이게 만드는 것”을 비판하기 위해 쓰였다는 점이 더 흥미롭다. 스펙터클이 윤리의 껍질이 되는 순간을, 영화가 직접 재현해 보여주는 셈이다.

 평단 반응은 오래 논쟁거리였다. 메타크리틱 점수가 보여주듯 당시 평가는 엇갈렸고, 시간이 흐르며 ‘풍자’로 재평가되는 흐름도 커졌다. 로저 이버트는 원작의 결을 따라가되 그 결과로 “교묘한 풍자”의 요소가 생긴다고 짚었다. 내 감상은 이렇다. 이 영화는 관객을 안전지대에 두지 않는다. 웃기다고 넘기면 내가 선전에 길들어 있는지 점검하게 되고, 진지하게만 받으면 영화가 일부러 심어둔 ‘캠프의 과장’을 놓치게 된다. 그래서 한 번 보고 끝나는 영화가 아니라, 시대 분위기와 내 컨디션에 따라 얼굴이 바뀌는 영화로 남는다.

 개인적으로 가장 강하게 남았던 건, 전투의 공포보다 ‘다 함께 같은 말을 외치는 장면’이었다. 현실에서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 한동안 뉴스나 커뮤니티에서 특정 집단을 한 덩어리로 뭉뚱그려 부를 때, 나도 모르게 생각이 단순해지는 순간이 있었다. 《스타쉽 트루퍼스》는 그 단순함이 얼마나 손쉽게 폭력으로 이어지는지, 그리고 그 폭력이 얼마나 그럴듯한 이미지로 포장되는지 끝까지 밀어붙인다.

우리가 싸우는 대상은 정말 ‘벌레’였을까

 《스타쉽 트루퍼스》가 무서운 이유는 “전쟁을 반대하라” 같은 쉬운 결론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대신 ‘전쟁을 좋아하게 만드는 장치’를 보여준다. 적을 이해 불가능한 존재로 만들고, 언어를 혐오의 별명으로 단순화하고, 참전은 성숙의 통과의례로 포장한다. 그 과정을 보고 있으면, 영화 속 사회가 낯설지 않다. 어떤 시대든 비슷한 선전의 문법이 돌아다니기 때문이다.

 이 영화를 보고 나면 질문이 남는다. 나는 지금 무엇을 ‘너무 쉽게’ 미워하고 있나. 편리한 구호를 의심해본 적이 있나. 다수가 열광할 때 멈춰 서서 근거를 확인한 적이 있나. 스펙터클은 늘 사람을 흥분시키지만, 판단은 흥분의 속도보다 느리게 굴러간다. 그래서 나는 《스타쉽 트루퍼스》를 “SF 전쟁영화”로만 저장해두지 않게 됐다. 정보가 넘치는 시대일수록, 이 영화의 불편함이 오히려 자기 점검표처럼 작동한다.

 마지막으로, 이 작품이 오래 살아남은 이유를 한 줄로 정리하면 이렇다. 벌레가 무서워서가 아니라, 벌레를 핑계로 인간이 무엇이든 할 수 있게 되는 순간이 무서워서다. 그 점을 의식하고 다시 보면, 처음엔 지나쳤던 뉴스 자막, 웃음처럼 찍힌 리액션, ‘승리’라는 단어의 감상이 다르게 보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