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어린 소녀가 낯선 세계로 밀려 들어가며 겪는 성장을 그린 이야기다. 이름을 잃고, 길을 잃고, 두려움 앞에 선 한 아이가 스스로의 감각과 책임을 회복해 가는 과정은 마치 현실을 사는 우리의 이야기 같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환상이라는 옷을 입혀 불안, 노동, 욕망, 그리고 자립이라는 질문을 던진다.
개봉: 2001
감독: 미야자키 하야오
장르: 애니메이션, 판타지, 성장 드라마
출연: 히이라기 루미, 이리노 미유, 나쓰키 마리, 나카무라 히로유키
평점: 메타크리틱 96점 / 로튼토마토 신선도 96%
이름을 빼앗긴 아이, 신들의 세계에 발을 딛다
낯선 동네로 향하던 길, 치히로는 부모를 따라 터널을 지나고 그 순간 완전히 새로운 세계로 들어간다. 붉은 석양 아래 펼쳐진 비어 있는 마을, 시간이 멈춘 듯한 음식들, 그리고 설명되지 않는 불안. 이 도입부에서 미야자키 하야오는 관객에게 친절한 설명을 건네지 않는다. 대신 고정 숏과 넉넉한 호흡으로 공간을 체험하게 만든다. 아이의 시선 높이에서 흔들리는 카메라 워크와 여백 많은 미장센은 ‘무엇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감각을 자연스럽게 축적한다.
부모가 돼지로 변하는 장면은 충격적이지만, 극적인 연출은 없다. 과장된 음악이나 빠른 컷 대신, 치히로의 얼굴에 맺히는 당혹과 공포가 화면을 채운다. 치히로는 울지만, 곧 움직여야 한다는 사실을 배운다. 하쿠의 안내로 온천장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영화는 노동의 세계를 구체적으로 펼쳐 보인다. 계단과 복도는 깊이를 강조하는 원근 구도로 설계되어 있고, 인물은 그 구조 안에서 작게 배치된다. 아이가 감당해야 할 세계의 크기를 시각적으로 드러내는 방식이다.
유바바와의 계약 장면은 이 영화의 핵심을 상징적으로 압축한다. 이름을 빼앗기는 설정은 동화적 장치이면서도 사회적 은유이다. 이름이 사라진다는 것은 정체성과 기억의 흔들림을 의미한다. ‘치히로’가 ‘센’으로 불리는 순간, 그녀는 규칙을 이행하고 순종해야 하는 존재가 된다. 이때 배경음은 과장되지 않고, 대사의 리듬이 강조된다. 말의 힘, 계약의 무게가 조용히 전달된다.
온천장에서의 첫 노동은 혼란과 실수의 연속이다. 그러나 카메라는 치히로를 비웃지 않는다. 물을 나르고, 계단을 오르내리고, 냄새 나는 손님을 맞는 과정이 반복되며 리듬이 생긴다. 반복은 성장의 언어다. 관객은 치히로의 호흡에 맞춰 세계의 규칙을 익히게 된다. 특히 강의 신을 씻어내는 시퀀스는 압권이다. 오염된 몸에서 자전거와 쓰레기가 쏟아져 나오는 장면은 환경에 대한 메시지를 직설로 외치지 않으면서도 강한 잔상을 남긴다.
가오나시의 등장은 욕망의 얼굴을 드러낸다. 그는 침묵 속에서 금을 쏟아내며 관심을 구걸한다. 이 장면에서 색채 대비가 두드러진다. 어두운 복도와 금빛의 번쩍임, 그리고 과식과 폭주의 연쇄. 카메라는 가오나시의 움직임을 따라가되,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다. 동정과 경계가 동시에 작동하는 프레이밍이다. 치히로가 그를 거절하는 방식은 단호하지만 잔인하지 않다. 필요한 만큼만 받아들이는 태도는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윤리처럼 보인다.
후반부, 기차 장면은 이 작품의 정서적 정점이다. 수평 구도로 길게 뻗은 선로, 물 위를 가르는 열차, 말없이 앉아 있는 그림자들. 음악은 최소화되고 바퀴 소리와 파동이 시간을 만든다. 이 시퀀스에서 서사는 잠시 멈춘다. 대신 감정이 이동한다. 나 역시 이 장면을 볼 때마다 숨을 고르게 된다. 설명할 수 없는 상실과 결심이 동시에 밀려오는 순간, 영화는 관객에게 ‘기다림’이라는 감각을 선물한다.
환상을 통해 비추어본 현실
이 영화의 연출은 디즈니식의 명확한 갈등 구조와 다른 결을 지닌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클로즈업을 절제하고, 롱테이크에 가까운 호흡을 선호한다. 그 결과 감정은 즉각 폭발하기보다 서서히 축적된다. 색채 설계 또한 인상적이다. 온천장은 따뜻한 금빛과 적색 계열로 채워져 있지만, 밤이 되면 청록과 남색이 공간을 점령한다. 시간의 흐름과 감정의 변화를 색으로 말하는 방식이다.
작화의 밀도는 장면마다 다르게 설계되어 있다. 군중 장면에서는 움직임을 단순화해 리듬을 만들고, 중요한 순간에는 디테일을 집중시킨다. 이는 관객의 시선을 자연스럽게 유도하는 고전적 애니메이션 문법이다. 배경 미술은 일본 전통 건축과 근대 산업의 흔적을 절묘하게 혼합한다. 이는 세계가 과거와 현재를 동시에 품고 있음을 암시한다.
촬영 비하인드로 알려진 사실 중 하나는 미야자키 하야오가 ‘아이를 가르치려 들지 않겠다’는 원칙을 세웠다는 점이다. 그는 교훈을 대사로 말하지 않고, 선택의 결과로 보여준다. 치히로가 부모의 이름을 기억해내는 결말 역시 감정의 해소를 과장하지 않는다. 정답을 맞히는 순간보다, 그 과정에서 획득한 태도가 더 중요하다는 듯이 연출된다.
비평가 로저 이버트는 이 작품을 두고 “아이들을 존중하는 상상력이 만든 가장 성숙한 판타지”라고 평했다. 나는 이 평가에 동의한다. 이 영화는 보호받는 아이가 아니라 스스로 결정하는 아이를 보여준다. 동시에 어른에게도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어떤 계약을 맺고 살아가고 있는가, 무엇을 잃고 무엇을 얻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