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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옹(1994) 영화 정보 | 평점 | 결말 | 리뷰 <가족을 잃은 소녀와 킬러의 이야기>

by dreamobservatory 2025. 10. 6.

레옹 포스터

  • 개봉: 1994년
  • 감독: 뤽 베송
  • 장르: 범죄, 액션
  • 출연: 장 르노, 나탈리 포트만, 개리 올드만, 대니 에일로
  • 평점: 메타크리틱 64점, 로튼토마토 신선도 74%

 뉴욕의 뒷골목에 혼자 사는 프로페셔널 킬러 ‘레옹’과, 불의의 학살로 가족을 잃고 복수를 꿈꾸는 열두 살 소녀 ‘마틸다’는 우연한 계기로 얽힌다. 서로 전혀 다른 상처를 지닌 두 사람은 생존과 복수, 연대 사이에서 점차 질긴 유대를 형성한다. 살인자의 삶을 이어가면서도, 인간 본성의 온기를 잃지 않으려는 레옹의 기구한 운명과, 사랑과 복수를 오가는 마틸다의 감정이 충돌하고 뒤엉키며, 비극적이지만 섬세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사랑해요, 레옹

 뉴욕의 오래된 아파트 복도, 레옹(장 르노)은 외부와 거의 단절된 생활을 한다. 그는 오직 의뢰인 토니(대니 에일로)를 통해 들어오는 청부 일을 수행하며, 최소한의 인간관계만 남긴 채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그에게 친구라곤 화분 하나뿐이다. 그는 식물에 물을 주며 “살고 싶어 하는 생명”을 돌보는 듯한 연민을 드러낸다.

 한편, 같은 건물 복도 한쪽 구석, 열두 살 소녀 마틸다(나탈리 포트만)는 가정 내 갈등 속에서 소외감과 상처를 안은 채 살아간다. 그녀의 아버지는 마약 조직과 연결된 거래의 중간 창고 노릇을 하다 부패한 DEA 요원 노먼 스탠스필드(개리 올드만) 일당과 얽힌다. 어느 날, 스탠스필드와 부하들이 마약 일부가 도둑맞았다는 의심 아래 마틸다 가족의 집을 급습한다. 그 과정에서 살인은 잔혹했고, 마틸다의 얼굴엔 멍이 들고 피가 흐른다. 집을 나오던 순간, 총성과 비명 그리고 붉은 빛 속에서 그녀는 망연히 레옹의 문을 두드린다.

레옹 스틸컷

 처음엔 그녀를 막아 내려던 레옹이었지만, 방금 들려오는 비명과 총성의 위협 속에서 결국 문을 연다. 그 순간 그는 결단한다. 그녀를 받아들이고 몸으로 지키기로. 그렇게 마틸다는 레옹의 보호 아래에 놓이게 된다. 레옹은 처음엔 그녀를 단순한 동거인으로 여겼고, 심지어 위협을 줄이기 위해 그녀를 제거하는 쪽도 고려했지만, 마틸다의 간절한 눈빛과 집념은 그의 마음을 흔든다.

 마틸다는 레옹에게 청한다. “내가 복수하고 싶어요. 당신처럼 되고 싶어요.” 그는 처음엔 반대한다. 어린 소녀에게 살인의 길을 가르치는 것은 윤리적으로도 위험하며, 아이를 잃게 될까 두려워서다. 그러나 마틸다의 완고한 집념과, 자신이 점점 그녀에게 끌리는 감정 사이에서 레옹은 갈등하고 결국 그녀를 도와 작전을 계획한다.

 레옹은 그녀에게 청소의 기본 원칙을 가르친다. “여자나 아이는 절대 쏘지 말아야 한다.” 그 대상만큼은 지켜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며. 마틸다는 수련을 거듭하고, 두 사람은 점점 동료이자 가족 같은 관계가 된다. 마틸다는 레옹에게 무심코 자신의 감정을 탐색하듯, “당신을 사랑해요” 같은 말들을 내뱉는다. 레옹은 그 고백 앞에 고뇌하며, 무조건 보호하려는 태도로 대응한다.

 어느 날, 마틸다가 스탠스필드를 추적하던 중 그 건물 화장실에서 마주친다. 그는 그녀를 제압하지만 스탠스필드는 그녀를 부하에게 맡긴 뒤 현장을 떠난다. 레옹은 이 사실을 알아채고 그녀를 구출하기 위해 DEA 본부 건물까지 돌진한다. 본부 내부에서 그는 부패 경찰들을 하나하나 제거하고 마틸다가 갇힌 화장실로 향한다. 그곳에서 그는 자신의 목숨을 걸고 어린 소녀를 구출해 낸다.

 스탠스필드는 분노에 사로잡혀 토니의 식당을 습격하고, 레옹이 가명을 쓰던 식당에 진입한다. 격돌하는 가운데 레옹은 중상을 입고 마지막 수단을 택한다. 그는 가슴에 수류탄을 장착하고 스탠스필드와 함께 폭발한다. 마틸다는 토니에게 남겨진 돈을 받아 학교로 돌아간다. 그는 레옹이 남긴 화분을 묻으며, 그가 언젠가 다시 되살아나 자신을 지켜줄 것이라는 희망을 품는다.

죽기 직전에야 살아있다는 고마움을 느끼는 거야

 영화 《레옹》은 단순한 액션 스릴러를 넘어, 인간 내면의 갈망과 보호 본능을 촘촘히 엮은 감정 드라마로 읽히는 작품이다. 이야기는 소녀의 상실과 복수, 그리고 살인자로 살아온 남자의 선택 사이에서 얽히고설키며, 무심한 듯 섬세한 서사를 내비친다.

 레옹은 철저히 고립된 삶을 산다. 그는 자신을 사람으로서 드러내려 하지 않으며, 그가 믿는 것은 단 한 그루의 식물이다. 식물을 돌보는 그의 태도는, 말없이도 누군가를 살리고자 하는 마음의 흔적일 것이다. 마틸다는 반대로, 사랑도 보호도 받지 못한 아이였다. 그녀의 눈빛엔 상처와 복수의 불꽃이 서렸다. 두 인물의 빈 공간이 서로를 끌어당기며, 그들이 지닌 결핍이 서로를 연결한다.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은 천천히, 그러나 깊이 흐른다. 마틸다는 레옹에게 복수를 배우고 싶다고 당차게 말하지만, 그 욕망은 단지 복수만은 아니다. 그녀는 자신을 지켜줄 존재를 원했고, 동시에 자신의 존재를 확인받고 싶었다. “당신을 사랑해요”라는 고백은 단순한 낭만이 아니다. 그것은 상처받은 아이가 던지는 긴급한 구조 요청이자 보호받고 싶은 몸부림이었다. 레옹을 향한 애착이자, 살려야 할 누군가로 여기는 감정이 복합적으로 얽혔다. 레옹은 어색하고 혼란스럽지만, 마틸다를 지키는 결의 앞에서 한 발도 물러설 수 없다.

 여기서 흥미로운 균열이 있다. 바로 “사랑”과 “보호” 사이의 간극이다. 레옹은 그 간극을 몸으로 메우려 한다. 그는 마틸다에게 사랑을 되돌려줄 수는 없지만, 무조건 지키겠다는 결심을 보인다. 어린 마틸다를 향한 낭만적 감정이 아니라, 존재 자체를 보호하려는 깊고 절박한 책임감. 그는 자신의 과오나 과거를 반복하지 않으려는 듯, 목숨을 걸고 그녀에게 남는 유일한 버팀목이 된다.

 이 작품이 주는 감흥은 바로 그 애매한 경계 위에 있다. 관객은 마틸다의 고백에 섣불리 답할 수 없지만, 그 진심의 무게를 외면할 수 없다. 레옹의 최후는 복수의 완성이라기보다 희생의 선물이다. 그는 스스로의 방식으로 사랑을 선택했고, 가장 강력한 언어인 폭발 속에서 그녀를 보호하고 떠난다. 마틸다는 그가 남긴 화분을 묻는 장면에서 그의 존재를 완전히 잃은 것은 아님을, 어딘가 그의 영혼이 여전히 그녀와 함께할 거라는 믿음을 보여 준다.

 감독 루크 베송의 연출은 감정을 허비하지 않으며, 카메라와 음악, 그리고 배우들의 작은 숨결까지 집중시킨다. 클라이맥스의 총격전과 폭발 장면도 단지 시각적 쾌감이 아니라 정서의 폭발이다. 특히 중반 이후로는 액션보다는 심리의 흐름이 더 크게 다가온다. 레옹과 마틸다가 교감하는 장면, 서로가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려는 순간들이 잔잔한 울림을 준다. 이 영화가 오랫동안 사랑받는 이유는, 살인자와 아이라는 극단적 배경 속에서도 ‘사람을 지켜내고자 하는 마음’이 얼마나 강하고 아름다울 수 있는지 보여 주기 때문이다.

 마틸다는 레옹에게 순수한 사랑의 감정을 느낀다. 그 사랑은 보호받고 싶고, 누군가를 믿고 싶은 순정이자 동시에 복수의 소용돌이 속에서 선택된 감정이다. 레옹은 그녀의 그 감정을 응답하기보다, 그것을 감당하고 지켜내려 애쓴다. 결국 그의 선택은 비극이지만, 그 자체가 가장 진실한 사랑의 형태로 남는다.

레옹 스틸컷

 《레옹》은 잔인한 세계 안에 놓인 연약한 감정의 결합이 어떻게 비극으로도 빛이 될 수 있는지를 보여 준다. 살인자와 소녀라는 극단적인 관계는 결국 이해와 보호, 사랑을 향한 몸부림으로 귀결된다. 레옹이 사랑을 선택한 순간, 그의 인생은 기구하면서도 숭고해진다. 마틸다의 상실과 절망은 복수만을 향하던 여정을 넘어, 사랑과 믿음에 대한 욕망으로 재구성된다. 이 둘의 서사가 충돌하고 어우러지는 지점에 영화가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가 있다.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당신은 무엇을 포기할 수 있는가. 레옹과 마틸다의 서사를 따라가다 보면 우리 내면의 외로움과 보호 본능, 누군가를 위해 자신을 걸고 싶은 마음이 조용히 일어난다. 한 번쯤, 그 진심에 귀 기울여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