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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2008) 영화 리뷰 <거꾸로 가는 시간, 앞으로 가는 용기>

by dreamobservatory 2025. 12.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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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포스터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는 태어날 때부터 노인의 모습으로 세상에 나온 한 남자의 삶을 따라가며, 시간과 사랑, 그리고 인간의 존재를 조용히 되묻는 작품이다. 모두와 다른 출발선에 선 인물의 인생을 통해, 영화는 정상이라는 기준이 얼마나 허약한지, 그리고 각자의 속도로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섬세하게 펼쳐 보인다. 삶은 언제나 한 방향으로 흐르지 않으며, 그 속에서도 의미와 기쁨은 충분히 발견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이 영화는 담담하게 전한다.

개봉: 2008
감독: 데이비드 핀처
장르: 판타지, 드라마, 로맨스
출연: 브래드 피트, 케이트 블란쳇, 타라지 P 헨슨, 줄리아 오몬드
평점: 메타크리틱 70점 / 로튼토마토 신선도 72%

거꾸로 흐르는 시간 위에 놓인 한 인간의 삶

 1918년, 1차 세계대전이 끝나가던 해 뉴올리언스에서 벤자민 버튼은 태어난다. 그러나 그의 시작은 축복과는 거리가 멀다. 어머니는 그를 낳다가 돌아가시고, 그의 몸은 신생아처럼 작지만 얼굴과 신체는 영락없는 노인이었다. 아버지는 이 기형적인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아이를 버리듯 요양원 앞에 두고 떠난다. 그렇게 벤자민은 사회의 가장자리에 놓인 공간에서 생을 시작한다. 그를 받아들인 이는 요양원을 운영하던 퀴니였다. 퀴니는 벤자민을 특별하게 대하지 않는다. 다만 한 인간으로서 품에 안고, 있는 그대로의 존재로 키워나간다.

 시간이 흐를수록 벤자민의 몸은 이상한 방향으로 변화한다. 다른 사람들은 늙어가지만, 그는 점점 젊어진다. 요양원에서의 어린 시절은 묘한 대비로 가득하다. 그는 아이의 마음을 지녔지만 주변은 죽음을 앞둔 노인들이다. 작별이 일상인 공간 속에서 벤자민은 삶과 죽음을 누구보다 가까이서 배운다. 누군가는 생을 마무리하고, 그는 그 옆에서 조용히 시간을 되짚는다. 이 경험은 훗날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를 결정짓는 중요한 밑바탕이 된다.

 벤자민은 성장하며 데이지를 만난다. 발레리나를 꿈꾸는 소녀 데이지는 활기차고 자유롭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강하게 끌리지만, 시간의 방향이 다르다는 사실은 늘 그들 사이에 그림자처럼 드리워져 있다. 데이지가 성장하고, 사랑과 상처를 경험하는 동안 벤자민은 여전히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외형 속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지 못한다. 그는 바다로 나가 선원이 되고, 세계를 떠돌며 다양한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다. 이 여정은 도피이자 탐색이다. 사랑을 피하기 위한 선택이면서도, 삶의 폭을 넓히기 위한 결정이다.

 시간이 지나 데이지가 중년이 되었을 때, 벤자민은 비로소 그녀와 같은 시간대에 도착한다. 두 사람은 가장 평범해 보이는 시기에 가장 찬란한 사랑을 나눈다. 같은 속도로 걷고, 같은 온도로 하루를 보낸다. 그러나 이 순간이 오래 지속될 수 없다는 사실을 그들 모두 알고 있다. 벤자민은 다시 젊어지고, 데이지는 늙어간다. 결국 그는 사랑하는 이와 아이를 남겨둔 채 떠나기로 결심한다. 자신의 존재가 짐이 되는 순간을 만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말년의 벤자민은 아이의 모습으로 퇴행한다. 기억은 흐릿해지고, 세상은 낯설어진다. 데이지는 그를 다시 돌본다. 이번에는 역할이 뒤바뀐다. 사랑은 시간의 방향을 바꾸지 못하지만, 그 형태를 바꾸며 끝까지 남는다. 벤자민은 결국 데이지의 품에서 생을 마감하고, 그의 이야기는 한권의 책이 끝나듯 조용히 닫힌다.

다르게 태어났다는 사실이 가르쳐준 용기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가 특별한 이유는 설정의 독창성 때문만은 아니다. 영화는 이 기이한 설정을 통해 삶을 평가하는 우리의 기준을 흔든다. 벤자민은 언제나 어긋난 존재다. 어린 시절에는 너무 늙어 있고, 사랑할 나이에는 너무 다르며, 아이를 가질 즈음에는 너무 젊어진다. 그는 단 한 번도 사회가 정해둔 적절한 시점에 서지 못한다. 그러나 그가 살아가는 태도는 놀라울 만큼 단단하다.

 벤자민은 자신의 운명을 비관하거나 저항하지 않는다. 대신 그 주어진 조건 안에서 가능한 선택을 한다. 떠날 때를 알고, 머물 때를 판단하며, 사랑해야 할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 애쓴다. 영화는 영웅적인 결단보다 일상의 선택을 더 중요하게 다룬다. 매일을 어떻게 대하는지, 타인의 삶을 어떻게 존중하는지가 한 인간의 생을 결정짓는다는 메시지가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영화-벤자민-버튼의-시간은-거꾸로-간다-스틸컷-노인의-모습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스틸컷

 데이비드 핀처 감독의 연출은 감정을 과잉으로 몰아가지 않는다. 사건은 담담하게 이어지고, 시간은 조용히 흐른다. 그 덕분에 관객은 벤자민의 삶을 관찰자가 아닌 동행자의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다. 브래드 피트의 연기는 외형적 변화보다 내면의 결을 섬세하게 따라간다. 젊어질수록 깊어지는 공허함, 기억이 사라질수록 선명해지는 감정이 그의 눈빛과 호흡에 고스란히 담긴다.

 이 영화가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 이유는 누구나 벤자민과 닮은 지점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시간표로 살아간다. 누군가는 빠르고, 누군가는 느리다. 비교는 언제나 존재하지만, 삶의 가치는 속도로 결정되지 않는다.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는 그 사실을 설교하지 않고, 하나의 인생을 통해 보여준다.

두려움 대신 삶을 선택하라는 조용한 당부

 영화의 마지막에서 벤자민은 딸에게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듯 전한다. 인생은 예상과 다르게 흘러가고, 언제든 넘어질 수 있으며, 때로는 너무 늦었다고 느껴질 수도 있다고. 그러나 그 모든 순간에도 살아볼 가치는 충분하다고 말한다. 이 장면은 영화를 보는 우리에게도 같은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지금 자신의 시간 속에서 용기 있게 살고 있는가.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는 특별한 인생을 그리지만, 결국 평범한 삶을 향해 손을 내민다. 두려워하지 말고, 자신의 리듬을 믿으며, 주어진 순간을 온전히 살아가라는 메시지다. 나이가 어떻든, 출발이 달랐든, 인생의 즐거움과 의미는 스스로 발견해 나갈 수 있다. 이 영화를 보고 난 뒤, 우리는 조금 더 다정한 시선으로 자신의 삶을 바라보게 된다. 그리고 그 시선은 분명, 오늘을 살아갈 힘이 되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