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총알이 빗발치는 산악지대에, 특수부대가 ‘말’을 타고 들어간다. 2001년 9월 11일 직후, 지도에도 선명하지 않은 전장에 먼저 투입된 12명의 그린베레. 《12 솔져스》는 거창한 영웅담을 외치기보다, 낯선 땅에서 동맹을 설득하고 보급도 없이 버텨야 했던 ‘현장’의 감각을 붙잡는다. 승리는 빠르게 찾아오지만, 영화가 남기는 질문은 오히려 그 다음 장면에서 시작된다.
개봉: 2018
감독: 니콜라이 퓰시그
장르: 전쟁, 액션, 드라마
출연: 크리스 헴스워스, 마이클 섀넌, 마이클 페냐, 나비드 네가반
평점: 메타크리틱 54점 / 로튼토마토 신선도 50%
말 위에 올라탄 첫 번째 돌파
2001년 9월 11일 테러 이후, 미군은 아프가니스탄으로 향할 첫 작전을 준비한다. 경험은 많지만 ‘처음’인 지휘관, 미치 넬슨 대위는 12명 규모의 ODA 팀을 이끌고 산악지대로 투입된다. 문제는 지형과 정보다. 도로는 통제되고, 적은 어디에 숨어 있는지조차 확신할 수 없다. 팀은 북부동맹을 찾아가 탈레반을 몰아낼 연합을 제안하지만, 상대는 쉽게 손을 잡지 않는다. 특히 장군 도스툼은 신뢰보다 현실을 먼저 본다. 병력, 무기, 보급, 그리고 승산. 넬슨은 ‘미군이 할 수 있는 것’과 ‘현지 세력이 원하는 것’ 사이를 계산하며 협상의 문을 연다.
동맹은 성사되지만 작전은 더 거칠어진다. 차량이 들어갈 수 없는 산길을 넘어야 하기에, 팀은 말을 타고 이동한다. 위성통신과 레이저 유도, 현대 장비를 쥔 병사들이 전통적인 기동 수단에 몸을 맡기는 장면은 이 영화의 상징이 된다. 첫 교전에서 팀은 적의 수와 화력을 체감한다. 그들이 가진 우위는 ‘정밀한 공중지원’과 ‘훈련으로 다진 냉정한 판단력’뿐이다. 넬슨의 팀은 포위와 기습을 반복하며 전선을 조금씩 밀어 올리고, 도스툼의 기병대는 험지에서 기동하며 빈틈을 파고든다.
결정적 전투는 마자르이샤리프를 향한 공세에서 벌어진다. 수세에 몰린 북부동맹은 공포와 분열로 흔들리고, 미군 팀 역시 탄약과 피로가 바닥난다. 그럼에도 넬슨은 후퇴 대신 ‘연결’을 선택한다. 현지 병력의 사기를 붙잡고, 공중지원 좌표를 끝까지 유지하며, 도스툼과의 갈등을 정면으로 조정한다. 전투는 큰 대가를 치르지만 결국 도시가 함락되고, 팀은 임무를 완수한 채 귀환한다. 크레딧 직전, 말 탄 병사의 형상이 스쳐 지나가며 이 작전이 ‘기록’으로 남았음을 암시한다.
승리의 속도, 전쟁의 무게
《12 솔져스》가 흥미로운 점은 ‘전쟁영화의 문법’을 꽤 정직하게 사용하면서도, 장면 안에서 계속 협상과 조율을 전면에 세운다는 점이다. 전투는 전투로 끝나지 않는다. 다음 전투를 위해선 통역의 문장 하나, 현지 지휘관의 자존심, 병사들의 공포 관리가 필요하다. 그래서 영화의 긴장감은 총격뿐 아니라 테이블 위에서 자주 발생한다. 이 구성이 설득력 있게 느껴진 이유는, 영화가 “누가 더 용감한가”로만 밀어붙이지 않고 “누가 더 오래 버틸 수 있는 판단을 하는가”를 반복해서 보여주기 때문이다.
연출은 감독의 데뷔 장편치고 꽤 ‘현장감’에 집착한다. 전투 시퀀스는 과도한 스타일링보다 지형과 동선을 읽게 만드는 편집을 택하고, 먼지와 역광, 산 능선의 실루엣을 이용해 거리감을 체감하게 만든다. 말 위에서 사격할 때 흔들리는 시선, 협곡에서 소리가 튕겨 돌아오는 느낌은 핸드헬드에 가까운 리듬으로 구현된다. 특히 기병 돌격과 공중지원이 겹치는 장면은 고전 서부극의 기병전 문법을 현대전으로 이식한 듯한 쾌감이 있다. 실제로 몇몇 평론이 이 영화를 ‘현대전이면서도 올드패션하게 찍힌 전쟁 이야기’라고 정리한 것도 그런 결을 짚은 표현이다.

다만 이 영화의 한계도 그 문법에서 함께 나온다. 로튼토마토의 총평이 “탄탄한 캐스트와 사실 기반의 흥미로운 이야기에도, 깊이와 뉘앙스가 부족한 순간이 있다”라고 말하듯, 인물의 내면을 파고드는 장면은 비교적 짧다. 이 지점이 아쉬우면서도, 동시에 ‘실화 기반 작전극’의 선택처럼 보이기도 했다. 영화는 전쟁의 도덕적 복잡성을 길게 토론하기보다, 그 복잡성이 현장에서 어떤 형태로 튀어나오는지, 즉 동맹의 불안정함과 작전의 급박함으로 보여주는 쪽에 더 에너지를 쓴다.
관람하면서 가장 생생하게 남은 장면은 넬슨이 팀원들에게 “말을 타는 법”을 익히게 하는 대목이었다. 보통 전쟁영화에서 훈련 몽타주는 의례처럼 지나가는데, 여기서는 그 장면이 ‘현대전의 아이러니’를 압축한다. 최신 장비를 들고도, 결국 낯선 땅의 규칙에 몸을 맞춰야 한다는 사실. 그 장면을 보고 나니 이후 전투가 화려해 보이기 보다는 승리를 갈망하는 군인들의 처절함이 먼저 보였다.
평단 반응도 그 지점에서 갈린다. 메타크리틱 평균이 54점으로 “호불호가 섞인 평가”에 가깝고, 어떤 매체는 “관심 가질 만한 전우애를 끝까지 붙잡는다”라고 장점을 짚는 반면, 다른 쪽에서는 러닝타임 대비 캐릭터의 결이 뭉툭하다고 말한다. 내 감상은 중간쯤이다. 깊이의 부족이 보이긴 하지만, ‘작전’의 윤곽을 또렷하게 그려내는 순간들이 있어서 끝까지 집중이 유지됐다. 그리고 그 집중이 마지막에 남기는 질문을 더 또렷하게 만들었다.
이기는 장면 이후에 남는 것들
영화는 임무 성공으로 마무리되지만, 관객의 머릿속은 그 뒤를 자동으로 계산하게 된다. “우리는 이 전쟁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이다. 실제로 영화 말미에 스쳐 가는 ‘말 탄 병사’의 조형물은, 9·11 이후 아프가니스탄에 투입된 특수부대를 기리는 ‘America’s Response Monument’로 알려져 있다. 이 동상은 영화에 짧게 등장하기도 한다.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용기’의 정의를 조금 다르게 생각하게 됐다. 총을 들고 앞으로 나가는 순간만이 아니라, 낯선 문화권에서 동맹의 언어를 배우고, 통역이 놓친 뉘앙스를 다시 확인하고, 눈앞의 승리와 내일의 관계를 함께 계산하는 태도 역시 용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살다 보면 우리도 각자의 전장에 들어가야 할 때가 있다. 회사든, 관계든, 어떤 프로젝트든. 그때 필요한 건 의욕만이 아니라, 서로 다른 규칙을 가진 사람들과 ‘같이 움직일 조건’을 만드는 기술이다. 《12 솔져스》는 그 기술이 전쟁에서도, 일상에서도 얼마나 비싸고 중요한지 조용히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이 영화가 사회적으로 남긴 흔적은 화려한 트로피보다 기억의 방식이다. 실화의 틀 안에서, 특수작전이 대중에게 어떻게 서사화되는지, 그리고 그 서사가 무엇을 강조하고 무엇을 생략하는지까지 생각하게 만든다. 영화를 다 보고 난 뒤, 엔딩보다도 초반의 결심 장면이 더 오래 남았다. 누구도 정답을 모르는 순간에 “가겠다”고 말하는 사람들. 그 한 문장이, 결국 모든 이야기를 시작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