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귀에 꽂힌 이어폰이 엔진 소리보다 먼저 달아오르는 영화가 있다. 《베이비 드라이버》에서 주인공 ‘베이비’는 음악이 멈추면 손끝도 흔들리는 드라이버다. 강도단의 도주를 맡은 그는 플레이리스트로 심장을 안정시키고, 비트에 맞춰 브레이크와 핸들을 계산한다. 그런데 사랑이 끼어들면 리듬은 자꾸 어긋난다. 이 영화의 쾌감은 빠르기만 한 질주가 아니라, ‘도망’이라는 장르를 ‘편집과 사운드’로 다시 작곡해버린 데서 온다.
개봉: 2017
감독: 에드가 라이트
장르: 액션, 범죄, 음악
출연: 안셀 엘고트, 릴리 제임스, 케빈 스페이시, 제이미 폭스, 존 햄, 에이사 곤잘레스
평점: 메타크리틱 86점 / 로튼토마토 신선도 92%
노래가 시동을 걸면
베이비는 어릴 적 사고로 이명이 생겼고, 그 소음을 덮기 위해 늘 음악을 틀어둔다. 이 설정은 단순한 캐릭터 장식이 아니다. 도주 운전이라는 직업의 긴장감, 그리고 ‘박자에 의존해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정서가 한 번에 붙는다. 강도단을 굴리는 박터는 베이비의 빚을 명분 삼아 그를 팀에 묶어두고, 베이비는 “이번 한 번만 더”를 반복하며 운전대를 잡는다.
첫 도주 장면부터 영화의 규칙이 선명해진다. 총성, 타이어 마찰음, 와이퍼, 기어 변속 소리가 배경음처럼 흩어지지 않고 음악의 일부처럼 얹힌다. 화면은 차가 급회전할 때만 요란해지는 게 아니라, 박자가 바뀔 때 시야가 바뀌는 식으로 움직인다. 베이비는 팀원들의 폭력성과 점점 가까워지지 못한다. 그가 원하는 건 단 하나, 빚을 끝내고 평범한 삶으로 빠져나가는 것.
그러다 그는 작은 식당에서 일하는 데보라를 만나고, 처음으로 ‘도주’가 아닌 ‘미래’의 그림을 그린다. 음악 취향을 나누고, 같은 노래를 들으며 걷는 짧은 시간들이 베이비에게는 범죄보다 더 강한 현실이 된다. 그래서 그는 닥에게 마지막 거래를 제안한다. 이 한 건만 끝내면 떠나겠다고.
도망의 리듬이 흔들릴 때
마지막 작전은 시작부터 삐걱댄다. 팀의 균열은 계획의 균열로 번지고, 베이비는 운전 실력으로 해결할 수 없는 순간들을 맞는다. 특히 제이미 폭스가 연기한 배츠는 예측 불가능한 폭력으로 공기를 바꾼다. 베이비가 음악으로 세계를 정리하려는 사람이라면, 배츠는 그 질서를 일부러 찢어버리는 인물이다. 이 대비 덕분에 영화는 단순한 추격전이 아니라, 통제와 불안이 부딪히는 드라마로 굴러간다.
결정적으로 베이비는 더 이상 닥터의 지시만 따르지 않는다. 데보라를 지키기 위해, 그리고 자기 삶을 되찾기 위해 위험한 선택을 연달아 한다. 추격은 도로에서만 벌어지지 않는다. 모텔, 주차장, 창고, 사람들 사이의 좁은 통로에서 카메라는 계속 리듬을 찾고, 베이비는 계속 출구를 찾는다. 결국 그는 데보라와 함께 도망치려 하지만, 자신이 남긴 흔적과 폭력의 파편이 그들을 끝까지 따라붙는다.

클라이맥스는 총과 차만으로 밀어붙이지 않는다. 집착에 가까운 분노가 연료가 되고, 사랑은 브레이크가 된다. 이 균형이 무너지며 결말은 멋진 탈출이 아니라 대가를 치르는 책임으로 방향을 튼다. 베이비는 법정에 서고, 자신이 했던 일의 무게를 정면으로 감당한다. 결말은 살아남음에 안도하는 것이 아닌 죗값을 치르고 올바르게 살고자 하는 베이비와 데보라의 의지와 희망을 보여준다.
박자에 맞춘 액션, 편집이 만든 캐릭터
이 영화를 보고 집에 돌아와서도 한동안 걷는 속도가 이상하게 일정해졌다. 신호등이 바뀌는 타이밍, 사람들 발걸음, 지하철 안내 방송까지 리듬처럼 들리는 날이 있다. 《베이비 드라이버》는 그런 감각을 강제로 ‘이식’하는 영화다. 에드가 라이트의 연출은 액션을 사건이 아니라 안무로 다룬다. 총격도 추격도 감정선에 붙어 있지만, 그 감정이 대사로 과잉 설명되지 않는다. 대신 컷의 길이, 소리의 배치, 배우의 동선이 감정을 말한다.
촬영과 편집이 특히 도드라진다. 자동차 액션을 보여줄 때 흔히 기대하는 과잉 흔들림 대신, 동선을 또렷하게 보여주는 구간과 박자에 맞춰 끊어치는 구간이 번갈아 나온다. 롱테이크처럼 느껴지게 흐르다가도, 리듬이 전환되는 순간에는 과감히 컷을 쪼개 속도를 만든다. 사운드는 더 노골적이다. 음악이 '깔리는'게 아니라, 효과음이 음악에 '섞인다'. 그래서 도주 장면은 자동차 광고처럼 번쩍이는 영상이 아니라, 타이밍이 정확한 퍼커션 연주처럼 들린다.
평가가 좋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로튼토마토의 총평은 “스타일리시하고 흥분감 넘치며, 사운드트랙으로 구동되는 액션이면서도 영리하게 쓰였다”는 방향으로 정리된다. 한편 반대 의견도 있다. 일부 평론은 영화가 ‘멋’에 지나치게 기댄다고 보고, 인물의 내면이 장르적 장치에 눌린다고 말한다. 실제로 메타크리틱에 모인 리뷰들 중에는 이야기와 대사가 설계된 음악적 기교를 따라오지 못한다는 지적도 보인다. 나는 이 논쟁 자체가 이 영화의 성격을 증명한다고 생각한다. 서사가 모든 것을 끌고 가는 영화가 아니라, “편집과 사운드가 서사를 끌고 가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권위 있는 결과도 따라왔다. 《베이비 드라이버》는 아카데미에서 편집, 음향 편집, 음향 믹싱 3개 부문 후보에 올랐고, 영국 아카데미에서는 편집상을 수상했다. 영화가 ‘기술이 드러나는 방식’으로 관객의 감정을 설득할 수 있다는 걸, 산업 차원에서도 확인시킨 셈이다.
나는 무엇을 듣고 있나
베이비는 이어폰으로 세상을 통제한다. 내게도 그런 도구가 있다. 일하기 싫은 날에는 재생 목록을 갈아 끼우고, 감정이 복잡한 날에는 소음을 더 큰 소음으로 덮는다. 그래서 이 영화가 단순한 쾌속 액션으로 끝나지 않았다. 베이비의 플레이리스트는 ‘취향’이기도 하지만 ‘방어’이기도 하다. 그 방어가 흔들리는 순간이 곧 성장의 순간이다. 데보라를 만나고,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음악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선택을 하면서 그는 비로소 자기 인생을 직접 운전하기 시작한다.
또 하나는 일의 윤리다. 베이비는 “나는 운전만 한다”는 태도로 스스로를 가볍게 만들려 하지만, 영화는 그 변명을 오래 허락하지 않는다. 내가 일상에서 종종 쓰는 회피의 문장들도 떠올랐다. 나는 관여하지 않았다, 나는 맡은 것만 했다, 나는 원래 그런 사람이다. 하지만 핸들을 잡는 순간 이미 세계의 일부가 된다. 이 영화가 마지막에 ‘로맨틱한 탈출’ 대신 ‘책임을 치르는 엔딩’을 택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멋진 결말이 아니라, 살아갈 결말을 선택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