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건》은 더 이상 세상을 구하지 못하는 히어로의 이야기다. 불멸에 가까웠던 재생 능력은 서서히 몸을 떠나고, 끝없이 싸워온 전사는 피로와 통증 속에서 하루를 버텨낸다. 이 영화는 화려한 승리보다 남겨진 시간에 주목하며, 울버린이라는 이름 뒤에 가려졌던 로건이라는 인간의 얼굴을 천천히 비춘다. 영웅의 마지막 여정은 세상을 구하는 전투가 아니라, 누군가의 삶을 지켜내기 위한 고단한 동행으로 완성된다.
개봉: 2017
감독: 제임스 맨골드
장르: 액션, 드라마, SF
출연: 휴 잭맨, 패트릭 스튜어트, 다프네 킨
평점: 메타크리틱 77점 / 로튼토마토 신선도 93%
사라져가는 힘, 남아 있는 책임
가까운 미래, 돌연변이는 거의 자취를 감췄고 울버린이라 불리던 존재도 더 이상 신화가 아니다. 로건은 국경 근처에서 리무진 운전사로 생계를 이어가며 하루하루를 버틴다. 아다만티움으로 덮였던 몸은 이제 독이 되어 그를 좀먹고, 상처는 예전처럼 쉽게 아물지 않는다. 과거 수많은 전투에서 살아남았던 육체는 늙고 망가졌으며, 술과 고독만이 그의 밤을 채운다.
그가 지키는 또 하나의 존재는 찰스 자비에다. 한때 세상을 이끌던 천재는 이제 기억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한 채 발작을 일으키고, 그 능력은 주변 모두를 위협하는 재앙이 된다. 로건은 찰스를 보호하기 위해 멕시코 국경의 허름한 은신처에 숨어 살며, 약과 돈을 구하기 위해 다시 거리로 나선다. 그에게 남은 삶의 목적은 오직 하나, 더 이상 세상을 구하지 않아도 될 만큼 조용한 끝을 맞이하는 것이다.
그러던 중 로건 앞에 한 아이가 나타난다. 로라는 말수가 적고 거칠며, 위협 앞에서는 본능처럼 발톱을 드러낸다. 그녀의 움직임과 분노, 폭력성은 로건이 지나온 시간을 그대로 닮아 있다. 로건은 본능적으로 그녀를 밀어내려 하지만, 아이를 쫓는 세력의 잔혹함 앞에서 결국 다시 싸움을 선택한다. 과거로부터 도망치려 했던 삶은 그렇게 또 한 번 붙잡힌다.
로라가 실험으로 태어난 존재이며, 자신의 유전자를 기반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은 로건에게 깊은 혼란을 안긴다. 그는 아버지가 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며, 이미 너무 많은 것을 잃었다고 믿는다. 그러나 아이는 보호받지 못하면 살아남을 수 없고, 로건은 자신이 알고 있는 방식으로만 그녀를 지킬 수 있다. 그 선택은 히어로의 귀환이 아니라, 한 인간이 또 다른 인간에게 책임을 지는 과정에 가깝다.
여정은 점점 가혹해진다. 추격은 끈질기고, 로건의 몸은 계속해서 무너진다. 자신의 복제와의 조우는 그가 얼마나 오랫동안 싸워왔는지를 드러내는 거울처럼 작용한다. 결국 마지막 전투에서 로건은 더 이상 회피하지 않는다. 그는 아이들을 탈출시키기 위해 자신의 남은 모든 힘을 사용하고, 스스로 선택한 자리에서 쓰러진다. 불멸을 상징하던 존재는 그렇게 결국 죽음을 맞이한다.
영웅이 아닌 인간으로 남는다는 것
《로건》이 인상적인 이유는 히어로 장르의 외피를 벗고 인간의 노년과 소진을 비추기 때문이다. 이 영화에서 로건은 더 이상 불멸이 아니다. 그는 지치고 분노하며, 후회와 무력감 속에서 하루를 넘긴다. 과거의 선택들이 남긴 상처는 몸보다 마음에 깊이 남아 있고, 그 무게는 발걸음을 무겁게 만든다.
찰스 자비에의 존재는 로건의 내면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낸다. 한때 이상을 설파하던 리더는 이제 돌봄이 필요한 노인이 되었고, 로건은 그를 외면하지 않는다. 그 관계는 보호자와 피보호자의 단순한 구도가 아니라, 서로가 서로에게 남은 마지막 가족이라는 사실을 증명한다. 기억이 무너진 찰스의 고백과 후회는 로건이 감춰왔던 감정을 흔들며, 삶의 끝자락에서야 진실한 대화를 가능하게 한다.

로라와의 동행은 또 다른 질문을 던진다. 폭력으로 태어난 아이에게 무엇을 남길 수 있는가. 로건은 답을 알지 못한 채 행동으로 보여줄 뿐이다. 위험 앞에 서고, 등을 내주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선택. 그것은 영웅의 상징적인 포즈가 아니라, 누군가를 지키고자 하는 본능에 가깝다. 로라는 로건의 과거를 반복하는 존재이면서도, 그가 미처 살지 못한 미래의 가능성이다.
영화의 연출은 이러한 감정을 과장하지 않는다. 황량한 풍경과 거친 액션은 현실의 질감을 그대로 담아내며, 폭력조차 미화되지 않는다. 상처는 고통으로 남고, 싸움은 언제나 대가를 요구한다. 이 세계에서 구원은 화려하게 주어지지 않으며, 선택은 늘 늦고 어렵다. 그 점에서 《로건》은 슈퍼 히어로 영화라기보다 인생의 한 구간을 응시하는 드라마에 가깝다.
마지막 순간, 로건은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아버지라 불린다. 그 한마디는 그가 평생 부정해왔던 관계를 비로소 받아들이게 만든다. 그는 세상을 구하지 못했지만, 한 아이의 삶을 지켜냈다.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듯, 영화는 조용히 막을 내린다. 남겨진 십자가가 X자로 눕혀지는 장면은 울버린의 상징을 내려놓고, 로건이라는 이름으로 기억되기를 바라는 마지막 인사처럼 보인다.
《로건》은 히어로의 몰락을 그리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대신 인간이 늙고, 후회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를 위해 다시 일어서는 과정을 담아낸다. 끝을 향해 가는 이야기이지만, 그 안에는 분명한 온기가 남아 있다. 그것이 이 영화가 오랫동안 기억되는 이유일 것이다.
기존 엑스맨 시리즈의 화려한 액션과 승리를 기대한다면 이 영화는 낯설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삶의 마지막 국면에서 무엇을 지켜야 하는지 묻는 이야기에 마음이 기운다면, 《로건》은 깊은 여운을 남긴다. 영웅이 아닌 인간으로 살아간다는 것, 그리고 그 선택의 무게를 감당하는 용기에 대해 조용히 생각해보게 만드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