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낡은 보드게임 상자를 열고 주사위를 굴리는 순간, 규칙은 “놀이”가 아니라 “현실”이 된다. 《쥬만지》는 집 안으로 정글이 들이닥치는 상상력을, 90년대식 특수효과와 가족 모험극의 리듬으로 몰입하게 만든다. 어릴 땐 괴물과 동물의 난장에 심장이 먼저 뛰었고, 지금 다시 보면 게임이 남기는 건 소동이 아니라 ‘멈춰 있던 시간을 다시 시작하는 법’이라는 걸 알게 된다.
개봉: 1995
감독: 조 존스턴
장르: 판타지, 어드벤처, 가족
출연: 로빈 윌리엄스, 커스틴 던스트, 보니 헌트, 조너선 하이드
평점: 메타크리틱 41점 / 로튼토마토 신선도 55%
주사위가 굴러간 순간, 집이 정글이 된다
브랜트퍼드의 오래된 저택. 주디와 피터 남매는 다락에서 정체불명의 보드게임을 발견한다. 규칙은 간단해 보인다. 말을 옮기고, 주사위를 굴리고, 문장을 읽는다. 하지만 첫 턴부터 바닥이 흔들리고, 벽이 갈라지고, 집 밖이 아닌 집 안으로 ‘야생’이 스며든다. 게임판의 문장이 예언처럼 현실이 되어 튀어나오고, 두 남매는 자신들이 눌러버린 스위치가 무엇인지 뒤늦게 깨닫는다.
게임이 호출한 첫 번째 ‘사람’은 앨런 패리시다. 어린 시절 게임에 빨려 들어가 26년을 정글 속에서 버틴 그는, 성인이 되어 현실로 돌아오지만 현실은 더 낯설다. 부모는 이미 세상을 떠났고, 자신이 살던 집은 타인의 것이 되어 있다. 앨런은 게임을 끝내야 이 모든 소동이 멈춘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다시 주사위를 쥐는 순간 과거의 공포가 되살아나는 것을 견뎌야 한다.
그리고 또 한 명, 앨런의 어린 시절 친구 사라가 합류한다. 사라는 오랫동안 “그날의 실종”을 홀로 감당해 왔고, 앨런의 귀환은 반가움과 원망을 동시에 불러온다. 네 사람은 게임을 진행할수록 점점 더 거칠어진 미션에 휘말린다. 집 안을 질주하는 코끼리 떼와 맹수, 천장을 뒤덮는 곤충 떼, 사냥꾼 반 펠트의 집요한 추격이 이어지며, 저택은 안전한 ‘집’에서 규칙이 지배하는 ‘아레나’로 변한다.
결국 마지막 칸에 도달하기 위해, 그들은 서로의 두려움을 처리하는 방식까지 맞춰야 한다. 누구는 도망치고, 누구는 얼어붙고, 누구는 농담으로 버틴다. 하지만 마지막 문장을 읽는 순간, 폭주하던 현실은 제자리로 되감기고 시간은 다시 정렬된다. 앨런은 어린 시절로 돌아가 같은 선택을 반복하지 않는다. ‘게임을 끝내는 것’은 곧 ‘삶의 루프를 끊는 것’으로 바뀌며, 저택의 정글은 조용히 사라진다.
90년대 특수효과의 질감, 가족영화의 심장박동
《쥬만지》가 주는 쾌감은 “집이라는 일상 공간이 침식당한다”는 설정이 만들어내는 공간 연출에서 시작한다. 초반부는 고전 호러처럼 집의 구조를 익숙하게 보여준 뒤, 사건이 터지면 카메라는 동선이 꼬인 미로처럼 저택을 훑는다. 계단과 복도, 거실과 다락이 추격전의 레일이 되고, 장면 전환은 ‘다음 턴’의 불길한 예고처럼 박자를 끊어준다. 게임판을 클로즈업으로 잡고 컷을 튕기는 편집은, 관객에게도 “다음 문장은 뭘 터뜨릴까”라는 기대를 심는다.
특수효과는 지금 기준으로 매끈하진 않다. 그래서 오히려 좋다. CG로 만든 생물의 표면은 가끔 플라스틱처럼 보이는데, 그 틈을 실물 효과의 무게감이 메운다. 실제로 《쥬만지》는 ILM과 아말가메이티드 다이내믹스 등 당대 효과 팀의 조합으로 생물을 구현했고, 이 작업은 새턴 어워즈 ‘베스트 스페셜 이펙츠’ 수상으로도 이어졌다. :화면 속 동물들이 완벽히 ‘진짜’가 아니라는 사실이, 이 영화에선 단점보다 장점으로 작동한다. 동화책이 실사로 튀어나온 듯한 어색함이, 원작 그림책의 감각을 다른 방식으로 재현하기 때문이다.

연기의 중심은 로빈 윌리엄스다. 그는 익숙한 광기 어린 텐션만 밀어붙이지 않고, 한 박자 눌러서 “정글에서 돌아온 사람”의 불안과 죄책감을 몸에 붙인다. 메타크리틱에 수록된 가디언의 피터 브래드쇼는 윌리엄스가 과장된 루틴을 줄이고 상대적으로 이성적인 결을 택한 점을 짚는다. 그 선택 덕분에 영화는 단순 소동극이 아니라, ‘시간을 잃어버린 사람’의 복귀담으로도 읽힌다. 반면 같은 페이지에 인용된 TV Guide는 원작 그림책의 기묘한 우아함이 영화화 과정에서 많이 희석되었다고 본다. 나 역시 그 지점엔 고개가 끄덕여진다. 다만 그 빈자리를 영화는 다른 방식으로 채운다. 이야기의 결을 얇게 만드는 대신, 세트피스의 속도와 장난스러운 공포로 관객의 손을 놓지 않는다.
로튼토마토의 평점은 55%로 호불호가 갈리지만, “눈요기엔 풍성하나 플롯은 빈약하다”는 식의 평가 속에서도 가족 관람용 재미는 인정받아 왔다. 실제로 다시 보면, 플롯의 촘촘함보다 ‘규칙을 따라가며 공포를 통과하는 체험’이 우선인 영화다. 이 영화가 당대 관객에게 남긴 건 완벽한 서사라기보다, 크리스마스 시즌에 극장에서 함께 소리 지르며 웃을 수 있는 모험의 감각이었다.
게임을 끝낸다는 건, 멈춘 시간을 다시 걷는 일
《쥬만지》를 다시 볼 때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정글보다 ‘시간’이다. 앨런은 26년을 잃어버렸고, 사라는 26년 동안 그날을 설명하지 못한 채 살아왔다. 남매는 어른의 사정을 모르고 버튼을 눌렀다가, 그 결과를 어른들과 함께 처리한다. 이 구조가 묘하게 현실적이다. 우리는 종종 선택의 의미를 모른 채 주사위를 던지고, 결과가 터진 뒤에야 규칙을 배운다.
개인적으로는 앨런이 “돌아왔지만 돌아온 게 아닌” 얼굴로 거실을 둘러보는 장면에서 이상하게 마음이 멈칫했다. 나도 어느 순간부터 익숙했던 방, 익숙했던 사람들, 익숙했던 루틴이 낯설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때 필요한 건 거창한 결심이 아니라, 게임판 위에서라도 한 칸씩 움직이는 용기다. 앨런이 매 턴을 두려워하면서도 주사위를 놓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영화는 마지막에 잔인할 만큼 단순한 결론을 준다. 끝내려면 끝까지 해야 한다. 중간 저장도, 규칙 회피도 없다. 요즘처럼 미루기가 쉬운 시대에 이 결론은 꽤 직설적이다. 해야 할 대화, 정리해야 할 관계, 다시 시작해야 할 일 앞에서 주사위를 굴리는 건 결국 내 몫이라는 것. 《쥬만지》의 정글은 스크린 밖으로 나오지 않지만, “지금 멈춰 있는 게 있다면 한 턴만이라도 진행해 보라”는 메시지는 의외로 현실에 잘 꽂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