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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프 오브 워터(2017) 영화 리뷰, 기예르모 델 토로의 사랑에 대한 재해석

by dreamobservatory 2025. 12. 13.

영화-세이프-오브-워터-포스터
세이프 오브 워터 포스터

 말을 하지 못하는 여성과 인간이 아닌 존재가 나누는 친밀한 감정은 익숙한 사랑의 서사를 뒤흔든다. 《세이프 오브 워터》는 외로움 속에서 서로를 알아보는 두 존재의 여정을 통해 사랑의 의미를 섬세하게 다시 묻는 작품이다. 상처와 결핍을 안고 살아가던 사람이 어느 날 자신을 바라보는 낯선 눈빛을 만나 변화하는 순간의 떨림을 영화는 물결처럼 고요하게 퍼뜨린다.

개봉: 2017
감독: 기예르모 델 토로
장르: 판타지, 로맨스, 드라마
출연: 샐리 호킨스, 마이클 섀넌, 리처드 젠킨스, 옥타비아 스펜서
평점: 메타크리틱 87점 / 로튼토마토 신선도 92%

물이 기억한 사랑의 형태

 1960년대 초 미국의 비밀 연구 기관에서 청소부로 일하는 엘라이자는 태어나면서부터 말을 하지 못한다. 그녀의 일상은 규칙적이고 고요하며, 거의 변화를 모르던 삶이다. 출근길마다 버스를 타고 건물 지하로 내려가고, 동료 젤다와 함께 밤을 견디며 연구소를 정리하는 것이 하루의 대부분이다. 그러나 이 고요함은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한 “그 존재”로 인해 흔들리기 시작한다. 정부가 남미의 강에서 포획해 온, 인간과 양서류가 뒤섞인 듯한 미확인 생명체가 비밀리에 연구 시설로 이송된 것이다.

 엘라이자는 호기심에 끌려 생명체가 갇힌 수조로 찾아간다. 처음에는 서로를 조심스럽게 바라보기만 했지만, 나중에는 삶의 단편을 나누기 시작한다. 그녀가 가져온 삶은 계란, 음악, 수화를 흉내 내며 놀라워하는 그의 모습은 엘라이자의 마음 깊은 곳을 울린다. 말이 필요하지 않은 대화가 가능해지고, 서로를 이해하려는 눈빛이 축축한 공기 속을 따뜻하게 채운다. 자신을 향한 공포와 폭력만을 경험해 온 생명체는 엘라이자 앞에서만 놀랄 만큼 순한 표정을 보여준다.

영화-세이프-오브-워터-스틸컷-여자와-괴생명체
세이프 오브 워터 스틸컷

 하지만 연구소의 책임자인 스트릭랜드는 생명체를 적대적인 실험 대상으로만 취급한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연구 결과이며, 실험대상의 고통이나 감정은 고려 대상이 아니다. 그가 가하는 폭력은 점차 심해지고, 엘라이자는 그를 구하지 않으면 반드시 죽게 될 것임을 깨닫는다. 그녀는 자신의 외로움을 함께 견뎌준 생명체에게 또 한 번 손을 내밀기로 결심한다. 주변인으로만 취급되던 그녀는 지금까지의 삶과는 다른 용기를 내어 위험한 계획을 추진한다.

 엘라이자와 친구들은 그를 탈출시키기 위해 숨막히는 작전을 준비한다. 비밀리에 수조를 열고, 연구소의 눈을 피해 빗속으로 빠져나오는 과정은 긴장감과 함께 괴생명체를 향한 엘라이저의 진심을 보여준다. 더 이상 혼자가 아니라는 확신이 그녀를 움직인다. 생명체 역시 엘라이자를 향한 감정이 이전과는 다른 색으로 변화하고 있다. 서로가 서로에게서만 발견할 수 있는 따뜻함이 물결처럼 퍼져 나고, 그들이 함께 보내는 밤은 인간과 괴물이라는 분류를 무의미하게 만드는 순간을 만들어낸다.

 그러나 스트릭랜드는 이들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는 권력과 명예를 지키기 위해 도망친 두 존재를 무자비하게 추적하며, 마지막 순간까지 폭력을 행사하려 한다. 이 쫓김은 결국 강가에서 절정에 이르고, 엘라이자의 생명을 위협하던 순간 생명체는 잠들어 있던 힘을 드러낸다. 그는 엘라이자를 끌어안고 물속으로 데려간다. 이 장면은 현실의 물리적 경계를 벗어난 듯한 신비한 이미지로 가득 차 있으며, 그녀의 목에 새겨져 있던 기묘한 흉터가 물속에서 새로운 형태로 바뀌며 완전히 다른 결말을 제시한다. 생명체와 엘라이자는 마침내 서로의 세계에 완전히 스며든다.

낯선 존재와 마주한 순간 피어난 감정의 결

 《세이프 오브 워터》가 어떤 영화냐고 묻는다면 한 마디로 표현하기 어렵다. 로맨스라고 부르기엔 환상적인 이미지가 너무 강하고, 판타지라고 정의하자니 두 사람이 나누는 감정이 현실의 상처와 너무 닮아 있다. 바로 이 모호함이 영화를 더욱 빛나게 한다. 어디에도 속하지 않을 것 같은 이야기인데, 정작 우리 마음속 어딘가를 정확하게 건드린다. 이 작품은 누가 ‘정상’이고 누가 ‘타자’인지 묻지 않는다. 그 대신 누구나 외로움을 품고 살아가며, 때로는 전혀 다른 존재에게서 위로를 받는다는 사실을 조용히 비춘다.

 엘라이자는 말을 하지 못하지만 그녀의 감정은 누구보다 선명하게 드러난다. 세상이 외면한 생명체가 그녀에게만 보여주는 방식 또한 마찬가지다. 둘은 결핍을 가진 채 살아왔고, 서로를 만나면서 서서히 그 빈자리를 채웠다. 이 서사는 인간 중심의 시각을 해체하며 사랑의 개념을 자유롭게 재구성한다. 사랑이란 무엇을 조건으로 완성되는 감정인지, 혹은 어떤 규정에서 벗어날 때 가장 순수한 형태를 띠는지를 영화는 꾸준히 되묻는다.

 델 토로 감독 특유의 미술적 감각도 감상을 풍성하게 한다. 녹빛과 푸른빛이 뒤섞인 화면은 마치 인간의 세계와 물의 세계가 천천히 겹쳐지는 듯한 분위기를 만든다. 이 분위기 속에서 두 존재가 가까워지는 장면은 서정적이고, 때로는 잔잔한 포옹처럼 따뜻하다. 음악 역시 이 감정을 확장한다. 알렉상드르 데스플라의 선율은 물결이 흔들리는 듯한 리듬으로 감정을 미세하게 흔들어 놓고, 그 속에서 두 존재의 호흡이 또렷하게 느껴진다.

 작품의 진정한 핵심은 서로의 부족함을 통해 완성된다는 진리다. 완벽한 사람이기 때문에 사랑받는 게 아니라, 불완전함을 드러내도 괜찮다고 허락해 준 존재를 만났기 때문에 사랑이 시작된다. 엘라이자와 생명체의 관계는 그 자체로 사회적 규범을 벗어난 서사이지만, 동시에 누구보다 자연스럽고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그들을 막으려는 인물들은 힘과 권위로 자신을 증명하고자 하지만, 영화는 그러한 폭력이 결국 얼마나 공허한지를 차분히 보여준다. 반대로 두 존재가 보여주는 연대는 작고 조용하지만 어떤 강요보다 강하다.

 결말로 향할수록 관객은 엘라이자가 물속으로 사라졌다는 사실을 단순한 죽음으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것은 오히려 그녀가 평생 꿈꿔온 자신만의 세계로 귀환한 순간처럼 보인다. 물속에서 숨을 쉬고 생명체와 같은 속도로 움직이는 모습은 그들의 사랑이 단순한 정서적 결합이 아니라 새로운 정체성을 완성한 결말임을 나타낸다. 영화는 이 장면을 통해 사랑의 형태가 하나일 필요가 없음을 조용히 보여준다. 어떤 사랑은 말이 없고, 어떤 사랑은 규칙을 벗어난다. 그러나 마음이 닿는다면 그것만으로 이미 완성된 세계다.

물이 흐르는 곳에 남겨진 온기

 《세이프 오브 워터》는 이질적인 존재 간의 사랑을 다루지만, 결국 우리 삶과 닮아 있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마음이 끌리는 순간은 논리나 조건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타인에게서 예상치 못한 따스함을 발견하거나, 아무도 보지 못했던 결을 서로에게만 드러내는 순간 사랑은 시작된다. 이 영화는 바로 그 순간을 물처럼 유연하게 담았다. 사랑이란 행위에 대해 의문을 갖고 있다면 이 영화를 꼭 보길 바란다. 새로운 사랑의 형태를 만나는 경험은 결코 흔치 않기 때문이다. 물속에서 이어진 두 존재의 이야기는 당신의 마음 한편에 잔잔한 파동을 남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