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이디 버드》는 어른이 되기 직전의 흔들림을 가장 솔직한 온도로 담아낸 성장 영화다. 작은 도시 새크라멘토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는 한 소녀의 욕망과, 그 곁에서 묵묵히 현실을 견디는 엄마의 시선이 교차하며, 이 작품은 누구나 한 번쯤 지나온 청춘의 가장 불완전한 순간을 섬세하게 비춘다. 화려한 사건 대신 일상의 결을 따라가며, 말 한마디와 표정 하나로도 인물의 마음을 깊게 파고든다.
개봉: 2018년
감독: 그레타 거윅
장르: 드라마, 성장
출연: 시얼샤 로넌, 로리 멧칼프, 트레이시 레츠, 루카스 헤지스, 티모시 샬라메
평점: 메타크리틱 94점 / 로튼토마토 신선도 99%
이름을 바꾼 소녀가 바라본 세상
영화는 크리스틴이라는 이름 대신 스스로를 레이디 버드라 부르는 소녀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그녀는 자신이 태어난 새크라멘토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늘 무언가 부족해 보이는 도시, 한계가 분명해 보이는 학교, 그리고 삶을 계산적으로 살아가는 어른들의 태도가 답답하다. 레이디 버드는 뉴욕의 명문 대학에 가는 것이 자신의 인생을 바꿀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라고 믿는다. 하지만 그 꿈은 집안의 형편과는 어울리지 않는 계획이다.
레이디 버드의 엄마 마리온은 병원에서 일하며 가족의 생계를 책임진다. 그녀는 딸을 사랑하지만, 그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이 늘 거칠다. 딸의 성적표를 보고 걱정보다 실망이 먼저 나오고, 옷을 사러 가서도 딸의 취향보다는 가격표를 먼저 본다. 레이디 버드는 그런 엄마의 태도에서 자신이 늘 부족한 사람처럼 느껴진다. 두 사람은 사소한 말다툼을 반복하고, 때로는 차 안에서 크게 다투다 레이디 버드가 충동적으로 문을 열고 뛰어내리는 장면까지 이어진다. 사랑하지만 쉽게 다가갈 수 없는 관계, 그것이 이 가족의 현실이다.
학교에서의 레이디 버드는 늘 어딘가 어중간하다. 연극부 활동을 하며 무대 위에서는 빛나지만, 일상에서는 자신의 자리가 분명하지 않다. 가장 친한 친구 줄리와 함께일 때는 편안하지만, 인기 있는 무리에 끼고 싶은 마음도 크다. 그녀는 자신의 환경을 부끄러워하고, 더 나아 보이는 세계에 속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 부유한 친구의 집에 초대받았을 때, 마치 그곳이 자신의 집인 것처럼 행동한다. 그 순간의 레이디 버드는 허세라기보다, 자신이 되고 싶은 모습에 잠시 몸을 맡긴 아이처럼 보인다.
사랑도 그녀에게는 중요한 성장의 통로다. 첫사랑 대니와의 관계는 종교와 성 정체성이라는 현실의 벽 앞에서 끝나고, 이후 만난 카일은 예술가적 감성을 지닌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책임을 회피하는 인물이다. 레이디 버드는 그와의 관계에서 또 한 번 상처를 받는다. 하지만 이별 뒤에 남은 감정은 단순한 실연의 아픔을 넘어,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씩 성숙해지는 과정으로 이어진다.
마침내 대학 합격 통지서를 받은 레이디 버드는 가족 몰래 뉴욕행을 준비한다. 엄마와의 갈등은 해결되지 않은 채로 시간이 흘러가고, 공항에서의 이별마저도 서먹하게 끝난다. 그러나 뉴욕에 도착한 뒤, 레이디 버드는 처음으로 자신의 이름을 크리스틴이라 부른다. 그리고 고향에서의 시간을 돌아보며, 자신이 그토록 벗어나고 싶어 했던 새크라멘토와 가족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었음을 깨닫는다. 그 깨달음은 전화기 너머로 엄마에게 전하는 조심스러운 메시지로 이어진다. 성장의 순간은 늘 이렇게 조용하게 찾아온다.
멀어지고 싶었던 곳이 가장 나를 닮아 있을 때
《레이디 버드》의 감상은 한 소녀의 성장담을 넘어, 부모와 자식 사이의 복잡한 감정을 다시 바라보게 만든다. 레이디 버드와 마리온의 관계는 사랑과 불만이 뒤엉킨 상태다. 마리온은 딸이 더 나은 삶을 살길 바라면서도, 그 과정에서 딸의 자존감을 다치게 한다. 반면 레이디 버드는 엄마의 헌신을 알면서도, 그 기대가 버겁게 느껴진다. 두 사람은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으면서도, 서로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한다. 이 어긋남은 많은 관객에게 익숙한 장면처럼 다가온다.
그레타 거윅 감독은 이 갈등을 과장하지 않는다. 극적인 화해 장면이나 눈물겨운 대사는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일상의 순간들이 쌓이며 관계의 결을 만든다. 옷을 고르며 나누는 대화, 자동차 안에서 흐르는 침묵, 아침 출근길에 스쳐가는 시선 같은 장면들이 인물들의 감정을 천천히 드러낸다. 그래서 이 영화의 감동은 특정 장면에서 폭발하기보다, 관람이 끝난 뒤 서서히 마음속에서 번져간다.

레이디 버드가 느끼는 정체성의 혼란도 인상적이다. 그녀는 자신이 특별한 사람이라고 믿고 싶어 하지만, 동시에 평범한 현실 속에 묶여 있다. 친구 관계에서도, 연애에서도, 가족 안에서도 늘 조금씩 부족하다고 느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그녀는 깨닫는다. 자신이 특별하지 않다고 해서 가치 없는 존재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오히려 자신이 자라온 환경과 경험이 지금의 자신을 만들었다는 것을 받아들이게 된다. 이 과정은 많은 청춘이 겪는 성장의 통과의례처럼 보인다.
영화의 미장센 역시 감정을 과하지 않게 뒷받침한다. 화려한 색감이나 인위적인 조명 대신, 자연스러운 빛과 소박한 공간이 인물들의 일상을 감싼다. 학교 복도, 집 안의 작은 방, 교회와 극장 같은 공간들은 모두 현실적인 질감을 유지한다. 이러한 연출 덕분에 관객은 스크린 속 이야기를 멀리 있는 드라마가 아니라, 바로 옆에서 벌어지는 일처럼 느끼게 된다.
무엇보다 이 작품이 오래 남는 이유는, 레이디 버드가 결국 자신이 떠나고 싶어 했던 곳을 사랑하게 되는 순간 때문이다. 새크라멘토는 여전히 작고 특별할 것 없는 도시다. 하지만 그곳에서의 기억과 사람들은 그녀의 일부로 남는다. 멀어지고 싶었던 과거가 사실은 자신을 지탱해 준 뿌리였다는 깨달음. 이 감정은 단지 성장 영화의 결말을 넘어, 삶을 대하는 태도까지 바꿔 놓는다.
사랑은 때로 가장 서툰 말로 전해진다
《레이디 버드》는 사랑이 언제나 다정한 말과 포옹으로만 표현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마리온의 사랑은 계산적인 조언과 잔소리로 드러나고, 레이디 버드의 사랑은 반항과 침묵으로 표현된다. 그 둘은 서로에게 상처를 주지만, 동시에 누구보다 깊이 연결되어 있다. 영화의 마지막, 레이디 버드가 엄마에게 남기는 음성 메시지는 그 모든 감정을 단정한 문장으로 정리한다. 고맙다는 말, 미안하다는 말, 그리고 사랑한다는 고백이 뒤늦게 이어진다.
이 장면은 관객에게도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가족에게 얼마나 솔직하게 마음을 전하고 있는가. 혹시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을 몰라, 불필요한 말로 상처를 주고 있지는 않은가. 《레이디 버드》는 이러한 고민을 강요하지 않는다. 다만 조용히 옆에 앉아,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듯 말을 건넨다. 그래서 이 영화는 관람이 끝난 뒤, 자연스럽게 가족에게 전화를 걸고 싶게 만든다.
성장은 거창한 사건이 아니라, 이렇게 작은 깨달음에서 시작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레이디 버드는 뉴욕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지만, 그 출발선에는 늘 새크라멘토에서의 시간이 놓여 있다. 그녀가 더 이상 레이디 버드가 아니라 크리스틴이라고 자신을 부르는 순간, 우리는 한 사람이 어른이 되는 장면을 목격한다. 그 변화는 조용하지만 분명하다.
《레이디 버드》는 청춘의 방황을 따뜻하게 안아주는 영화다. 화려한 성공담도, 극적인 반전도 없지만, 그 대신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진짜 이야기가 있다. 아직 이 작품을 보지 않았다면, 당신의 지난 시간을 떠올리게 해줄 이 영화를 추천한다. 아마 스크린 속 레이디 버드에서, 조금은 서툴렀던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