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스타이즈본(2018) 영화 리뷰 <음악과 사랑, 그리고 몰락과 이별>

by dreamobservatory 2025. 11. 19.

영화-스타이즈본-포스터
스타이즈본 포스터

 《스타이즈본》은 무대에서 우연히 마주친 두 사람이 서로의 재능을 알아보고 사랑에 빠지지만, 성공의 조명 뒤에서 서서히 드러나는 상처와 중독이 한 사람의 삶을 어디까지 무너뜨릴 수 있는지를 끝까지 보여주는 작품이다. 벼랑 끝에 선 로커와 이제 막 날아오르기 시작한 신인 가수가 주고받는 노래는 달콤한 러브송이면서 동시에 비극을 향해 나아가는 예고편처럼 느껴진다.

개봉: 2018
감독: 브래들리 쿠퍼
장르: 멜로, 드라마, 음악
출연: 브래들리 쿠퍼, 레이디 가가, 샘 엘리엇, 앤드류 다이스 클레이, 데이브 샤펠
평점: 메타크리틱 88점 / 로튼토마토 신선도 90%

서로의 그림자 속에서 피어난 노래

 《스타이즈본》은 한때 최고의 인기를 누렸지만 이제는 술과 약에 기대어 겨우 버티는 컨트리 록 스타 잭슨 메인으로 시작한다. 무대 위에서 그는 여전히 관객을 사로잡는 카리스마를 보여 주지만, 공연이 끝난 뒤 대기실로 돌아오면 귀에서 울리는 이명과 끝없이 들이켜는 술병만이 그를 맞이한다. 형 보비와의 관계에서도 과거 아버지와 얽힌 상처가 드러나고, 잭슨은 음악을 사랑하면서도 자신을 조금씩 갉아먹는 삶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

 어느 날 그는 술에 취한 채 우연히 들른 바에서 알리를 만난다. 식당에서 일하며 틈틈이 노래를 하던 알리는 무대 위에서 프랑스어로 된 곡을 소화하며 사람들을 단숨에 조용하게 만드는 힘을 보여 준다. 잭슨은 그녀의 목소리와 무대 매너에 한눈에 반하고, 공연이 끝난 뒤 새벽까지 함께 도시를 걸으며 서로의 상처와 꿈을 나눈다. 세상이 알리의 외모를 이유로 메인 무대에 세우지 않으려 했다는 사실을 들은 잭슨은, 그녀 안에 자신이 잃어버린 순수한 열정이 살아 있다는 것을 직감한다.

 다음 날 잭슨은 자신의 공연장으로 알리를 초대하지만, 그녀는 회사와 일상, 두려움을 이유로 망설인다. 결국 친구의 설득 끝에 용기를 내어 찾아간 공연장에서 잭슨은 알리를 무대로 끌어올리고, 둘이 함께 만든 곡을 관객 앞에서 부르게 한다. 떨리는 첫 소절이 지나고 알리의 목소리가 폭발하는 순간, 관객은 물론 스스로도 예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의 문이 열린다. 이 장면은 영화 전체를 통틀어 가장 짜릿한 탄생의 순간이자, 동시에 두 사람의 운명이 엇갈리기 시작하는 첫 번째 갈림길이다.

영화-스타이즈본-스틸컷-공연하는-남자와-여자
스타이즈본 스틸컷

 알리는 잭슨의 투어에 합류하며 점점 더 많은 무대에 서게 되고, 그의 곁에서 노래를 만들고 사랑을 나누며 새로운 삶을 경험한다. 그러던 중 대형 기획사의 프로듀서가 알리에게 솔로 데뷔를 제안하고, 그녀는 잭슨과 함께 있던 작은 무대에서 벗어나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갈 기회를 잡는다. 머리를 물들이고 안무를 더하는 등 음악과 이미지는 점점 팝스타에 가까워지고, 알리의 이름은 차트와 방송에서 빠지지 않는 존재가 된다. 그러나 그녀의 성공이 가팔라질수록, 잭슨의 내리막도 더 가파르게 미끄러지기 시작한다.

 잭슨은 알리의 성공을 진심으로 축하하면서도, 동시에 자신이 점점 그녀의 그림자 속으로 밀려난다는 불안에 시달린다. 음악적 방향성에 대한 의견차가 생기고, 술과 약에 의존하는 습관은 다시 거세진다. 알리는 그를 잡기 위해 재활센터에 보내고 함께 나아가려 애쓰지만, 잭슨이 안고 있는 어린 시절의 상처와 자존감의 붕괴는 생각보다 깊다. 재활을 마치고 돌아온 그는 잠시나마 안정된 모습을 되찾는 듯 보이지만, 업계 사람들의 냉정한 시선과 알리의 커리어를 걱정하는 보비의 직설적인 말은 다시 잭슨의 마음을 무너뜨린다.

 결정적인 순간은 시상식에서 찾아온다.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들이 가득한 무대 위, 알리가 상을 받고 눈물을 흘리는 동안 잭슨은 술에 취한 상태로 무대에 올라가 중심을 잃는다. 그는 마이크 앞에서 비틀거리다가 결국 사람들 앞에서 쓰러지고, 수습하려는 사람들 사이에서 알리는 당황과 수치심, 사랑과 안타까움이 뒤섞인 표정을 짓는다. 이 사건은 잭슨에게 깊은 죄책감을 남기고, 알리는 그를 위해 투어와 일정 일부를 포기하면서까지 곁을 지키려 하지만, 잭슨은 자신이 그녀의 삶에 짐이 되고 있다는 생각을 떨치지 못한다.

 알리는 그를 위해 공연을 줄이고 함께 투어에 나서자는 제안을 하지만, 잭슨은 이미 다른 결심을 품은 상태다. 그는 마지막으로 알리와 조용한 하루를 보내며 예전처럼 노래를 들어주고 강아지를 산책시키며 평범한 시간을 즐긴다. 알리가 매니저와의 약속을 위해 집을 떠나고 나서, 잭슨은 차고로 향한다. 그곳에서 그는 한때 자신을 지탱해 주던 음악과 사랑을 떠올리며 마지막 선택을 한다. 이후 알리는 잭슨이 남긴 곡을 무대에서 부르며, 그와 함께했던 사랑과 상처, 그리고 아직 끝나지 않은 노래를 관객 앞에서 이어 간다. 잭슨의 부재로 영화는 끝나지만, 그가 심어 놓은 멜로디는 알리의 목소리와 함께 계속해서 살아 움직인다.

무너져가는 스타, 탄생하는 별

 《스타이즈본》의 가장 큰 힘은 두 주인공의 사랑 이야기를 화려한 쇼 비즈니스의 배경 위에 올려놓으면서도, 정작 카메라는 끝까지 두 사람의 얼굴과 숨소리에 집중한다는 점이다. 브래들리 쿠퍼는 감독과 배우를 동시에 맡아 잭슨의 무너져 가는 자존감과 세상과의 거리감을 섬세하게 표현한다. 레이디 가가는 화장을 지우고 과장된 무대 의상을 벗어 던진 채, 알리의 소심함과 욕망, 그리고 사랑을 향한 용기를 매우 현실적인 톤으로 보여 준다. 두 사람이 함께 노래할 때 관객이 느끼는 울림은, 단지 음악이 좋아서가 아니라 서로를 향한 감정이 떨림 그대로 전달되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한 사람의 성공과 다른 한 사람의 추락을 대비시키는 구조를 택하지만, 극단적인 선과 악이나 가해자와 피해자의 구도로 몰고 가지 않는다. 잭슨은 분명 알리에게 상처를 주고 여러 번 실망을 안기는 인물이지만, 영화는 그를 비난의 대상으로만 두지 않는다. 어린 시절 알코올에 의존하던 아버지와의 기억, 어린 나이에 세상에 내던져지며 만들어진 불안과 고독이 쌓여 지금의 잭슨을 만들었다는 사실을 차근차근 보여 준다. 알리의 성공이 잭슨을 밀어내는 것이 아니라, 잭슨이 스스로를 용서하지 못해 점점 더 깊은 어둠 속으로 들어가는 과정이라는 점에서 이 비극은 더욱 안타깝다.

 알리 역시 일방적으로 성공만을 향해 질주하는 인물로 그려지지 않는다. 그는 잭슨을 통해 자신의 재능을 믿게 되었고, 무대 위에서 진짜 자신의 목소리를 찾았다. 그러나 메이저 시장의 요구에 따라 점점 세련된 퍼포먼스를 추가하고 팝적인 방향으로 나아가면서, 잭슨이 사랑했던 알리와 대중이 열광하는 알리 사이에는 분명한 간극이 생긴다. 영화는 이 간극을 도덕적으로 재단하기보다, 다른 방식으로 사랑하고 다른 방식으로 음악을 대하는 두 사람이 끝내 같은 속도로 걸어갈 수 없었다는 사실을 조용히 보여 준다. 잭슨이 알리의 새로운 음악을 무조건 비난하지도, 알리가 잭슨의 말을 무시한 채 성공만을 좇지도 않는 미묘한 균형이 이 작품을 더욱 현실적으로 만든다.

 《스타이즈본》이 특별한 이유는, 이 이야기가 네 번째로 다시 태어난 버전이라는 점에도 있다. 1937년 작품에서 시작된 이 서사는 1954년 주디 갈런드와 제임스 메이슨이 이끄는 뮤지컬 드라마로 한 번 더 각색되었고, 1976년에는 바브라 스트라이샌드와 크리스 크리스토퍼슨이 록 음악계를 배경으로 다시 한 번 사랑과 추락의 비극을 들려주었다. 2018년 버전은 할리우드 스튜디오 시스템이나 클래식 록 스타 대신, 라이브 공연과 페스티벌, 소셜 미디어가 뒤섞인 현대 음악 산업을 배경으로 선택한다. 그렇지만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재능을 발견해 세상으로 데려올 때, 그 순간 이미 비극의 씨앗도 함께 심어진다는 이 이야기의 핵심은 세대를 거쳐도 변하지 않는다.

 원작과의 비교에서 특히 눈에 띄는 부분은 알리 캐릭터의 주체성이다. 이전 버전들이 주로 몰락하는 남성 스타와 그를 바라보는 여성의 시선을 강조했다면, 《스타이즈본》의 알리는 잭슨의 도움을 받으면서도 자신이 원하는 음악과 삶에 대해 끝까지 고민하는 인물이다. 그는 잭슨에게 고마움을 느끼지만, 동시에 그가 자신 곁에 있기만을 바라며 꿈을 포기하지도 않는다. 잭슨의 마지막 선택 이후에도 알리가 무대 위에서 노래를 이어가는 결말은, 사랑의 상실을 이야기하면서도 남겨진 사람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조용한 대답처럼 느껴진다.

 음악과 연출 역시 이 작품의 감정을 끝까지 밀어붙인다. 공연 장면 상당수가 실제 관객 앞에서 촬영되었고, 배우들이 직접 라이브로 노래를 부르며 숨소리와 떨림까지 그대로 담아냈다. 카메라는 종종 관객 대신 무대 위에서 두 사람의 얼굴 가까이 파고들며, 조명과 앰프 소리가 들리는 혼란스러운 공간 한가운데 관객을 세운다. 삽입곡들은 각각의 장면을 설명하는 삽화가 아니라, 두 사람 사이의 관계 변화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대사처럼 기능한다. 특히 아카데미 주제가상을 받은 곡이자 두 사람의 관계를 상징하는 대표곡은, 처음에는 서로에게 마음을 열어가는 고백처럼 들리다가, 영화가 끝날 즈음에는 남겨진 사람이 부르는 추모의 노래로 다시 들린다.

 《스타이즈본》은 사랑과 성공 중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지 묻는 영화가 아니다. 사랑이 한 사람을 구원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구원하지 못한다는 냉정한 현실을 보여 준다. 잭슨은 알리를 진심으로 사랑했고, 그녀 덕분에 잠시나마 세상과 자신을 화해시키는 듯 보였다. 그러나 평생 쌓여 온 상처와 죄책감, 스스로를 향한 혐오를 끝내 이겨 내지 못한다. 그럼에도 영화는 희망의 가능성을 완전히 지우지 않는다. 알리가 마지막 무대에서 잭슨의 노래를 부를 때, 그 장면은 더 이상 비극의 끝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에게 남겨 준 사랑의 증거처럼 보인다. 그 노랫말을 통해 잭슨은 사라졌지만 동시에 남아 있고, 알리는 그 사실을 알고 있다는 듯 담담하게 노래를 이어간다.

영화-스타이즈본-스틸컷-공연하는-남자
스타이즈본 스틸컷

 《스타이즈본》은 보고 나서도 오래 마음에 남는 영화다. 사랑이 가장 빛나는 순간과 가장 잔인한 이별을 한 작품 안에 담아내면서도, 인물들을 쉽게 판단하거나 미화하지 않는다. 음악은 귀를 사로잡고, 두 배우의 연기는 감정을 정직하게 끌어올린다. 잭슨과 알리가 함께 무대에 서 있는 장면들은 순식간에 지나가지만, 그때 느껴지는 떨림은 엔딩 크레딧이 올라간 뒤에도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