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이름은 칸》은 한 남자의 이름에서 시작해, 세계의 편견과 공포, 그리고 인간에 대한 믿음으로 확장되는 이야기다. 자폐 스펙트럼을 지닌 무슬림 남성 리즈완 칸이 사랑하는 사람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미국 전역을 횡단하는 여정은, 단순한 로드무비를 넘어 우리 사회가 얼마나 쉽게 누군가를 규정하고 배제하는지를 조용히 비춘다. 영화는 거대한 사건보다 한 사람의 진심에 집중하며, 증오가 만연한 시대에 인간다움이 무엇인지 묻는다.
개봉연도: 2010
감독: 카란 조하르
장르: 드라마, 로맨스
출연: 샤룩 칸, 카졸
평점: 메타크리틱 50점 / 로튼토마토 신선도 84%
이름 하나로 세상과 마주하다
리즈완 칸은 인도에서 태어난 무슬림 남성으로, 아스퍼거 증후군을 가지고 있다. 그는 숫자와 패턴에 강하고 거짓을 싫어하지만, 사람의 감정과 사회적 맥락을 읽는 데에는 서툴다. 어머니는 그에게 세상을 살아가는 단순하면서도 중요한 기준을 가르친다. 세상에는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만 있을 뿐, 종교나 피부색으로 사람을 나누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이 가르침은 리즈완의 삶 전체를 관통하는 신념이 된다.
성인이 된 리즈완은 형을 따라 미국으로 건너가고, 미용실을 운영하는 힌두교 여성 만디라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두 사람의 관계는 서로의 다름을 천천히 이해해가는 과정 위에서 자라난다. 리즈완은 만디라의 감정을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그녀를 향한 진심만큼은 흔들림이 없다. 이들의 결혼은 종교와 문화의 차이를 넘어선 선택처럼 보이지만, 평온한 시간은 오래가지 않는다.
2001년 9월 11일 이후, 미국 사회는 급격히 변한다. 테러 이후의 공포는 분노로 변하고, 분노는 특정 집단을 향한 적대감으로 표출된다. 무슬림이라는 이유만으로 의심받고 차별받는 상황 속에서, 만디라의 아들은 학교에서 폭력에 노출되고 결국 비극적인 사건을 맞이한다. 이 사건은 만디라의 삶을 무너뜨리고, 그녀는 리즈완에게 감당하기 힘든 말을 남긴다. 대통령에게 가서 자신은 테러리스트가 아니라는 사실을 직접 증명하라는 것이다.
이 말은 분노에서 나온 말이었지만, 리즈완에게는 문자 그대로의 약속이 된다. 그는 미국 대통령을 만나기 위해 길을 떠난다. 목적지는 분명하지만, 방법은 서툴다. 그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이름과 함께 한 문장을 반복해서 말한다. 나는 칸이다. 그리고 나는 테러리스트가 아니다. 이 문장은 단순한 자기소개가 아니라, 세상에 던지는 가장 솔직한 선언이다.
여정 속에서 리즈완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난다. 자연재해로 삶의 터전을 잃은 이들, 편견 없이 손을 내미는 소시민들, 그리고 여전히 증오를 품은 사람들까지. 그는 논쟁하지 않고 설득하지도 않는다. 다만 자신이 배운 방식대로 행동하며,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다가간다. 그의 태도는 조금씩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언론과 사회의 시선도 서서히 변해간다.
증오의 시대를 건너는 가장 느린 걸음
《내 이름은 칸》이 특별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거대한 정치적 메시지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기 때문이다. 영화는 테러와 차별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다루면서도, 이를 거창한 연설이나 극적인 대립으로 풀지 않는다. 대신 한 개인의 시선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게 만든다. 리즈완의 세계에는 계산된 의도나 이중적인 감정이 없다. 그는 사실을 말하고, 약속을 지키며, 도움을 주는 방식으로 세상과 소통한다.
이 영화에서 차별은 소리 없이 스며든다. 노골적인 폭력뿐 아니라, 일상적인 시선과 말투, 침묵 속에서도 차별은 존재한다. 리즈완은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지만, 그 영향은 누구보다 직접적으로 받는다. 그럼에도 그는 분노로 대응하지 않는다. 그의 행동은 저항이기보다 일관된 삶의 방식에 가깝다. 어머니에게 배운 기준을 끝까지 지키는 것, 그것이 그가 세상에 맞서는 유일한 방법이다.

샤룩 칸의 연기는 이 영화의 중심을 단단히 붙잡는다. 과장되지 않은 몸짓과 시선, 말의 속도는 리즈완이라는 인물을 연민의 대상이 아니라 존중받아야 할 존재로 만든다. 그는 불쌍함을 강조하지 않고, 인물이 가진 고유한 리듬을 끝까지 유지한다. 관객은 그를 이해하려 애쓰는 순간부터 이미 영화가 던진 질문 안으로 들어오게 된다.
만디라 역의 카졸 역시 인상적이다. 그녀는 상실과 분노, 죄책감 사이에서 흔들리는 인물을 섬세하게 표현한다. 리즈완을 향한 사랑과 원망이 뒤섞인 감정은 단순히 화해로 정리되지 않는다. 두 사람의 관계는 상처를 안은 채 천천히 다시 연결되고, 그 과정은 현실적이면서도 깊은 여운을 남긴다.
영화는 결국 묻는다. 우리는 누군가를 얼마나 쉽게 하나의 이미지로 규정하는가. 이름과 얼굴, 종교와 국적만으로 사람을 판단해버리는 순간, 우리는 얼마나 많은 진실을 놓치고 있는가. 리즈완의 여정은 세상을 바꾸는 혁명이 아니라, 한 사람을 이해하려는 작은 시도에서 시작된다. 그 느린 걸음이야말로 이 영화가 선택한 가장 강력한 메시지다.
이름을 부른다는 것의 의미
《내 이름은 칸》은 보고 난 뒤에도 오래 남는다. 극적인 반전이나 화려한 연출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평소 쉽게 지나쳤던 질문을 다시 꺼내 놓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누군가의 이름을 제대로 부른다는 것이 무엇인지 묻는다. 이름은 단순한 호칭이 아니라, 그 사람이 살아온 시간과 감정, 선택의 총합이다. 리즈완이 자신의 이름을 반복해서 말하는 이유는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 존재하기 위함이다.
세상은 여전히 빠르게 판단하고 쉽게 분류한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 흐름에 조용히 브레이크를 건다. 잠시 멈춰서 바라보라고, 듣고 생각해보라고 말한다. 큰 목소리보다 꾸준한 행동이, 분노보다 진실이 더 멀리 갈 수 있다는 믿음이 영화 전체를 감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