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맨체스터 바이 더 씨》는 한 남자가 감당할 수 없는 상실을 품은 채 살아가는 시간을 조용히 따라가는 영화다. 커다란 사건이나 극적인 반전 대신, 이 작품은 무너진 마음이 일상에서 어떻게 버텨지는지를 묻는다. 차갑고 고요한 바닷가 마을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는 슬픔을 극복하라고 재촉하지 않는다. 그저 슬픔과 함께 살아가는 인간의 얼굴을 끝까지 바라본다.
개봉연도 2017
감독 케네스 로너건
장르 드라마
출연 케이시 애플렉, 미셸 윌리엄스, 루카스 헤지스
평점 메타크리틱 96점 로튼토마토 신선도 96%
돌아온 남자, 멈춰 있는 시간
보스턴에서 관리직 노동자로 살아가는 리 챈들러는 말수가 적고 사람들과 거리를 둔 채 하루를 버틴다. 그의 일상은 단조롭고 반복적이며, 타인과의 접촉을 최소화한 채 흘러간다. 그러던 어느 날, 형 조의 갑작스러운 사망 소식이 전해지며 리는 고향 맨체스터로 돌아오게 된다. 차가운 바닷바람과 익숙한 거리, 그리고 잊고 지냈다고 믿었던 기억들이 다시 그를 붙잡는다.
조의 장례를 치르는 과정에서 리는 형이 남긴 유언을 마주한다. 그는 조의 아들 패트릭의 후견인으로 지정되어 있었고, 이는 리가 원하지 않았던 책임이었다. 패트릭은 아버지를 잃은 슬픔 속에서도 학교 생활과 친구 관계를 이어가며 삶을 계속하려 애쓴다. 그러나 리에게 맨체스터는 고향이지 다시는 발을 들이고 싶지 않았던 장소였다.
영화는 현재와 과거를 교차하며 리의 삶에 숨겨진 비극을 서서히 드러낸다. 과거의 리는 지금과 다른 사람이었다. 사랑하는 아내 랜디와 아이들, 평범하지만 충만했던 가정이 있었다. 그러나 어느 날 밤, 사소한 방심에서 비롯된 화재는 모든 것을 앗아간다. 아이들을 잃은 리는 그날 이후 삶의 방향을 잃고, 자신을 용서하지 못한 채 살아가게 된다.
이 비극은 극적으로 소비되지 않는다. 경찰서에서의 장면, 총을 집어 드는 리의 무너진 눈빛은 설명보다 강렬하게 다가온다. 그 순간 이후 리는 스스로를 벌하듯 살아간다. 관계에서 물러나고, 감정을 닫고, 삶을 최소한의 기능만 남긴 채 유지한다.
현재의 시간으로 돌아와, 리는 패트릭과 함께 살아야 할지 고민한다. 그러나 그는 끝내 맨체스터에 머무를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곳은 그에게 치유의 공간이 아니라, 계속해서 상처를 열어젖히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리가 떠나는 선택을 실패나 도피로 규정하지 않는다. 그 선택은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생존 방식이다.
슬픔은 사라지지 않고 남는다
이 영화는 슬픔을 특별한 태도로 다룬다. 《맨체스터 바이 더 씨》는 상실 이후의 삶을 극복의 서사로 포장하지 않는다. 시간이 흐르면 괜찮아진다는 위로도 건네지 않는다. 대신 어떤 슬픔은 끝내 사라지지 않으며, 인간은 그것을 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담담하게 보여준다.
케이시 애플렉의 연기는 감정을 절제한 채 깊은 울림을 만든다. 울부짖거나 감정을 쏟아내지 않아도, 그의 굳은 어깨와 멈춘 시선만으로도 내면의 고통이 전해진다. 특히 일상 속에서 무너질 듯 말 듯 버티는 모습은 많은 관객에게 현실적인 공감을 안긴다. 슬픔은 눈물보다 침묵 속에서 더 크게 드러난다는 사실을 이 영화는 알고 있다.

미셸 윌리엄스가 연기한 랜디와의 재회 장면은 이 영화의 정서적 정점이다. 짧은 대화 속에서 두 사람은 여전히 서로를 아끼고 있음을 드러낸다. 그러나 사랑이 남아 있다고 해서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다. 용서와 이해, 미련과 체념이 뒤섞인 그 장면은 이 영화가 품고 있는 감정의 깊이를 상징한다.
패트릭이은 영화의 또 다른 축이다. 그는 상실을 겪었지만, 삶을 멈추지 않는다. 연애를 하고, 친구를 만나고, 음악을 듣는다. 그 모습은 리에게는 버거울 만큼 밝고, 동시에 희망처럼 보인다. 두 사람의 관계는 치유라기보다 공존에 가깝다. 서로 다른 방식으로 슬픔을 안고 살아가는 두 인물이 나란히 걷는 모습을 보여주며 영화는 상실을 대하는 다른 두 태도를 보여준다. 그러나 그 어느 것도 정답이나 오답이라고 단정짓지 않는다.
그럼에도 살아간다는 것
영화의 결말은 명확한 해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리의 삶이 나아질 것이라는 확신도 주지 않는다. 다만 그는 패트릭과의 관계를 완전히 놓지 않으며, 아주 작은 연결을 남긴다. 그 선택은 거창하지 않지만, 그래서 더욱 현실적이다. 《맨체스터 바이 더 씨》는 슬픔을 이겨내야 할 대상으로 보지 않는다. 그것은 함께 살아가야 할 무게이며, 때로는 내려놓을 수 없는 짐이다. 이 영화는 우리에게 묻는다. 모든 상처가 아물지 않아도, 삶은 계속될 수 있는가. 영화는 리와 패트릭을 통해 우리가 스스로 답을 찾게 만든다.
이 작품은 감정을 강요하지 않는다. 눈물을 유도하지도, 위로를 서두르지도 않는다. 그저 한 사람의 시간을 끝까지 지켜본다. 그래서 영화가 끝난 뒤에도, 그 고요한 바닷가의 풍경과 리의 표정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삶이란 언제나 완전한 회복을 약속하지 않는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순간, 이 영화는 비로소 깊은 울림으로 다가온다. 조용히 마음에 스며드는 작품을 찾고 있다면, 《맨체스터 바이 더 씨》는 분명 오래 기억에 남을 선택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