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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버넌트(2015) 영화 리뷰 <살아남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

by dreamobservatory 2025. 12. 8.

영화-레버넌트-포스터
레버넌트 포스터

 《레버넌트》는 광활한 자연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처절하게 몸부림치는 한 남자의 여정을 통해 인간의 본능과 집념을 극한까지 밀어붙이는 작품이다. 야생의 날것 그대로를 담아낸 화면은 관객을 차가운 대지와 숨 막히는 숲 한가운데로 끌어들이고, 그곳에서 홀로 버티는 휴 글래스의 고독과 희망을 동시에 체감하게 만든다. 침묵과 바람, 그리고 눈발 속에서 살아남겠다는 의지가 끝없이 이어지는 영화는 마침내 인간이라는 존재가 어디까지 버티고 나아갈 수 있는지를 묵직한 호흡으로 보여준다.

개봉: 2015
감독: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
장르: 모험, 드라마, 서스펜스
출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톰 하디, 도널 글리슨, 윌 폴터
평점: 메타크리틱 76점 / 로튼토마토 신선도 78%

설원의 침묵 속에서 남겨진 남자

 사냥꾼 팀의 가이드로 참여한 휴 글래스는 아들 호크와 함께 모피 사냥단을 이끌며 깊은 숲을 이동한다. 그러나 평온한 행군은 오래가지 못한다. 아리카라 부족의 갑작스러운 공격으로 사냥꾼들은 패닉에 빠지고, 살아남은 이들은 부랴부랴 배를 타고 강을 내려가다 결국 험준한 산길을 선택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글래스는 정찰 도중 거대한 회색곰과 맞닥뜨려 처참한 공격을 받는다. 살아 있다는 것이 기적일 정도의 상처를 입은 그는 말을 할 힘조차 없고, 몸을 조금만 움직여도 신음이 새어 나올 만큼 지쳐 있다.

 사냥단의 리더 헨리 대위는 글래스를 살려보려 하지만, 이동을 방해하고 조난 위험을 높인다는 이유로 존 피츠제럴드는 그를 버리자고 주장한다. 결국 글래스를 돌볼 사람으로 피츠제럴드와 브리저, 그리고 아들 호크가 남는다. 하지만 피츠제럴드는 생존을 위해서라면 어떤 선택도 서슴지 않는 인물이다. 그는 글래스를 살려두는 것이 위험하다고 판단하고, 호크와 몸을 움직일 수도 없는 글래스를 몰아붙이다 결국 호크를 죽여버린다. 아들의 울음도, 부르짖는 소리도 설원의 바람 속으로 흩어질 뿐이며, 글래스는 울분과 고통 속에서 그 장면을 온몸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다.

레버넌트-스틸컷-설원의-남자
레버넌트 스틸컷

 피츠제럴드는 글래스를 얕은 흙더미 아래에 묻어두고 떠난다. 모든 것이 끝난 것처럼 보이지만 글래스는 기적처럼 숨을 이어가며 겨우 몸을 움직인다. 그는 얼어붙은 흙과 뼈의 통증을 견디며 땅에서 기어 나와, 절망적인 몸 상태로 끝없는 여정을 시작한다. 수많은 상처, 끊임없는 피로, 그리고 혹독한 추위에도 그는 두 가지를 잊지 않는다. 죽어가는 몸을 억지로 일으키는 생존 본능, 그리고 피츠제럴드에게 모든 것을 되돌려주겠다는 단단한 복수심이다. 나무 뿌리를 씹어 먹고 강물을 마시며 버티는 그의 모습은 극한 상황에서 인간의 의지가 얼마나 강하지 보여준다.

 강을 건너던 순간에는 도망치는 아리카라 전사들의 시선 속에서 겨우 몸을 피하고, 언덕을 오르다가 추위에 쓰러지기 직전엔 죽은 말의 뱃속에서 하룻밤을 보내 살아난다. 자연은 그를 밀어붙이고, 인간은 그를 버렸지만 글래스는 움직임을 멈추지 않는다. 그렇게 몇 날 며칠을 버틴 끝에 사냥단이 머물던 전초기지에 다가서고, 피츠제럴드가 이미 도망쳤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러나 그의 걸음은 이미 방향을 정한 지 오래다. 호크의 목숨을 앗아간 그 남자를 끝까지 찾아 반드시 마주하겠다는 결심이 눈보라 사이에서 뜨겁게 타오른다.

 마침내 피츠제럴드와 조우한 순간, 글래스는 숨과 기력을 모두 쏟아부어 칼과 총이 오가는 처절한 사투를 벌인다. 두 사람은 얼어붙은 강가에서 죽음을 목전에 두고 서로를 밀어붙인다. 마침내 글래스는 피츠제럴드를 제압하지만, 마지막 칼을 꽂지 않는다. 그는 복수의 순간을 취소한 것이 아니라, 그 결말을 자연과 부족에게 맡기는 것이 가장 적절한 답이라고 느낀다. 피츠제럴드는 강물을 따라 떠내려가다 아리카라 전사들에게 발견되고, 글래스는 흐릿한 시야 속에서 떠나간 아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조용히 숨을 들이쉰다. 그의 집념은 그렇게 끝내 자신을 살아남게 했다.

눈발 속에서 깨어난 본능

 이 영화가 빛나는 가장 큰 이유는 디카프리오의 연기다. 그는 대사를 통해 감정을 전하려 하지 않는다. 대신 상처 난 몸, 떨리는 손가락, 숨이 끊어질 듯 이어지는 한숨, 얼어붙은 얼굴 위로 맺히는 눈물과 침묵이 모든 대사를 대신한다. 화면 속에서 그는 거의 동물에 가까운 생존 방식으로 몸을 움직인다. 한 입이라도 더 먹기 위해 들짐승의 살점을 뜯고, 동굴에서 몸을 말아 웅크리며, 강가에서 벌벌 떨며 숨을 고르는 장면들은 연기를 넘어서 실제 생존 기록처럼 보인다. 디카프리오가 이 작품으로 오스카를 수상한 것은 단순한 운이 아니라, 그가 화면 속에서 보여준 절박함이 얼마나 강렬했는지를 증명하는 결과다.

 감독 이냐리투의 연출은 무자비하면서도 아름답다. 카메라는 자연을 거대한 괴물로 묘사하지 않고, 웅장한 존재로 그려낸다. 숲 사이로 스며드는 빛, 얼어붙은 강의 결, 거친 바람이 나뭇잎을 헤집는 소리까지 하나의 생명체처럼 살아 움직인다. 자연은 글래스를 갈기갈기 찢으면서도, 동시에 그가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한다. 이런 이중성은 영화의 상징적인 힘을 더욱 키운다. 인간은 자연 앞에서 무력하지만, 그 무력함 속에서 스스로를 증명할 방법을 찾는다.

 이 영화의 가장 인상적인 점은 복수라는 주제가 단순한 감정적 도구로 소비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글래스에게 복수는 삶을 이어가는 연료이자, 동시에 그를 파괴하는 무게다. 그의 아들 호크는 단순한 존재가 아니라 글래스가 지키고 싶었던 세계였고, 그 세계를 잃은 순간 복수는 그의 발걸음을 떠받치는 기둥이 된다. 하지만 마지막 장면에서 그는 칼을 내려놓는다. 그것은 포기나 용서보다 더 복잡한 감정이 담긴 행동이다. 피츠제럴드의 죽음이 자신에게 돌아올 결과보다 자연과 세계의 흐름에 맡기는 것이 더 어울린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런 판단은 영화 전체를 관통한 생존의 의미를 더욱 깊게 만든다.

 결국 《레버넌트》는 고통의 끝에서 발견되는 인간의 심장을 보여주는 영화다. 몸이 부서지는 순간에도 살아 있으려는 욕망, 그리고 살아남은 후에야 비로소 되찾을 수 있는 진실. 그렇게 글래스의 여정은 잔인하지만 숭고하고, 고독하지만 강한 빛을 남긴다. 스크린 너머로 차가운 바람이 스며들고, 눈발이 얼굴을 스치는 듯한 생생함 속에서 관객은 묵직한 침묵과 함께 이야기를 마주하게 된다. 이 영화는 단순한 생존극을 넘어서 인간이 끝까지 버티고자 하는 존재임을 증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