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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랑콜리아(2011) 영화 리뷰 <허무주의에 대한 고찰>

by dreamobservatory 2026. 1. 3.

영화-멜랑콜리아-포스터
멜랑콜리아 포스터

 《멜랑콜리아》는 세계의 끝을 예고하는 행성의 접근 앞에서, 인간이 느끼는 공포와 무기력, 그리고 이상하리만치 고요한 수용의 순간을 응시하는 작품이다.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은 종말을 스펙터클로 소비하지 않고, 우울이라는 감정의 풍경으로 끌어당긴다. 이 영화에서 멸망은 폭발하지 않는다. 대신 서서히 스며들며, 인물들의 내면과 풍경을 잠식한다. 아름다움과 파멸이 동시에 존재하는 장면들은 관객을 불편하게 매혹시키고, 끝내 설명할 수 없는 여운을 남긴다.

개봉: 2011년
감독: 라스 폰 트리에
장르: 드라마, SF
출연: 커스틴 던스트, 샤를로트 갱스부르, 키퍼 서덜랜드
평점: 메타크리틱 80점 / 로튼토마토 신선도 80%

결혼식의 밤, 이미 시작된 균열

 영화는 결혼식이라는 가장 축복받아야 할 순간에서 출발한다. 저스틴의 결혼식은 화려한 저택과 정성스러운 연출 속에서 진행되지만, 시작부터 어딘가 어긋나 있다. 신랑과 신부는 예식장으로 향하는 길에서 길을 잃고, 초대받은 하객들은 점점 지쳐간다. 축하와 웃음으로 채워져야 할 밤은, 이상할 만큼 느슨하고 불안정한 공기로 가득 차 있다.

 저스틴은 미소를 짓고 있지만, 그 얼굴은 결혼이라는 제도가 요구하는 감정에 완전히 들어맞지 않는다. 축사와 형식적인 대화가 이어질수록 그녀의 표정은 점점 굳어가고, 주변 사람들의 기대는 그녀를 더욱 고립시킨다. 사회적 성공을 상징하는 상사,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압박, 사랑이라는 말 뒤에 숨은 책임들. 저스틴은 그 모든 것에서 서서히 이탈한다.

 결국 결혼식은 끝까지 완주되지 못한다. 신랑과의 관계는 무너지고, 저스틴은 방을 떠돌며 감정의 중심을 잃는다. 이 파국은 갑작스럽게 폭발하지 않는다. 오히려 무력하게 가라앉는다. 이 장면들은 그녀의 내면에 이미 깊숙이 자리 잡은 우울을 시각적으로 드러내며, 이후 다가올 더 큰 종말을 은근히 예고한다.

 결혼식의 붕괴 이후 영화는 시점을 옮겨, 저스틴의 언니 클레어와 그녀의 가족이 머무는 저택으로 향한다. 이곳에서 하늘에는 새로운 행성 ‘멜랑콜리아’가 등장한다. 처음에는 지구를 스쳐 지나갈 것이라 여겨지지만, 그 거리는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인물들은 이 사실을 각자의 방식으로 받아들인다.

 아이러니하게도 우울에 잠식되어 있던 저스틴은 이 상황에서 오히려 차분해진다. 반면 이성적이고 안정적으로 보였던 클레어는 점점 공포에 휘둘린다. 세계의 끝이 눈앞에 다가올수록, 감정의 무게 중심은 완전히 뒤바뀐다. 영화는 이 대비를 통해, 우리가 정상이라고 부르는 상태가 얼마나 불안정한 것인지 조용히 묻는다.

우울이 알려주는 종말의 얼굴

 《멜랑콜리아》는 서사보다 감각에 집중하게 만든다. 이 영화는 사건을 설명하려는 대신 등장 인물을 직접 느끼게끔 한다. 느린 카메라 움직임, 반복되는 음악, 인물의 시선을 따라가는 프레이밍은 관객을 저스틴의 내면에 가깝게 끌어당긴다. 특히 바그너의 음악과 함께 펼쳐지는 이미지들은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흐린다.

 슬로모션 이미지들은 영화 전체의 정서를 압축한 장면들이다. 말에 묶여 쓰러지는 저스틴, 하늘을 가득 채운 행성, 무너지는 풍경들. 이 이미지들은 앞으로 벌어질 이야기를 요약하면서도, 그 의미를 쉽게 규정하지 않는다. 감독은 명확한 해석을 거부한 채, 감정의 여지를 남겨둔다.

 저스틴의 우울은 병리적 상태로만 묘사되지 않는다. 그녀는 세상의 규칙에 적응하지 못한 실패자가 아니라, 오히려 세상이 가진 허구를 가장 먼저 감지한 인물처럼 보인다. 결혼, 직업, 안정된 미래라는 약속이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 그녀는 이미 알고 있다. 그래서 세계가 끝난다는 사실 앞에서도 그녀는 크게 흔들리지 않는다.

 반대로 클레어는 질서와 안전을 믿어온 인물이다. 그녀에게 행성의 접근은 곧 삶의 기반이 붕괴되는 사건이다. 이성적인 설명과 과학적 수치로 불안을 통제하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 방식은 힘을 잃는다. 아이를 지키고자 하는 모성, 일상을 유지하려는 몸부림은 점점 절박해진다.

멜랑콜리아-스틸컷-밤하늘-장면
멜랑콜리아 스틸컷

 영화의 후반부, 저스틴이 아이와 함께 ‘마법의 동굴’을 만드는 장면은 이 작품의 정서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것은 생존을 위한 공간도, 희망을 담보하는 구조물도 아니다. 다만 다가오는 순간을 견디기 위한 의식에 가깝다. 저스틴은 끝을 부정하지 않고, 그 끝을 맞이하는 태도를 선택한다.

《멜랑콜리아》는 종말을 공포의 대상으로 비추지 않는다. 이 영화에서 파멸은 이미 우리 안에 존재해온 감정과 닮아 있다. 우울, 무력감, 허무. 감독은 그것들을 우주적 사건으로 확장시켜, 개인의 감정과 세계의 종말을 겹쳐 놓는다. 그 결과 영화는 거대하면서도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가 된다.

 모든 것이 끝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우리는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까. 저스틴처럼 담담해질 수 있을까, 아니면 클레어처럼 끝까지 매달리게 될까. 《멜랑콜리아》는 답을 주지 않는다. 그 답은 우리의 몫이다.

파멸 앞에서 드러나는 진짜 얼굴

 《멜랑콜리아》는 보기 편한 영화는 아니다. 느리고, 불안하며, 때로는 감정을 소모시킨다. 하지만 그 불편함 속에는 분명한 힘이 있다. 이 작품은 삶이 무너지는 순간에야 비로소 드러나는 감정의 진실을 포착한다. 우울은 극복의 대상이 아니라, 어떤 이들에게는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일지도 모른다.

 화려한 결말도, 명확한 희망도 제시하지 않지만, 영화가 끝난 후 남는 여운은 오래 지속된다. 종말을 다룬 수많은 영화 중에서도 《멜랑콜리아》는 유난히 조용하고, 그래서 더욱 잔인하다. 삶의 불안과 감정의 균열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싶은 이들에게 이 영화는 깊은 울림을 남길 것이다. 쉽게 추천할 수는 없지만, 한 번쯤 마주해야 할 작품임에는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