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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울의 아들(2015) 영화 리뷰 <오늘, 아들의 시체가 도착했다>

by dreamobservatory 2026. 1. 6.

사울의-아들-포스터
사울의 아들 포스터

 《사울의 아들》은 홀로코스트라는 인류 최악의 비극을 배경으로, 한 인간이 끝까지 붙들고자 했던 존엄의 의미를 좇는 작품이다. 죽음이 일상이 된 공간에서 주인공은 시체를 처리하는 기계의 일부로 살아가지만, 단 한 번의 선택을 통해 인간다움이 무엇인지 다시 묻는다. 이 영화는 참혹한 역사적 사건을 스펙터클이 아닌 시선의 윤리로 접근하며, 관객에게 침묵 속의 질문을 건넨다.

개봉: 2015
감독: 네메시 라슬로
장르: 드라마, 전쟁
출연: 뢰리 게자, 레벤테 몰나르
평점: 메타크리틱 85점 / 로튼토마토 신선도 96%

죽음의 공장 속에서 발견한 한 사람의 얼굴

 《사울의 아들》은 1944년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를 배경으로 한다. 주인공 사울 아우슬랜더는 존더코만도라 불리는 수감자로, 가스실에서 희생된 사람들의 시신을 정리하고 화장로로 옮기는 일을 맡고 있다. 그에게 주어진 하루는 끝없이 반복되는 죽음의 행렬이다. 울부짖음이 멎은 뒤 찾아오는 침묵, 그 침묵을 깨는 것은 시체의 무게다. 사울은 그 비극의 한복판에서 살아남았지만, 살아 있다는 말이 무색할 만큼 감정은 이미 닳아버린 상태다.

 그러던 어느 날, 가스실에서 기적처럼 잠시 숨을 붙였던 소년이 의료진에 의해 살해되는 장면을 목격한다. 사울은 그 아이가 자신의 아들이라고 믿게 된다. 혈연인지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그에게 그 아이는 죽음의 소용돌이 속에서 유일하게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존재가 된다. 사울은 아이의 시신을 불태우지 않고 제대로 된 장례를 치러주기로 결심한다. 이 순간부터 영화는 집단의 생존과 개인의 신념이 충돌하는 지점으로 깊숙이 들어간다.

 수용소 안에서는 동료들이 반란을 준비하고 있다. 무기를 밀반입하고, 탈출을 모색하는 움직임이 이어진다. 그러나 사울의 시선은 다른 곳을 향한다. 그는 반란의 성공 여부보다 아이를 위한 랍비를 찾는 데 집착한다. 이 선택은 동료들의 분노를 사기도 하고, 때로는 위험을 증폭시키기도 한다. 모두가 집단의 생존 가능성에 매달릴 때, 사울은 한 아이의 죽음 앞에서 인간으로 남고자 하는 길을 택한다.

 사울은 숭고한 인물도, 전략가도 아니다. 그는 종종 판단을 흐리고, 주변을 위험에 빠뜨리며, 심지어 스스로도 그 의미를 명확히 설명하지 못한다. 그러나 바로 그 불완전함이 이 영화의 핵심이다. 극한의 상황 속에서 누군가는 저항으로, 누군가는 생존으로, 누군가는 침묵으로 자신을 지켜낸다. 사울은 장례라는 행위를 통해 인간성을 마지막까지 놓지 않으려 한다.

 마침내 탈출 시도와 함께 벌어지는 혼란 속에서 사울은 아이의 시신을 안고 숲으로 향한다. 강물에 휩쓸리고, 총성이 울리며, 동료들은 하나둘 쓰러진다. 그 모든 혼돈 속에서도 사울의 얼굴에는 이상하리만큼 고요한 표정이 떠오른다.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 숲속에서 만난 한 소년의 시선과 마주하는 장면은 이 모든 여정이 남긴 감정을 조용히 응축해 관객에게 건넨다. 

침묵이 말이 되는 순간들

 《사울의 아들》은 독특한 연출 방식이 특징이다. 카메라는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사울의 얼굴 근처에 고정한다. 배경은 흐릿하고, 화면 바깥에서 벌어지는 참상은 소리로만 전달된다. 비명, 총성, 기계음, 울음소리가 겹겹이 쌓이며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이 선택은 잔혹함을 직접적으로 소비하지 않게 만들면서도, 오히려 더 깊은 공포와 몰입을 유도한다.

 일반적인 전쟁 영화가 사건을 보여주는 데 집중한다면, 이 작품은 시선을 어디에 두느냐가 윤리의 문제가 된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카메라는 사울이 보지 않는 것을 우리도 보지 않게 한다. 그 대신 사울이 숨 쉬는 리듬, 눈동자의 흔들림, 무표정 속에 남은 미세한 균열을 따라가게 만든다. 관객은 관찰자가 아니라 동행자가 된다. 그래서 이 영화는 끝까지 보기 쉽지 않지만, 쉽게 잊히지도 않는다.

사울의-아들-스틸컷-남자와-군인들
사울의 아들 스틸컷

 또한 영화는 대사를 극단적으로 아낀다. 이 작품에는 설명이 거의 없다. 인물들은 자신의 감정을 길게 토로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정의 파동은 화면 전체에 가득 차 있다. 이는 침묵이 단순한 공백이 아니라, 감정을 담는 또 하나의 언어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사울이 아이를 바라보는 눈빛, 랍비를 찾아 헤매는 발걸음, 동료들의 시선이 교차하는 순간마다 말 없는 서사가 쌓여간다.

 이 영화가 던지는 질문은 단순하다. 인간은 어디까지 무너질 수 있으며, 그 끝에서 무엇을 붙잡아야 하는가. 사울은 집단의 전략보다 개인의 장례를 택한다. 이 선택은 합리적으로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극한의 비인간적 상황 속에서 이 비합리성은 오히려 인간다움의 증거처럼 느껴진다. 그는 세상을 구하지 못한다. 혁명을 이끌지도 않는다. 다만 한 아이에게 이름 없는 존엄을 돌려주려 한다.

역사의 심연에서 건져 올린 인간성

 《사울의 아들》을 보고 나면 한동안 말을 잃게 된다. 감동이라는 단어로 정리하기에는 너무 무겁고, 충격이라는 표현으로도 다 담기지 않는다. 이 영화는 관객에게 눈물 대신 침묵을 남긴다. 그리고 그 침묵 속에서 스스로에게 질문하게 만든다. 만약 나였다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살아남는 것이 전부가 된 순간에도, 나는 누군가의 존엄을 위해 멈출 수 있었을까.

 《사울의 아들》은 쉽지 않은 영화다. 그러나 이 어려움은 관객을 밀어내기 위한 장벽이 아니라, 더 깊이 생각하게 만드는 문이다. 화려한 연출이나 감정의 과잉 없이도 영화가 얼마나 강력한 메시지를 전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이 작품을 본 뒤에는 전쟁 영화에 대한 시선도, 인간성에 대한 기준도 조금 달라질 것이다.

 만약 영화가 단순한 오락을 넘어,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 묻는 예술이라고 믿는다면, 《사울의 아들》은 꼭 한 번 마주해야 할 작품이다. 고통스러운 기억 속에서도 존엄을 포기하지 않은 한 사람의 이야기는,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남겨진 질문을 던진다. 무너진 존엄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