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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라이트(2017) 영화 리뷰 '2017년 최고의 영화'

by dreamobservatory 2025. 12. 27.

영화-문라이트-포스터
문라이트 포스터

 《문라이트》는 한 소년이 성장하는 시간을 따라가며, 정체성과 사랑, 그리고 침묵 속에 감춰진 감정의 결을 섬세하게 비추는 작품이다. 세 개의 장으로 나뉜 이 영화는 삶의 특정 순간들이 어떻게 한 인간의 얼굴과 태도를 만들어 가는지를 조용히 응시한다. 화려한 사건 대신 시선과 침묵, 색채와 음악으로 감정을 전달하며, 성장의 고통과 따뜻함을 동시에 품는다.

개봉: 2017
감독: 배리 젠킨스
장르: 드라마
출연: 트레반테 로즈, 애쉬튼 샌더스, 알렉스 히버트, 나오미 해리스, 마허샬라 알리
평점: 메타크리틱 99점 / 로튼토마토 신선도 98%

빛과 그림자 사이에서 자라는 얼굴

 영화는 마이애미의 햇빛 아래에서 시작된다. 어린 소년 샤이론은 또래 아이들 사이에서 쉽게 섞이지 못하고, 늘 한 발짝 떨어진 채 세상을 바라본다. 말수가 적고, 감정을 드러내는 법을 배우지 못한 그는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어딘가 불안정한 존재다. 친구들의 조롱과 폭력은 일상이 되고, 그 속에서 샤이론은 자신을 보호하는 방법을 알지 못한 채 움츠러든다.

 그의 삶에 잠시 숨을 고르게 해주는 존재는 마약상 후안과 그의 연인 테레사다. 아이러니하게도 사회가 쉽게 낙인찍은 인물인 후안은 샤이론에게 가장 안정적인 어른의 얼굴로 다가온다. 그는 바다에서 샤이론을 안고 수영을 가르치며, 물에 몸을 맡기는 감각을 알려준다. 이 장면은 이후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상징적인 장면이다. 떠오르지 못한 감정, 그러나 분명히 존재하는 자기 자신을 처음으로 받아들이는 순간이다.

영화-문라이트-스틸컷-소년에게-수영을-가르치는-남자
문라이트 스틸컷

 시간이 흘러 샤이론은 사춘기의 문턱에 선다. 몸은 자라지만 마음은 여전히 불안정하다. 어머니 폴라는 점점 마약에 의존하며 아들을 돌볼 여유를 잃어가고, 샤이론은 집에서도 보호받지 못한다. 학교에서 유일하게 숨을 쉴 수 있는 순간은 케빈과 함께 있을 때다. 해변에서 나눈 짧은 대화와 어색한 침묵, 그리고 처음으로 마주한 감정의 떨림은 샤이론의 내면을 크게 흔든다. 그러나 이 순간은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폭력과 조롱은 다시 그를 집어삼키고, 샤이론은 끝내 자신을 지키기 위해 원치 않는 선택을 하게 된다.

 마지막 장에서는 전혀 다른 모습의 샤이론을 만난다. 근육질의 몸, 무표정한 얼굴, 그리고 철저히 닫힌 태도. 그는 더 이상 예전의 소년처럼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그 단단한 외형 아래에는 여전히 상처 입은 내면이 숨 쉬고 있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 다시 만난 케빈과의 재회는 그가 스스로를 어떻게 만들어왔는지를 천천히 드러낸다. 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침묵과 눈빛은 많은 말보다 깊은 이야기를 전한다.

침묵으로 완성되는 성장의 초상

 《문라이트》는 감정을 설명하지 않고, 감정을 보여주는 쪽을 택한다. 인물들이 말을 아끼는 순간, 관객은 오히려 더 많은 것을 느끼게 된다. 샤이론의 시선이 머무는 곳, 고개를 숙이는 방식, 잠시 멈칫하는 손짓 하나하나가 그의 마음을 대변한다. 이 조용한 연출은 성장의 고통을 더욱 선명하게 만든다.

 영화의 색채와 빛은 감정을 또 다른 언어로 전한다. 푸른 밤, 붉은 조명, 따뜻한 햇살은 각 장면의 감정 상태를 은근히 드러낸다. 특히 달빛과 바다의 이미지는 샤이론의 정체성을 상징적으로 비춘다. 바다는 그에게 두려움이자 안식처이며, 달빛은 숨겨진 모습을 드러내는 빛이다. 영화 제목이 암시하듯, 그는 언제나 완전한 어둠도, 완전한 빛도 아닌 그 사이에서 자신을 찾아간다.

 또한 이 작품은 남성성에 대한 고정된 이미지에 질문을 던진다. 강해야 한다는 압박, 감정을 드러내지 말아야 한다는 사회적 기대 속에서 샤이론은 자신을 감춘다. 그러나 영화는 그 침묵을 비난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침묵이 만들어진 배경과 이유를 이해하려 한다. 이 태도는 우리로 하여금 인물을 판단하기보다 바라보게 만든다.

 후안과 테레사, 그리고 케빈은 샤이론의 삶에서 각기 다른 방식으로 빛이 된다. 이들은 그를 완전히 구원하지는 못하지만, 최소한 잠시라도 숨을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준다. 《문라이트》는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 있는 것이 거창한 사건이 아니라, 누군가의 따뜻한 시선일 수 있음을 말해준다.

달빛 아래에서 비로소 드러나는 진짜 얼굴

 영화의 마지막에서 샤이론은 처음으로 자신의 감정을 온전히 마주한다. 오래 감춰두었던 마음을 인정하는 순간, 그의 얼굴에는 이전과 다른 표정이 스친다. 그것은 완전한 해방도, 명확한 결말도 아니다. 다만 스스로를 부정하지 않겠다는 작은 선언에 가깝다. 이 미묘한 변화가 《문라이트》를 더욱 오래 기억하게 만든다.

 《문라이트》는 빠르게 소비되는 상업적인 서사가 아니다. 조용히 곁에 남아, 시간이 지나 다시 떠올리게 되는 영화다. 자신의 정체성 앞에서 망설여본 적이 있는 사람, 말하지 못한 감정을 마음속에 묻어둔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작품은 깊은 울림으로 다가올 것이다. 달빛처럼 은은하지만 분명한 빛으로, 이 영화는 우리 각자의 얼굴을 비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