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 랍스터》는 사랑이 규칙이 되고, 관계가 의무가 된 사회를 배경으로 인간의 고독과 욕망을 기묘하게 비튼 작품이다. 커플이 되지 못하면 동물로 변해야 하는 세계에서, 이 영화는 연애와 결혼이라는 제도를 하나의 실험실처럼 다룬다. 냉담한 유머와 기이한 설정 속에서, 우리는 사랑이 과연 선택인지 생존인지 되묻게 된다. 웃음과 불편함이 교차하는 순간마다, 감정의 본질을 자극한다.
개봉: 2015년
감독: 요르고스 란티모스
장르: 드라마, 로맨스, 블랙코미디, SF
출연: 콜린 파렐, 레이첼 와이즈, 레아 세두, 존 C 라일리
평점: 메타크리틱 82점 / 로튼토마토 신선도 87%
사랑이 법이 된 세상에서의 생존기
《더 랍스터》의 세계는 한 가지 규칙으로 요약된다. 성인이 된 사람은 반드시 커플이 되어야 하며, 홀로 남은 이들에게는 단 45일의 시간이 주어진다. 그 안에 짝을 찾지 못하면 인간의 삶은 종료되고, 각자가 선택한 동물로 변신해 숲으로 보내진다. 영화는 이 황당한 설정을 아무 설명 없이 던진다. 그 무심함이 오히려 관객을 이 기묘한 사회에 자연스럽게 밀어 넣는다.
주인공 데이비드는 아내에게 이혼을 통보받고 호텔로 보내진다. 그가 선택한 변신 대상은 랍스터다. 오래 살고, 생식 능력이 강하며, 귀족적인 이미지를 지녔다는 이유에서다. 이 선택은 우스꽝스러우면서 섬뜩하다. 인간이 자기 삶의 마지막마저 효율과 상징으로 계산해야 하는 현실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호텔은 연애의 훈련소처럼 운영된다. 매일같이 싱글의 위험성을 강조하는 연극이 펼쳐지고, 투숙객들은 숲으로 나가 도망친 솔로들을 사냥하며 체류 기간을 연장한다.
이곳에서 사람들은 진짜 자신을 숨기고, 상대와 맞아떨어질 만한 특징을 급조한다. 누군가는 거짓 코피를 만들어내고, 누군가는 일부러 차가운 성격을 연기한다. 사랑이 감정이 아니라 조건의 퍼즐이 되는 순간이다. 데이비드는 냉혹한 여인과 가까워지기 위해 감정을 지운 사람처럼 행동한다. 그녀의 잔인함에 맞추기 위해, 그는 자기 자신을 조금씩 삭제한다. 이 과정은 웃음을 자아내지만, 동시에 관계를 위해 자신을 훼손해본 적 있는 이들에게 낯설지 않은 장면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이 가짜 연애는 오래가지 못한다. 데이비드는 숲으로 도망쳐 ‘솔로들의 공동체’에 합류한다. 이곳은 호텔과 정반대의 규칙을 지닌 세계다. 연애도, 스킨십도, 감정의 교류도 금지된다. 외로움을 견디는 능력이 미덕이 되는 사회. 아이러니하게도 자유를 찾아온 이 공간 역시 또 다른 억압의 형태다. 데이비드는 이곳에서 근시인 여자를 만나고, 둘은 같은 시력을 공통분모로 삼아 조심스럽게 가까워진다. 서로에게서 숨겨둔 감정을 발견하는 과정은 호텔에서보다 더 긴장감 넘친다. 사랑이 허용되지 않는 곳에서 피어나는 감정은, 규칙이 허용한 연애보다 훨씬 생생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숲의 리더는 이 관계를 눈치채고, 잔인한 방식으로 둘을 갈라놓는다. 여자는 시력을 잃고, 데이비드는 다시 선택의 순간에 놓인다. 그는 그녀와 함께할 수 있는 삶을 위해, 자신의 눈을 찌를 준비를 한다. 영화는 여기서 멈춘다. 그의 선택이 실제로 실행됐는지는 보여주지 않는다. 대신 관객에게 묻는다. 우리는 사랑을 위해 어디까지 스스로를 바꿀 수 있는가. 그리고 그 선택이 진짜 자유라고 부를 수 있는가.
불편한 웃음 뒤에 숨겨진 연애의 민낯
《더 랍스터》를 보고 나면, 한동안 웃음과 불쾌감이 동시에 남는다. 영화는 유머를 무기로 삼지만, 결코 유쾌하지만은 않다. 등장인물들의 대사는 감정을 거의 배제한 채 기계처럼 뱉어지고, 연애는 마치 회사의 프로젝트처럼 관리된다. 이 어색함은 현대 사회의 데이트 풍경을 과장한 결과처럼 느껴진다. 스펙과 조건, 취향과 생활 패턴이 관계의 출발점이 되는 시대. 영화 속 호텔은 결혼 정보 회사와 연애 앱이 극단적으로 결합된 미래의 모습처럼 보인다.
특히 인상적인 지점은 사랑이 개인의 선택이 아니라 사회적 의무로 바뀌었을 때 발생하는 폭력성이다. 커플이 되지 못하면 인간의 자격을 박탈당하는 세계. 이는 현실의 은근한 시선과도 닮아 있다. 나이가 들수록 질문은 늘어난다. 아직 혼자인 이유, 언제 결혼할 계획인지, 왜 아이를 낳지 않는지. 영화는 이 질문들을 하나의 법률로 만들어 버린다. 그 결과는 섬뜩할 만큼 직설적이다.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연출은 감정을 절제한 채 상황만을 던져준다. 음악도 최소한으로 사용되고, 카메라는 인물과 거리를 유지한다. 이 차가운 시선 덕분에 관객은 쉽게 감정이입하지 못한 채, 한 발 물러나 이 세계를 관찰하게 된다. 그러나 그 거리감이 오히려 영화의 힘이 된다. 감정을 강요하지 않기에, 관객은 스스로 불편함의 이유를 찾아내게 된다.
숲의 공동체 역시 흥미롭다. 호텔이 연애를 강요하는 사회라면, 숲은 고독을 강요하는 사회다. 이 두 세계는 서로 반대편에 서 있지만, 닮은 점이 있다. 개인의 감정이 규칙에 의해 통제된다는 점이다. 영화는 연애지상주의와 독신만능주의를 동시에 비틀며, 어느 쪽도 해답이 아님을 보여준다. 결국 인간은 규칙이 아니라 선택 속에서만 자신을 증명할 수 있다는 메시지가 조용히 드러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특히 인상적이다. 데이비드가 화장실에서 칼을 들고 서 있는 장면. 그는 사랑을 위해 스스로를 희생하려 한다. 하지만 그 희생이 과연 사랑의 완성인지, 또 다른 굴복인지 판단은 관객에게 맡겨진다. 이 열린 결말은 영화 전체를 다시 떠올리게 만든다. 우리는 연애와 결혼이라는 이름으로 얼마나 많은 결정을 타인의 기준에 맞춰왔는지. 그리고 그 선택들이 정말 나의 것이었는지.
사랑이 규칙이 될 때, 인간은 어디로 가는가
《더 랍스터》는 기괴한 설정을 통해 아주 현실적인 질문을 던진다. 사랑이 자유가 아니라 의무가 되는 순간, 관계는 따뜻함보다 생존의 문제가 된다. 영화 속 인물들은 외로움이 두려워 연애를 선택하고, 처벌이 두려워 감정을 연기한다. 이 모습은 현대인의 연애 풍경과 겹쳐진다. 혼자라는 이유로 설명해야 하는 삶, 관계 속에서도 끊임없이 비교당하는 현실. 영화는 이를 과장된 세계로 옮겨놓음으로써, 우리가 당연하게 여겼던 기준을 낯설게 만든다.
만약 지금 당신이 관계의 형태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면, 이 영화는 불편하지만 정직한 거울이 되어줄 것이다. 웃다가도 씁쓸해지고, 기묘한 장면 뒤에 숨은 현실을 떠올리게 만드는 작품. 《더 랍스터》는 사랑에 대해 알고 있다고 믿었던 것들을 하나씩 흔들며, 우리가 정말 원하는 관계의 모습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