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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크레더블 헐크(2008) 영화 리뷰 <초록색 어벤져 헐크의 탄생>

by dreamobservatory 2025. 12. 14.

영화-인크레더블-헐크-포스터
인크레더블 헐크 포스터

 《인크레더블 헐크》는 통제 불가능한 분노가 한 인간의 몸을 빌려 세상에 모습을 드러나는 순간을 집요하게 따라가는 작품이다. 군사 실험의 실패로 인해 괴물이 되어 버린 과학자 브루스 배너가,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기 위해 자신 안의 헐크를 억누르려 애쓰면서도 결국 그 힘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과정을 긴장감 있게 그려낸다. 화려한 액션과 초록색 괴물의 파괴력 뒤에는 죄책감과 두려움, 그리고 구원에 대한 갈망이 서려 있어, 슈퍼히어로 영화이면서도 한 인간의 비극적인 초상을 함께 보여준다.

개봉: 2008
감독: 루이 르테리에
장르: 액션, SF, 슈퍼히어로
출연: 에드워드 노튼, 리브 타일러, 팀 로스, 윌리엄 허트, 팀 블레이크 넬슨
평점: 메타크리틱 61점 / 로튼토마토 신선도 68%

분노라는 실험이 만들어낸 존재

 《인크레더블 헐크》의 시작은 화려한 기원이 아니라, 이미 사고가 벌어진 뒤의 시간에서 출발한다. 브루스 배너는 미국 군이 추진하는 초병사 프로그램의 연구원으로, 방사능을 이용한 새로운 혈청을 개발하던 중 자신의 몸을 대상으로 실험을 감행한다. 본래는 인체를 강화하는 비밀 프로젝트였지만, 계산에서 조금이라도 어긋난 방사선량은 곧장 참혹한 결과를 낳는다. 실험 장비가 폭주하면서 강렬한 감마선이 브루스의 몸을 덮치고, 그 순간 그는 인간이었던 흔적을 잃어버린 채 초록색 거인으로 변해 연구소를 초토화한다. 이 짧은 기억은 트라우마이자, 헐크의 탄생을 상징하는 악몽으로 반복된다.

 그 이후 브루스는 스스로를 제어할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고, 사랑하는 연인 베티와도, 자신의 삶과도 멀리 떨어진 채 남미의 작은 마을로 숨어든다. 브라질의 빈민가 공장에서 가명으로 일하며, 그는 매 순간 심박수와 감정 상태를 관리하는 법을 몸에 새긴다. 분노가 일정선을 넘는 즉시 헐크가 튀어나온다는 것을 알기에 호흡을 가다듬고, 요가와 명상으로 마음을 다스리며, 인터넷을 통해 익명의 과학자에게서 치료법의 힌트를 얻으려 한다. 그러나 자신의 피가 우연히 제품에 섞여 타국의 병원에서 이상 반응을 일으키면서, 군은 그가 여전히 살아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다.

영화-인크레더블-헐크-스틸컷-포효하는-헐크
인크레더블 헐크 스틸컷

 브루스를 집요하게 뒤쫓는 인물은 바로 베티의 아버지이자 군인인 로스 장군이다. 그는 이미 실패로 끝난 감마선 실험을 포기하기보다는, 그 힘을 다시 군사력으로 전용할 수 있는 기회로 바라본다. 로스는 영국 출신의 특수부대 요원 에밀 블론스키를 선봉에 세워 브루스를 생포하려 하고, 브라질의 좁은 골목과 공장 내부는 일순간 고요한 추격전의 무대로 변한다. 결국 브루스의 몸은 극한의 공포와 압박 속에서 한계에 다다르고, 그가 애써 눌러 두었던 분노가 폭발하는 순간, 초록색 거인이 다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다. 어둠 속에서 울부짖는 헐크의 실루엣과 뒤엉킨 군인들의 비명은, 이 존재가 단순한 영웅도, 완전한 악당도 아니라는 사실을 한눈에 보여준다.

 브루스는 간신히 추적을 피해 미국으로 돌아오고, 오랜 세월 동안 그리워하던 베티와 재회한다. 서로의 삶은 이미 엇갈린 지 오래지만, 두 사람은 여전히 서로에게 가장 큰 안식처가 된다. 브루스는 자신의 병을 낫게 해 줄 수 있을지도 모르는 과학자 새뮤얼 스턴스를 찾아가고, 스턴스는 브루스의 피가 지닌 가능성에 매료된 나머지 이를 다시 실험실로 끌어들인다. 한편, 로스와 군은 헐크에 대한 집착을 놓지 못한 블론스키에게 또 다른 혈청을 주입해, 인간과 괴물 사이에 위치한 존재로 만들어 버린다. 인간으로서의 한계를 넘어선 그의 몸은 점점 뒤틀리기 시작하고, 결국 헐크와 비슷한 힘을 가진 또 하나의 괴수 ‘어보미네이션’으로 변모한다.

 뉴욕의 도심 한복판에서 두 괴물의 충돌은 거대한 재난에 가까운 전투로 이어진다. 탱크와 헬리콥터가 무력해지는 가운데 빌딩이 무너져 내리고, 거리의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며 도망친다. 브루스는 더 이상 헐크를 단순한 저주로만 볼 수 없게 된다. 자신 때문에 만들어진 또 다른 괴물이 사람들을 위협하는 상황에서, 그는 오히려 헐크의 힘을 빌려 이를 막아야 하는 역설 앞에 선다. “이제는 도망치는 대신 이 힘을 마주해야 한다”는 결심과 함께 그는 스스로 떨어져 내리며 의도적으로 변신을 유도하고, 그렇게 태어난 헐크는 어보미네이션과 마지막 결전을 벌인다. 숨이 턱 막히는 격투 끝에 헐크는 간신히 도시를 구하지만, 승리는 곧 다시 어딘가로 사라져야 하는 숙명과 맞닿아 있다.

 결국 브루스는 베티와의 짧은 이별을 뒤로 하고 또다시 떠난다. 영화의 마지막에서 그는 캐나다의 외딴 오두막에서 은둔하며 다시금 자신의 몸을 연구한다. 이전과는 달리, 이제 그의 눈빛은 공포만이 아닌 어느 정도의 수긍과 결심을 담고 있다. 헐크를 완벽히 지워 버리려던 사람에서, 그 힘을 어떻게 다룰 것인지 고민하는 존재로 변화한 것이다. 이 첫 번째 여정에서 《인크레더블 헐크》는 헐크라는 괴물이 세상에 등장하는 순간뿐 아니라, 그 탄생이 한 인간의 삶을 어떻게 뒤틀어 놓는지까지 차근차근 보여준다.

괴물의 얼굴을 한 트라우마, 헐크의 탄생을 따라가다

 헐크의 기원을 다루는 이야기는 이미 만화와 TV 시리즈, 다른 영화들을 통해 여러 차례 반복되어 왔다. 그럼에도 《인크레더블 헐크》가 흥미로운 지점은, 기원을 장황하게 설명하기보다는 “사고 이후”의 브루스에게 집중한다는 데 있다. 관객은 방사선 실험이 실패했다는 사실을 알지만, 영화는 그 현장을 길게 보여주는 대신, 브루스의 기억과 악몽, 상처 입은 관계를 통해 그날의 여파를 더듬어 나간다. 헐크의 탄생은 하나의 장면이 아니라, 브루스가 평범한 삶으로 돌아가려 할 때마다 발목을 잡는 그림자로 남는다.

 에드워드 노튼이 연기하는 브루스 배너는 영웅이라 부르기에는 지나치게 지친 얼굴을 하고 있다. 그는 힘을 휘두르기보다는 숨는 데 더 익숙하고, 감정을 표현하기보다는 참는 데 능숙하다. 영화 초반 브라질에서의 생활은 그런 그의 성격을 잘 드러낸다. 싸움을 피하기 위해 고개를 숙이고,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순간에는 일부러 몸을 돌려 거리를 둔다. 주인공이 스스로의 감정을 이토록 경계하는 슈퍼히어로 영화는 흔치 않다. 헐크의 탄생을 이끈 감마선 폭주 사고는 그에게 힘을 준 동시에, 감정을 솔직히 표현할 자유를 빼앗아 간 사건처럼 그려진다.

 그 기원의 비극은 브루스와 베티의 관계에서도 뚜렷하게 나타난다. 서로에게 여전히 애틋한 마음을 품고 있으면서도, 브루스는 그녀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가까이 가지 못한다. 베티 역시 괴물로 변한 브루스를 직접 목격한 후에도 그를 미워하기보다, 그 안에 여전히 남아 있는 인간 브루스를 본다. 이 둘의 관계는 헐크의 탄생을 단순한 과학 실험의 실패가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를 갈라놓은 비극적 사건으로 확장시킨다. 브루스에게 헐크는 무기가 아니라,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다치게 만든 죄책감의 형태를 한 존재다.

 로스 장군과 블론스키는 헐크의 탄생을 전혀 다른 눈으로 바라보는 인물들이다. 로스에게 헐크는 통제 가능한 병기가 될 수도 있었던 실패작이며, 따라서 반드시 다시 포획해 분석해야 하는 대상이다. 그는 사고 당시 브루스와 베티가 어떤 감정적 상처를 입었는지는 거의 신경 쓰지 않는다. 블론스키는 한 걸음 더 나아가 그 힘 자체에 매료된다. 나이가 들며 예전처럼 움직이지 않는 자신의 몸을 절감하던 그는, 헐크를 보며 잃어버린 젊음과 전투력을 되찾을 수 있으리라 믿는다. 결국 그는 브루스가 겪었던 비극을 알고 있음에도 같은 길을 자처하고, 헐크의 기원을 자신의 몸에 다시 복제해 어보미네이션이라는 괴물을 만들어낸다. 헐크 탄생의 비극이 다시 하나의 괴물을 낳는 데 이용된 셈이다.

 이처럼 영화는 헐크의 기원을 한 번의 사건으로 규정하지 않는다. 방사선 실험이 실패한 날이 첫 페이지였다면, 그 이후 브루스가 도망치고, 사랑을 잃고, 군이 이를 쫓으며 반복적으로 실험을 이어 가는 과정까지 모두가 헐크의 탄생 서사에 포함된다. 브루스는 그 서사를 끝내기 위해 치료법을 찾으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가 도망치는 동안 군은 그의 피를 새로운 실험에 활용한다. 헐크의 힘은 통제 불가능한 재앙인 동시에, 누군가에게는 탐나는 전력으로 여겨진다. 이러한 시각의 충돌이 곧 영화의 갈등이자, 헐크라는 존재가 사라질 수 없는 이유로 작용한다.

 액션 장면 역시 헐크의 탄생을 감각적으로 보여주는 또 하나의 도구다. 군이 처음으로 브루스를 포위해 쫓는 브라질 공장의 장면에서는, 인간의 육체가 감당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서며 헐크가 튀어나오는 순간이 그림자와 파편 속에 녹아 있다. 관객은 완전히 드러나지 않은 헐크의 실루엣과, 무너져 내리는 건물과 날아가는 몸을 통해 처음으로 이 존재의 스케일을 체감한다. 뉴욕에서의 마지막 결투 장면은 헐크가 단지 파괴만을 일으키는 괴물이 아니라, 자신이 만들어낸 또 다른 괴물과 마주 서야 하는 숙명을 지닌 존재라는 사실을 시각적으로 강조한다. 하늘을 가르는 도약과 콘크리트를 박살 내는 주먹질은 시원하지만, 그 뒤에 남는 것은 무너진 건물과 피폐해진 브루스의 표정이다.

 결국 이 영화가 그리고자 하는 헐크의 탄생은 “힘을 얻게 된 이야기”가 아니라 “책임이 시작된 이야기”에 가깝다. 브루스는 끝까지 헐크를 완전히 받아들이지 못하지만, 어보미네이션과의 싸움을 통해 최소한 이 힘을 이용해 누군가를 지켜야 한다는 사실은 인정한다. 인간과 괴물 사이에서 흔들리는 그의 모습은, 우리가 감당하기 버거운 감정과 트라우마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은유처럼 읽힌다. 헐크의 초록색 피부는 어느새 브루스가 감당해야 할 상처와 죄책감의 색으로 겹쳐지고, 그가 마지막 장면에서 보여주는 미묘한 미소는 그 상처와 함께 살아가겠다는 조심스러운 다짐처럼 느껴진다.

초록 거인이 남긴 쓸쓸한 여운

 《인크레더블 헐크》는 화려한 유머와 팀업 구도를 전면에 내세우는 다른 마블 영화들과는 조금 다른 결을 지닌 작품이다. 느릿하게 쌓이는 불안과 도망자의 정서, 그리고 자신이 원치 않았던 힘을 떠안고 살아가는 한 남자의 고독이 영화 전체를 감싸고 있다. 그래서인지 거대한 액션 장면을 보고 난 뒤에도 기억에 남는 것은 헐크의 포효보다, 베티를 힐끔 바라보는 브루스의 미안한 눈빛이나, 숲 속에서 홀로 호흡을 가다듬는 그의 뒷모습이다. 헐크의 탄생은 세상을 구하는 영웅담이라기보다, 자신이 감당하지 못할 힘과 감정 속에서 버티며 살아가는 한 사람의 내면사에 가깝다.

 슈퍼히어로 영화로서 이 작품은 분명히 호불호가 갈릴 만한 지점도 갖고 있다. 이야기의 진행이 다소 직선적이고, 액션 사이사이의 감정 묘사가 더 깊이 파고들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도 남는다. 하지만 헐크의 기원을 따라가고 싶은 관객에게 이 영화는 여전히 의미 있는 출발점이다. 이후 다른 작품들에서 보다 가벼운 톤으로 소비되곤 했던 헐크와는 달리, 이 영화 속 헐크는 아직 자신이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조차 확신하지 못하는 존재다. 그래서 그의 첫걸음은 투박하지만 진지하고, 무엇보다 인간적으로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