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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벨(2006) 영화 리뷰 <네 개의 사건이 하나로 이어진다>

by dreamobservatory 2026. 1. 8.

영화-바벨-포스터
바벨 포스터

 《바벨》은 서로 다른 대륙과 언어, 삶의 조건 속에 놓인 인물들이 하나의 우연한 사건으로 연결되며 펼쳐지는 이야기다. 모로코의 사막에서 울린 총성이 미국의 가정, 멕시코 국경, 일본 도쿄의 고층 빌딩까지 파문처럼 번져간다. 영화는 사건보다 감정의 진폭에 집중하며, 말이 닿지 않는 순간에도 인간은 어떻게든 서로를 이해하려 애쓴다는 사실을 섬세하게 포착한다. 엇갈린 삶들이 만들어내는 비극과 연민, 그리고 그 사이에서 발견되는 미약한 희망이 이 작품의 중심을 이룬다.

개봉: 2006
감독: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
장르: 드라마
출연: 브래드 피트, 케이트 블란쳇,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 기쿠치 린코
평점: 메타크리틱 69점 / 로튼토마토 신선도 69%

언어가 닿지 않는 자리에서 시작된 이야기

 모로코의 한 외딴 마을에서 염소를 지키던 소년들은 우연히 손에 넣은 소총을 장난삼아 쏜다. 그 총알은 관광버스를 스치고, 그 안에 타고 있던 미국인 부부 중 아내 수전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남긴다. 사막 한가운데에서 의료 지원조차 받기 힘든 상황, 남편 리처드는 아내를 살리기 위해 필사적으로 마을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한다. 언론은 이 사건을 곧바로 테러로 규정하고, 총성 하나는 국제적인 긴장으로 증폭된다. 그러나 그 출발점에는 그저 세상을 잘 모르는 아이들의 무모한 호기심이 있었다.

 같은 시간, 미국에서는 그들의 아이들을 돌보기 위해 멕시코 출신의 보모 아멜리아가 고군분투한다. 부모의 귀환이 지연되자 그녀는 조카의 결혼식에 아이들을 데리고 국경을 넘는 선택을 한다. 축제의 열기 속에서 아이들은 잠시 웃음을 되찾지만, 돌아오는 길은 순탄하지 않다. 취기에 휩싸인 조카의 무모한 행동으로 국경을 넘는 과정이 꼬이고, 결국 아이들은 사막 한가운데에 남겨진다. 가족을 지키려던 결정이 또 다른 위기를 불러오는 순간이다.

 지구 반대편 일본 도쿄에서는 전혀 다른 고독이 펼쳐진다. 청각 장애를 지닌 소녀 치에는 화려한 도시 한복판에서도 깊은 고립을 느낀다. 아버지는 모로코 사건과 연관된 과거를 품고 있지만, 딸과의 관계에서는 끝내 충분한 다리가 되어주지 못한다. 치에는 파티와 클럽을 전전하며 누군가에게 닿고 싶어 하지만, 말이 아닌 몸짓과 시선으로 건네는 신호는 늘 엇갈린다. 그녀의 외로움은 총성과는 다른 종류의 폭음처럼 도시의 밤을 울린다.

 영화는 이 세 갈래의 이야기를 교차 편집하며 하나의 감정선으로 엮어낸다. 사막에서 울려 퍼진 총알이 국경을 넘고, 대륙을 건너, 결국 한 소녀의 침묵과 이어지는 과정은 단순한 우연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인물들은 서로의 얼굴조차 알지 못하지만, 그들의 선택과 실수는 보이지 않는 실처럼 단단히 연결되어 있다. 《바벨》은 이 연결의 고리를 통해 세상이 얼마나 촘촘한 관계망 위에 놓여 있는지를 조용히 드러낸다.

 결말에 가까워질수록 영화는 책임의 방향을 한 사람에게 돌리지 않는다. 아이의 실수, 어른의 판단, 국가의 대응, 언론의 해석이 겹겹이 쌓이며 비극은 증폭된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감독은 누구도 쉽게 단죄하지 않는다.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지만 결과는 비극으로 이어졌다는 사실, 그 불가피한 어긋남이 이 작품의 가장 쓰라린 정조를 만든다.

말보다 먼저 전해지는 감정의 언어

 서로 다른 문화권의 인물들이 등장하지만, 《바벨》이 집중하는 것은 차이보다 공통점이다. 사막의 소년과 도쿄의 소녀, 국경을 넘는 보모와 병상에 누운 여인 모두가 같은 질문 앞에 선다. '나는 이 세계에서 제대로 이해받고 있는가.' 영화는 이 질문에 명쾌한 해답을 주지 않는다. 대신 침묵과 시선, 망설이는 손짓 같은 미세한 표현들로 감정의 결을 쌓아 올린다. 언어가 끊긴 자리에서도 인간은 끝내 누군가에게 다가가려는 존재임을 이 작품은 반복해서 보여준다.

영화-바벨-스틸컷-아내를-안고있는-남자
바벨 스틸컷

 이냐리투 감독 특유의 리얼리즘도 돋보인다. 인물들은 영웅처럼 행동하지 않는다. 위기 앞에서 두려워하고, 때로는 잘못된 선택을 한다. 리처드는 아내를 살리기 위해 분노를 터뜨리지만, 그 분노조차 절박함에서 비롯된 것이다. 아멜리아는 아이들을 지키고 싶었을 뿐이지만, 상황은 그녀를 범법자로 몰아간다. 치에는 사랑받고 싶어 몸부림치지만, 세상은 그녀의 손짓을 이해하지 못한다. 영화는 이 모든 인물들을 연약한 인간으로 그리며, 관객이 어느 한쪽에 서서 판단하기보다 그들의 곁에 서서 함께 숨 쉬도록 이끈다.

 촬영 또한 이야기의 감정을 증폭시키는 중요한 장치다. 모로코의 거친 풍경은 인물들의 고립감을 강조하고, 멕시코 결혼식의 열기 넘치는 색감은 잠시 찾아온 안도와 동시에 불안의 전조처럼 느껴진다. 도쿄의 네온사인은 치에의 외로움을 더욱 또렷하게 드러낸다. 각 공간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인물의 내면을 비추는 거울로 기능한다.

 음악 역시 감정을 과장하지 않고, 장면 사이의 여백을 메운다. 소리 없는 순간들이 오히려 더 크게 다가오는 이유다. 특히 치에의 시점에서 펼쳐지는 장면들은 관객에게도 일시적인 침묵을 경험하게 만든다. 이 침묵은 불편함이 아니라 공감의 통로가 된다. 우리가 평소 무심히 지나쳤던 타인의 고독이 그 순간만큼은 피부에 와 닿는다.

서로를 향해 건너는 보이지 않는 다리

 《바벨》은 하나의 사건이 얼마나 넓은 파장을 만들어내는지 보여준다. 총성 하나가 세계를 흔드는 과정은 현대 사회의 연결성을 상징한다. 그러나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연결 그 자체보다, 그 연결이 얼마나 쉽게 오해와 상처로 변할 수 있는가에 있다. 우리는 같은 언어를 쓰면서도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다른 언어를 쓰면서도 마음을 나눌 수 있다. 이 작품은 그 역설을 이야기의 중심에 둔다.

 영화는 각 인물의 감정을 촘촘히 따라간다. 리처드와 수전 부부의 위기는 부부 사이에 쌓여 있던 거리감을 드러내고, 극한 상황 속에서 그들은 다시 서로를 붙잡는다. 아멜리아는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삶을 걸고, 그 선택은 비극적인 결과로 이어지지만 그녀의 마음만큼은 끝내 의심받지 않는다. 치에는 아버지와의 단절 속에서 타인에게 손을 내밀고, 그 손짓은 번번이 허공을 가르지만 관객에게는 절실한 외침으로 남는다. 이 인물들의 서사는 서로 교차하며 하나의 질문으로 수렴된다. 우리는 타인의 고통을 얼마나 진지하게 바라보고 있는가.

 《바벨》은 거창한 해결책이나 화해를 제시하지 않는다. 모든 오해가 풀리고, 상처가 말끔히 아물지는 않는다. 다만 영화는 아주 작은 가능성을 남긴다. 사막에서 도움의 손길을 내밀던 마을 사람들, 국경에서 아이들을 찾아 헤매던 리처드의 눈빛, 딸을 껴안는 일본인 아버지의 서투른 포옹. 이 장면들은 완전한 이해 대신, 이해하려는 노력의 순간을 기록한다. 그 순간들이 모여 세상은 조금씩 나아간다는 믿음, 그것이 《바벨》이 끝내 건네는 조용한 희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