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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래드 피트, 크리스토프 발츠 주연 바스터즈:거친 녀석들(2009) 영화 리뷰

by dreamobservatory 2026. 2. 24.

바스터즈:거친-녀석들-포스터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 포스터

 전쟁 영화라고 생각하고 틀었는데, 총격보다 먼저 귀를 붙잡는 것은 대사이고, 액션보다 먼저 심장을 조이는 것은 침묵이다.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은 역사극의 외형을 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언어와 시선, 연기와 편집으로 긴장을 설계하는 영화에 가깝다. 쿠엔틴 타란티노는 2차 세계대전을 사실 재현의 대상으로 두기보다, 영화적 상상력이 역사를 어디까지 밀어붙일 수 있는지를 시험한다. 보고 나면 잔혹함보다 구조가 기억에 남고, 복수보다 장면의 리듬이 오래 남는다.

개봉연도: 2009
감독: 쿠엔틴 타란티노
장르: 전쟁, 드라마, 블랙코미디
출연: 브래드 피트, 크리스토프 발츠, 멜라니 로랑, 마이클 패스벤더, 다이앤 크루거, 엘리 로스
평점: 메타크리틱 69점 / 로튼토마토 신선도 89%

말 한마디가 총알보다 먼저 도착하는 밤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은 1941년 나치 점령하 프랑스에서 시작된다. 프랑스 농부 라파디트의 집에 SS 장교 한스 란다가 찾아오고, 평온해 보이던 대화는 점차 심문으로 바뀐다. 란다는 숨겨진 유대인 가족의 존재를 밝혀내고 학살을 지시한다. 그 현장에서 살아남은 소녀 쇼산나 드레퓌스는 가까스로 도망친다.

 한편 알도 레인 중위는 나치에 대한 보복을 목적으로 유대계 미군 특수부대인 바스터즈를 조직한다. 이들은 점령지에서 나치 병사들을 잔혹하게 처단하며 공포의 대상이 된다. 영화는 쇼산나의 생존 서사와 바스터즈의 작전을 교차시키며 전개되고, 서로 다른 복수의 방향이 결국 하나의 장소를 향해 수렴한다.

 시간이 흘러 쇼산나는 파리에서 영화관을 운영하며 신분을 숨긴 채 살아간다. 독일의 전쟁 영웅 프레데릭 촐러가 그녀에게 관심을 보이고, 그의 영향으로 괴벨스가 주도하는 영화 시사회가 쇼산나의 극장에서 열리게 된다. 히틀러와 나치 수뇌부가 참석하는 이 행사는 쇼산나에게 가족의 복수를 실행할 절호의 기회가 된다. 그녀는 극장 필름의 인화 재질이 잘 탄다는 점을 이용해 상영관 전체를 불태울 계획을 세운다.

 동시에 영국 정보부도 독일 여배우이자 이중첩자인 브리짓 폰 하메르스마르크를 통해 같은 시사회를 타격하려 한다. 여기에 바스터즈 대원들이 투입되지만, 지하 술집에서 벌어진 접선 작전은 사소한 손가락 제스처 하나 때문에 정체가 발각되며 참극으로 끝난다. 이 장면 이후 계획은 크게 흔들리지만 완전히 멈추지는 않는다.

 결말에서 쇼산나의 계획과 바스터즈의 폭파 작전은 예기치 않은 방식으로 동시에 작동한다. 극장은 화염에 휩싸이고, 히틀러와 나치 핵심 인물들은 상영관 안에서 몰살된다. 역사적 사실과는 다른 결말이지만, 영화는 바로 그 지점에서 자신이 재현이 아니라 영화적 복수극임을 분명히 한다. 마지막에 알도 레인은 란다의 이마에 칼로 흔적을 남기며, 이것이 자신의 걸작일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대사로 조여 오고 편집으로 폭발하는 연출

 이 영화를 다시 보며 가장 먼저 정리된 생각은 이것이었다.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의 핵심 장르는 전쟁이 아니라 서스펜스다. 타란티노는 총격 장면보다 대화 장면에 더 긴 러닝타임을 배분하고, 그 대화 안에 정보 비대칭을 심어 관객의 불안을 키운다. 관객은 누가 거짓말을 하는지, 누가 이미 눈치챘는지, 누가 먼저 폭발할지를 추적하게 된다. 오프닝 농가 장면과 지하 술집 장면이 특히 그렇다. 둘 다 공간은 제한적이고 인물은 앉아 있지만, 긴장감은 액션 영화의 추격 장면만큼 빠르게 상승한다.

 촬영과 쇼트 설계도 매우 계산적이다. 로버트 리처드슨의 촬영은 얼굴을 크게 끌어당기는 클로즈업과 인물 간 거리감을 보여주는 미디엄 쇼트를 교차하면서 심리적 압박을 만든다. 눈빛을 잡는 타이밍, 테이블 위 소품을 찍는 인서트, 그리고 대화의 리듬에 맞춘 쇼트 리버스 쇼트가 장면의 숨을 조절한다. 지하 술집 시퀀스에서 손가락 숫자 제스처를 보여주는 순간은 서사의 전환점이자, 정보가 이미지로 번역되는 대표적인 예다. 말로 설명하지 않고 프레임 하나로 상황을 뒤집는다.

바스터즈-거친-녀석들-스틸컷-보드게임을-즐기는-사람들
바스터즈: 거친녀석들 스틸컷

 타란티노 특유의 챕터 구성도 인상적이다. 장면을 단순 연결하지 않고 장으로 나누어 배치함으로써, 관객은 하나의 전쟁 서사를 따라가기보다 여러 개의 장르 조각을 순차적으로 체험한다. 어떤 장면은 스파이 스릴러처럼 흐르고, 어떤 장면은 서부극의 결투처럼 긴장을 쌓으며, 마지막 극장 시퀀스는 멜로드라마의 복수 감정과 프로파간다 영화의 아이러니를 한 화면에 겹친다. 여기에 독일어, 프랑스어, 영어, 이탈리아어가 서사의 장치로 작동하면서 언어 자체가 권력과 생존의 기술이 된다.

 음악 사용도 빼놓기 어렵다. 시대 재현에만 묶이지 않고 장면의 정서와 장르적 톤을 우선하는 선곡이 이어지며, 덕분에 영화는 역사극의 틀에서 조금씩 벗어나 타란티노의 영화 문법으로 이동한다. 이 선택은 호불호를 부르지만, 바로 그 이질감이 작품의 정체성을 만든다. 실제 역사와 영화적 판타지를 섞는 방식이 화면뿐 아니라 사운드에서도 반복되는 셈이다.

 비평 반응이 엇갈렸다는 점도 흥미롭다. 메타크리틱에는 극찬과 비판이 함께 남아 있다.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 쪽에서는 타란티노의 성숙한 연출로 읽었고, 반대로 뉴욕타임스와 일부 평자들은 러닝타임의 늘어짐이나 자기과시적 스타일을 지적했다. 메타크리틱 페이지에 실제로 이런 온도 차가 나란히 배치되어 있는데, 나는 이 분열 자체가 영화의 성격을 잘 보여준다고 본다. 이 작품은 모든 관객을 설득하기보다, 자기 방식으로 장면을 밀어붙이는 영화다. 그래서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대사의 결까지 기억되는 작품이 되고, 맞지 않는 사람에게는 과잉으로 보이기 쉽다.

 권위 있는 지표로 보면 평가의 축은 꽤 분명하다. 로튼토마토에서는 신선도 89퍼센트와 함께 타란티노식 장르 혼합의 쾌감이 강점으로 정리되어 있고, 메타크리틱은 69점으로 보다 신중한 합의를 보여준다. 즉 대중적 열광과 비평적 유보가 동시에 존재하는 작품이다. 개인적으로는 이 균형이 오히려 신뢰를 준다. 완벽해서가 아니라, 영화가 분명한 개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발생한 반응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수상 이력도 작품의 위치를 설명해 준다.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은 제8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촬영상, 편집상 등 여러 부문을 포함해 8개 부문 후보에 올랐고, 크리스토프 발츠가 남우조연상을 수상했다. 또한 2009년 칸영화제에서 크리스토프 발츠는 이 작품으로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특히 한스 란다는 현대 영화사에서 가장 인상적인 악역 중 하나로 자주 언급되는데, 그 평가의 중심에는 발츠의 다국어 연기와 톤 조절 능력이 있다.

역사를 바꾸는 영화가 아니라, 영화를 보는 태도를 바꾸는 영화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을 보고 나면 가장 오래 남는 질문은 이것이다. 영화는 역사 앞에서 어디까지 자유로울 수 있는가. 이 작품은 사실의 충실한 재현보다 감정의 보상과 서사의 응징을 택한다. 그래서 누군가에게는 통쾌한 대체 역사극이고, 누군가에게는 다루기 조심스러운 비극을 장르적 오락으로 변환한 불편한 시도다. 두 반응 모두 충분히 이해된다. 중요한 것은 영화가 그 논쟁을 피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내게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은 폭력의 영화라기보다 시선의 영화로 남는다. 누가 누구를 바라보는지, 누가 먼저 상대의 언어를 읽는지, 누가 분위기를 지배하는지가 장면의 승패를 가른다. 현실에서도 비슷하다고 느꼈다. 사람 사이의 긴장은 큰 사건보다 작은 신호에서 먼저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말투, 멈칫함, 눈빛, 손짓 같은 것들 말이다. 이 영화를 본 뒤에는 일상적인 대화 장면을 볼 때도 프레이밍과 리액션을 더 의식하게 됐다. 좋은 영화는 스토리만 남기는 것이 아니라 관찰 습관까지 바꾼다고 생각하는데,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이 내게 그랬다.

 무엇보다 이 작품은 영화관이라는 공간을 복수와 기억의 장소로 재정의한다. 마지막 시퀀스에서 스크린은 단순한 상영 장치가 아니라 역사에 맞서는 얼굴이 된다. 그래서 엔딩 이후 남는 감정은 통쾌함 하나로 정리되지 않는다. 웃음, 긴장, 불편함, 감탄이 한꺼번에 남는다. 그리고 그 복합적인 감정이야말로 타란티노가 이 작품에서 끝까지 지키고 싶었던 영화적 힘이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