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지의 제왕:왕의 귀환》은 중간계를 뒤덮은 마지막 전쟁과 하나의 반지를 둘러싼 여정을 마무리하는 대서사시다. 미나스 티리스의 공성전과 펠렌노르 평원의 기병 돌격, 죽은 자들의 군대가 몰려오는 장면까지, 압도적인 스케일과 정교한 세계관이 결합해 판타지 영화의 정점을 보여준다. 프로도와 샘, 아라곤과 로한과 곤도르의 동맹은 세상의 끝을 향해 걸어가면서도 끝내 희망을 놓지 않는다. 톨킨의 원작을 충실히 옮긴 이 작품은 반지 전쟁의 끝과 함께 각자 자기 자리에서 평온을 찾아가는 인물들의 여정을 섬세하게 그려내며 긴 여정의 마침표를 찍는다.
영화 정보
개봉: 2003
감독: 피터 잭슨
장르: 판타지, 모험, 드라마
출연: 일라이저 우드, 이안 맥켈런, 비고 모텐슨, 션 애스틴, 앤디 서키스 외
평점: 메타크리틱 94점 / 로튼토마토 신선도 93%
마지막 여정, 운명의 산으로 향하는 발걸음
《반지의 제왕:왕의 귀환》은 헬름 협곡 전투 이후의 세계에서 시작한다. 사우론의 눈은 더욱 강렬해지고, 모르도르의 군세는 곤도르를 향해 조용히 집결한다. 곤도르의 수도 미나스 티리스는 절벽 위에 층층이 세워진 하얀 도시지만, 도시를 지키는 섭정 데네소르는 절망과 광기에 사로잡혀 있다. 그는 로한과의 동맹을 믿지 못하고, 다가오는 어둠 앞에서 점점 무너져 내린다. 반면 간달프와 피핀은 사우론의 공격에 대비해 성벽을 정비하고, 마지막 방어선을 붙들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인다.
한편 로한에서는 세오덴 왕과 에오윈, 에오메르가 최후의 기병대를 소집한다. 헬름 협곡에서 간신히 승리를 거둔 뒤이지만, 곤도르가 무너지면 중간계 전체가 무너진다는 사실을 모두 알고 있다. 아라곤은 레골라스, 김리와 함께 자신의 진짜 정체인 곤도르의 왕위 계승자로서의 사명을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그는 중간계의 운명을 바꾸기 위해 전설로만 전해지던 죽은 자들의 길로 들어선다. 그 길 끝에는 과거의 배신으로 저주받아 죽지도 살지도 못한 유령 군대가 기다리고 있다.

미나스 티리스 앞에는 마침내 사우론의 군대가 도착한다. 검은 문에서 쏟아져 나온 오크와 트롤, 나즈굴의 비명이 성벽 위로 쏟아지고, 거대한 공성탑이 하얀 도시의 성문을 파괴한다. 절망이 점점 성 안으로 스며들 때, 먼 들판 끝에서 로한의 기마대가 모습을 드러낸다. 절체절명의 순간 수천의 말발굽이 대지를 울리며 달려 내려오는 장면은 이 작품을 상징하는 이미지 중 하나다. 세오덴 왕의 연설과 함께 이어지는 돌격은 전쟁 영화 전체를 통틀어도 손에 꼽힐 만한 장면으로, 성장과 희생, 마지막 자존심을 한 번에 보여준다.
그러나 승리의 기세는 오래가지 않는다. 모르굴 기수와 올리판트 부대가 전장에 합류하면서 전세는 다시 혼돈에 빠진다. 바로 이때 아라곤이 이끄는 유령 군대가 전장으로 밀려 들어와 사우론의 군세를 휩쓸어 버린다. 초록빛 안개처럼 쏟아지는 유령들의 벽은 육체와 물질을 가리지 않고 모든 것을 집어삼키며 전세를 단숨에 뒤집는다. 미나스 티리스는 가까스로 무너지지 않고, 남은 자들은 마지막 승부를 위해 다시 모인다.
그와 동시에 반지를 없애기 위한 여정은 점점 끝을 향해 나아간다. 프로도와 샘, 그리고 골룸은 모르도르의 황량한 땅을 가로지르며 점점 지쳐간다. 무게를 알 수 없는 반지는 프로도의 정신을 조금씩 잠식하고, 샘은 친구를 지키기 위해 묵묵히 짐을 떠맡는다. 골룸은 이 틈을 파고든다. 그는 교묘하게 둘 사이를 이간질하고, 프로도를 설득해 샘을 내쫓게 만든 뒤 키리스 앙골로 유도한다. 그곳에는 거대한 거미 셸롭이 숨어 있고, 프로도는 덫에 걸린다.
샘은 포기하지 않는다. 프로도가 죽었다고 생각하는 순간에도 그는 반지를 주워 들고, 친구를 되찾기 위해 오르크가 지키는 탑으로 향한다. 결국 프로도를 구해내고 다시 반지를 돌려주며 둘은 마지막 힘을 짜내 운명의 산으로 걸음을 옮긴다. 온몸이 먼지와 재로 덮이고, 한 걸음 내딛는 것조차 힘겨운 상황에서 샘은 자신은 반지를 멜 수 없지만 프로도를 들어 올릴 수는 있다며 친구의 몸을 짊어진다. 이 장면은 긴 여정을 지탱해 온 우정의 정수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운명의 산 정상에서 골룸은 끝내 모습을 드러낸다. 그는 프로도의 손가락을 물어뜯어 반지를 되찾고 기쁨에 취해 화염 위에서 춤추듯 휘청거리다가 용암 속으로 추락한다. 반지는 그렇게 사라지고, 사우론의 탑 바랏두르는 마침내 무너진다. 거대한 눈은 산산이 흩어지고, 모르도르의 대지는 거대한 균열과 함께 붕괴한다. 절벽 끝에 남겨진 프로도와 샘은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하는 순간 거대한 독수리들에게 구출된다.
전쟁이 끝난 뒤, 곤도르에서는 새로운 왕의 대관식이 열린다. 아라곤은 왕관을 쓰고 곤도르와 로한, 엘프와 인간의 연합을 상징하는 존재로 우뚝 선다. 그가 프로도와 친구들에게 절을 올리는 장면은 이 긴 여정이 한 사람의 영웅 서사가 아니라, 여러 평범한 존재들이 함께 만들어낸 이야기였음을 보여준다. 이후 프로도와 빌보는 간달프, 엘론드, 갈라드리엘과 함께 중간계를 떠나 서쪽 바다를 향해 떠난다. 샘은 샤이어로 돌아와 가정을 이루고, 가족과 함께 평온한 나날을 보낸다. 반지 원정대의 이야기는 이렇게 각자가 찾아낸 자리에서 조용히 완성된다.
세계의 끝에서 완성된 우정과 용기의 서사
《반지의 제왕:왕의 귀환》의 가장 큰 강점은 트릴로지의 마지막 작품이라는 부담을 안고도 전체 이야기를 놀라울 정도로 매끄럽게 수렴해 간다는 점이다. 톨킨의 방대한 세계관과 복잡한 서사를 한 편의 영화로 정리하는 일은 애초에 무모해 보일 정도지만, 피터 잭슨은 원작의 핵심 정서와 테마를 놓치지 않는다. 미나스 티리스의 구조와 도시의 질감, 곤도르와 로한의 문화적 차이, 모르도르의 황량하고 숨막히는 풍경까지, 설정 하나하나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세계관의 일부로 자연스럽게 스며 있다. 원작 독자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상징과 장면 대부분이 충실하게 옮겨져 있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원작에 대한 존중 위에 세워진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전투 장면의 연출은 여전히 이 작품을 언급할 때 빠지지 않는 부분이다. 펠렌노르 평원에서 로한 기마대가 새벽을 가르며 내리달리는 장면은 단지 화려한 볼거리를 넘어 전쟁의 공포와 결의를 동시에 담아낸다. 세오덴 왕의 목소리가 울려 퍼진 뒤 수천의 깃발과 창끝이 한 방향으로 기울어지는 순간, 화면은 구경의 대상이 아니라 그 속으로 끌려 들어가는 경험에 가깝다. 이어지는 유령 군대의 참전은 다소 초현실적인 이미지임에도 전쟁의 피로와 끝을 향한 급류 같은 감정을 시각적으로 압축해 보여준다. 수많은 병사들이 죽어간 전쟁이 결국 오래전의 죄를 속죄하는 죽은 자들의 행진으로 정리된다는 사실은, 톨킨이 구축한 신화적 스케일을 잘 드러낸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점은 거대한 전쟁 서사의 중심에 결국 몇 명의 작은 인물이 있다는 사실이다. 프로도는 영웅적 기개로만 반지를 견디는 인물이 아니다. 그는 반지의 유혹에 점점 무너져 가는 인물이고, 골룸과 마찬가지로 그 힘에 지배당할 위기에 놓인다. 이 과정에서 샘의 존재는 더욱 중요해진다. 샘은 선택받은 영웅이 아니라 옆집에서 볼 법한 평범한 원정대원에 가깝지만, 그의 끈기와 헌신이 아니었다면 반지는 끝까지 운명의 산에 도달하지 못했을 것이다. 샘이 프로도를 업고 산을 오르는 장면은 이 작품이 결국 누구의 이야기인지, 그리고 어떤 가치가 세상을 구하는지 조용히 말해준다.
아라곤의 서사 역시 이 작품에서 완성된다. 그는 처음부터 왕의 자리를 탐하는 인물이 아니라, 과거와 혈통의 무게를 두려워하던 방랑자에 가까웠다. 그러나 《반지의 제왕:왕의 귀환》에서 그는 더 이상 뒤로 물러서지 않는다. 죽은 자들의 길을 선택하는 장면과 마지막으로 모르도르의 문 앞에서 소수의 군대로 사우론에게 도전장을 내미는 연설은 그가 왜 진정한 왕인지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아라곤의 용맹은 권위를 과시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반지를 멘 두 친구를 위해 세상의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려놓는 선택이라는 점에서 더 의미를 갖는다.
연출과 음악도 이 작품을 특별하게 만든다. 피터 잭슨은 거대한 전투 장면과 친밀한 감정 장면 사이의 리듬을 정교하게 조율한다. 폭발과 함성으로 가득한 전장을 보여준 뒤 곧바로 샤이어를 떠올리게 하는 조용한 숏으로 전환하거나, 프로도와 샘의 지친 얼굴을 가까이 담아 관객의 시선을 다시 인간의 스케일로 되돌린다. 호워드 쇼어의 음악은 이러한 장면 전환을 부드럽게 이어 붙이는 역할을 한다. 로한의 리듬이 살아 있는 테마와 곤도르의 장중한 선율, 샤이어의 포근한 피리 소리가 서로 대조를 이루며, 전쟁과 일상, 영광과 평범함 사이의 거리를 음악으로 설명한다.

이 작품이 특별한 이유는 마지막에 보여주는 결말 처리 방식에도 있다. 사우론이 패배하고 반지가 파괴된 뒤에도 영화는 상당 시간 동안 인물들의 이후를 보여준다. 아라곤의 대관식, 아르웬과의 재회, 프로도와 빌보의 항해, 샘이 고향에서 가정을 꾸리는 모습까지 이어지는 일련의 장면은 전쟁의 승리만으로는 서사가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고, 영웅들도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 프로도가 샤이어의 평온함 속에서도 완전히 편안하지 못한 채 결국 서쪽으로 떠나는 선택을 하는 대목은, 반지를 멘 자의 상처가 어떤 의미로 남는지 보여주는 섬세한 결말이다.
이러한 결말은 톨킨의 세계관을 성급하게 닫아 버리기보다, 천천히 문을 닫으면서 관객이 그 안에서 걸어 나온 시간들을 곱씹을 수 있게 돕는다. 《반지의 제왕:왕의 귀환》은 전쟁과 마법, 왕의 귀환이라는 영웅적 이미지를 전면에 내세우면서도, 결국 작은 이들이 서로를 위해 내딛는 발걸음이 세상을 구한다는 명제를 차분하게 완성한다. 그래서 이 작품은 거대한 볼거리의 집합을 넘어, 긴 여정을 함께한 관객에게도 하나의 이별과 치유의 시간을 선물하는 영화로 남는다.
다시 꺼내 보고 싶은 마지막 장
《반지의 제왕:왕의 귀환》은 대작 판타지의 기준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영화다. 미나스 티리스와 펠렌노르 평원의 전투, 유령 군대의 등장 같은 장면들은 지금 다시 봐도 압도적이지만,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 힘은 결국 프로도와 샘, 아라곤과 동료들이 나누는 믿음과 우정에서 나온다. 세상을 뒤흔든 전쟁이 끝난 뒤에도 각자 삶의 자리로 돌아가 평온을 찾아가는 엔딩은 여운이 길게 남는다. 한 해에 한 번쯤, 겨울밤에 다시 꺼내 보고 싶은 이야기로 남는 작품이다. 장르를 떠나 좋은 서사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이 마지막 장을 꼭 한 번 끝까지 함께 걸어가 보기를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