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봉 연도: 2019
- 감독: 마틴 스코세이지 (Martin Scorsese)
- 주연 배우: 로버트 드 니로(Robert De Niro), 알 파치노(Al Pacino), 조 페시(Joe Pesci)
- 장르: 범죄, 드라마, 스릴러
- 평점: 메타크리틱 94점 로튼토마토 신선도 95%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의 아이리시 맨은 2019년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작품으로, 알 파치노, 로버트 드 니로, 조 페시, 하비 카이텔 등 할리우드 갱스터 영화의 상징적인 배우들이 한자리에 모인 영화사적 이벤트 같은 작품이다. 장르는 범죄 드라마이지만 단순히 조직 폭력과 권력 다툼을 다룬 것이 아니라, 미국 현대사의 흐름과 연결된 인물들의 초상화를 그리고 있다. 특히 노동조합 지도자 지미 호파의 실종 사건이라는 실제 역사적 미스터리를 영화적 상상력으로 풀어내며, 권력의 이면에 숨어 있는 인간의 고독과 윤리적 모호성을 보여준다. 러닝타임은 3시간 반에 달하지만, 스코세이지 특유의 정교한 리듬과 배우들의 농밀한 연기로 지루할 틈 없이 관객을 몰입하게 만든다.
스코세이지가 그려낸 미국 현대사의 비밀
영화는 노년의 프랭크 시런(로버트 드 니로)이 과거를 회상하는 내레이션으로 시작한다. 그는 한때 전쟁터에서 잔혹한 경험을 쌓고 돌아와, 평범한 트럭 기사로 살아가던 인물이었다. 그러나 운명의 흐름은 그를 마피아 조직과 연결시킨다. 고기를 운반하는 과정에서 물류를 빼돌리며 ‘신뢰할 수 있는 남자’로 불리기 시작한 프랭크는 러셀 버팔리노(조 페시)라는 조직의 보스와 만나면서 범죄 세계로 깊숙이 발을 들인다.
프랭크는 점차 조직의 심부름꾼, 더 나아가 ‘문제를 처리하는 사람’으로 자리매김한다. 그는 주저하지 않고 임무를 수행했고, 이는 조직 내에서 그의 입지를 확고히 한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미국 노동조합의 전설적인 지도자 지미 호파(알 파치노)를 만나게 된다. 호파는 카리스마와 대중적 지지를 동시에 가진 인물로, 프랭크는 그와 강한 유대감을 쌓는다.
영화는 이후 마피아와 정치, 그리고 노동조합이 얽힌 복잡한 미국 현대사의 단면을 보여준다. 존 F. 케네디의 당선과 암살, 로버트 케네디의 법무부 장관 시절 호파와의 갈등, 그리고 베트남전 이후 미국 사회의 혼란은 영화 속 사건의 배경으로 등장한다. 호파는 점차 조직과의 갈등 속에서 고립되기 시작하고, 결국 그의 몰락은 필연적으로 다가온다.
프랭크는 충성심과 우정 사이에서 갈등한다. 그는 조직의 명령을 따르며 수많은 사람들을 처리했지만, 호파만은 가족 같은 존재였다. 그러나 러셀은 프랭크에게 선택의 여지가 없음을 분명히 한다. 호파가 살아 있는 한 조직과 정치적 균형이 흔들릴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프랭크는 호파를 죽이라는 명령을 받고, 그는 가장 힘든 임무를 수행하게 된다. 호파와 마지막 만남을 가진 프랭크는 차마 진실을 말하지 못한 채, 그를 직접 제거한다.
이후 프랭크는 평생을 괴로움 속에 보낸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그는 노인 요양원에 홀로 남아, 죽음을 기다리며 과거를 회상한다. 권력과 돈으로 가득 찼던 그의 인생은 결국 고독과 공허함만 남았음을 보여주며 영화는 마무리된다.
폭력이 아닌 고독을 말하는 마지막 갱스터 영화
아이리시 맨은 전형적인 갱스터 영화의 궤적을 따르면서도, 그 틀을 확장해 한 인간의 회고록이자 미국 현대사의 그림자를 담아낸 서사로 읽힌다. 스코세이지는 좋은 친구들이나 카지노에서 보여준 폭력적 쾌감 대신, 노년의 고독과 후회에 초점을 맞춘다. 이는 감독 자신이 나이 듦을 의식하며 인생과 영화사를 동시에 돌아본 결과물처럼 보인다.
특히 장르적 재미와 역사적 사실이 교차하는 방식이 흥미롭다. 영화 속 인물들은 실제 존재했던 이들이며, 지미 호파의 실종은 여전히 미제로 남아 있다. 그러나 스코세이지는 역사적 공백을 허구적 내러티브로 메우며, ‘사라진 권력자’의 자취를 범죄 세계의 논리로 풀어낸다. 이 과정에서 미국 자본주의의 어두운 이면과 권력 구조의 불안정성이 드러난다.
영화는 또한 배우들의 연기 향연 그 자체다. 알 파치노는 카리스마 넘치면서도 고집스러운 호파를 완벽하게 표현했고, 조 페시는 과거의 폭력적인 캐릭터와 달리 절제되고 냉혹한 리더로서의 면모를 드러낸다. 드 니로는 내면의 갈등과 무력감을 점점 드러내며, 무표정 속에 숨겨진 후회의 감정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러닝타임이 길다는 점은 호불호가 갈릴 수 있지만, 이 긴 호흡은 오히려 시대의 무게와 인물들의 삶을 깊이 있게 탐구할 수 있도록 한다. 마치 한 세기의 연대기를 읽는 듯한 느낌을 주며, 단순한 범죄 스릴러가 아닌 인간극으로 자리매김한다. 무엇보다 마지막에 남는 감정은 화려한 범죄의 쾌감이 아니라, 오롯한 고독과 죽음을 앞둔 인간의 허망함이다.
권력은 사라지고 기억만이 남는다
아이리시 맨을 보면서 가장 크게 다가오는 것은 장르 자체에 대한 감독의 태도였다. 마틴 스코세이지는 평생 갱스터 장르의 대가로 불려왔지만, 이 영화에서는 과거와 같은 폭력의 리듬이나 화려한 권력 다툼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는다. 대신 나이 든 주인공이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는 시선에 집중하며, 관객을 서서히 사라져가는 기억 속으로 데려간다. 이는 단순히 ‘갱스터 영화의 귀환’이 아니라, 세월의 흐름 속에서 감독과 배우, 그리고 장르 자체가 마주한 숙명 같은 순간으로 느껴진다.
흥미로운 점은 영화가 실제 역사와 교차하는 방식이다. 지미 호파의 실종이라는 미스터리는 미국 현대사에서 여전히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인데, 스코세이지는 이를 픽션으로 재구성하면서도 설득력을 잃지 않는다. 조직 범죄와 노동 운동, 정치 권력이 얽힌 복잡한 맥락을 보여주며, 한 개인의 비극을 통해 사회 전체의 어두운 면모를 드러낸다. 관객은 프랭크 시런의 회고담을 따라가면서, 동시에 미국 자본주의의 그늘과 권력 구조의 모순을 목격하게 된다.
인물들의 심정 변화와 내적 갈등은 영화에 더욱 몰입하게 한다. 프랭크는 늘 충성심을 앞세우지만, 그 충성이 결국 가장 가까운 사람을 배신하게 만든다는 아이러니를 안고 있다. 드 니로가 연기하는 프랭크의 무표정은 겉으로는 차갑지만, 내면에서는 무수한 갈등과 후회를 삼키고 있는 얼굴이다. 알 파치노가 보여주는 호파의 불같은 고집, 그리고 조 페시가 절제된 목소리로 표현하는 냉혹한 리더십은 그와 대비되며 긴장을 더한다. 인물들의 감정이 교차하는 순간마다 영화는 단순한 범죄 실록이 아니라, 선택과 후회라는 보편적인 인간의 문제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또 하나 인상 깊었던 점은 영화의 시간 감각이다. 3시간 반이라는 긴 러닝타임 속에서 스코세이지는 시간의 흐름 자체를 이야기의 핵심으로 만든다. 권력의 정점에 있던 인물들이 점차 늙고, 주변에서 사람들은 사라지고, 결국 남는 것은 고독뿐이라는 사실을 천천히, 그러나 잔혹하게 보여준다. 마지막 요양원 장면에서 비어 있는 방문은 모든 것을 압축하는 이미지다. 권력도, 명성도, 심지어 가족마저도 결국 함께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스코세이지는 차가운 정적 속에 담아냈다.
이 영화의 감상 포인트는 화려한 총격전이나 긴장감 넘치는 범죄 묘사가 아니다. 오히려 카메라가 오래 머무는 침묵, 인물들의 표정에 스며든 후회, 역사적 사건 뒤에 감춰진 인간적인 고독이 주는 울림에 있다. 그래서 아이리시 맨은 단순히 범죄 영화라기보다, 한 인간이 남긴 삶의 궤적을 돌아보게 만드는 인생극에 가깝다. 영화를 보고 나면, 결국 우리 각자도 언젠가는 비슷한 질문 앞에 서게 되리라는 불편한 자각이 밀려온다. "내가 살아온 흔적은 과연 무엇일까?"라는 물음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 것이다.
아이리시 맨은 갱스터 장르의 화려한 폭력보다 인물들의 내면과 세월의 무게를 응시하는 작품이다. 실제 미국 현대사의 굵직한 사건들을 배경으로 삼아, 권력의 덧없음과 인간의 고독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러닝타임이 길지만, 지루할 틈이 없이 인물의 서사와 감정 변화를 치밀하게 묘사해낸다. 화려한 캐스팅과 깊이 있는 연출, 그리고 역사와 허구가 교차하는 드라마 속에서 관객은 묵직한 울림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삶의 의미와 인간의 선택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이 작품을 꼭 감상해보길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