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폐허가 된 스탈린그라드, 하루에도 수백 명이 쓰러지는 전장에서 한 병사의 이름이 전단지와 신문을 통해 퍼져 나간다. 적을 쓰러뜨리는 총알보다 더 빠르게 번진 것은 ‘저격수 바실리 자이체프’라는 이야기였다. 《에너미 앳 더 게이트》는 제2차 세계대전 최대의 시가전 한복판에서, 한 개인이 어떻게 국가의 상징이 되고 또 그 상징이 어떤 대가를 요구하는지를 보여준다.
개봉: 2001
감독: 장 자크 아노
장르: 전쟁, 드라마, 스릴러
출연: 주드 로, 에드 해리스, 레이첼 와이즈, 조셉 파인즈
평점: 메타크리틱 53점 / 로튼토마토 신선도 53%
쥐구멍 같은 도시, 영웅이 필요해진 전장
1942년, 스탈린그라드는 더 이상 ‘도시’가 아니라 거대한 분쇄기처럼 보인다. 신병들은 총도 지급받지 못한채 전선으로 투입되고, 살아남은 자가 쓰러진 동료의 무기를 집어 드는 방식으로 전선이 유지된다. 그 혼돈 한가운데, 뛰어난 사격 실력을 가진 병사 바실리 자이체프가 모습을 드러낸다. 적의 수 만큼 있는 총알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모두 명중해 동료의 목숨을 구한다.
정치장교 다닐로프는 자이체프를 ‘이길 수 있는 이야기’로 만들기로 결심한다. 전단지와 기사, 연설이 동원되고, 자이체프의 이름은 공포를 견디는 시민과 병사들의 마음을 붙잡는 고리로 확장된다. 하지만 유명세는 축복만 남기지 않는다. 그는 점점 더 위험한 임무로 밀려 들어가고, 개인의 생존은 전쟁 선전의 장치와 충돌하기 시작한다.

독일군은 이 신화를 꺾기 위해 최고 저격수 쾨니히 소령을 투입한다. 도시의 폐허는 곧 ‘두 저격수의 경기장’이 되고, 승패는 탄환보다 인내로 결정될 것처럼 보인다. 자이체프는 동료 저격수들과 함께 움직이며 함정을 학습하고, 다닐로프는 ‘현장의 진실’과 ‘기사가 원하는 결말’ 사이에서 갈라진다.
갈등은 감정의 영역까지 번진다. 타냐를 둘러싼 관계는 전장의 긴장을 인간 쪽으로 끌어당기지만, 동시에 전투의 리듬을 바꾸기도 한다. 결말에서 자이체프는 쾨니히와의 마지막 대치에서 역으로 상대의 습관을 이용해 한 발을 끌어내고, 신화는 완성된다. 다닐로프는 자신이 만든 이야기의 대가를 치르며 사라지고, 자이체프는 살아남았지만 ‘개인으로서의 승리’와는 다른 표정을 남긴다.
한 발의 리얼리즘, 그리고 각본이 만든 균열
이 영화가 먼저 붙잡는 건 전쟁의 ‘전략’이 아니라 ‘감각’이다. 화면은 폐허의 먼지와 잿빛 톤에 오래 머물고, 인물의 시야가 좁아질수록 관객의 호흡도 같이 짧아진다. 특히 저격 장면에서 클로즈업이 잦아질 때, 나는 극장에서 무의식적으로 어깨를 올리고 있던 기억이 난다. 시선이 ‘표적’으로 수렴하는 구조가 관객의 몸까지 조여 왔다.
연출의 강점은 “스케일”보다 “거리”에서 나온다. 전장이 넓게 펼쳐질 때보다, 시체가 쌓인 계단을 건너는 순간이나 벽 틈으로 서로를 재는 순간이 더 오래 남는다. 이런 방식은 ‘영웅 서사’가 아니라 ‘생존 서사’로 출발하게 만들고, 그 위에 선전과 신화가 덧씌워지는 과정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로튼토마토의 총평이 “분위기와 전쟁의 감각은 뛰어나지만, 로맨스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쪽으로 정리된 것도 이 지점과 맞물린다.
다만 그 균열이 곧 약점이 되기도 한다. 영화는 ‘도시가 영웅을 소비하는 방식’을 꽤 날카롭게 잡아내면서도, 중반 이후 로맨스가 전면으로 치고 나올 때 리듬이 흔들린다. 전장의 압박감이 관계 드라마의 완급으로 잠시 대체되면서, 저격전의 긴장 곡선이 끊기는 느낌이 있다. 메타크리틱 점수가 53점의 ‘Mixed or Average’에 머문 것도, 완성도와 호불호가 정확히 엇갈린 결과로 읽힌다. :
촬영 쪽에서는 업계의 인정도 있었다. 촬영감독 로베르 프레스를 중심으로 한 비주얼 설계는 영국 촬영감독협회 후보에 올랐고, 사운드 쪽에서도 후보로 거론됐다. 화면과 소리가 동시에 ‘추위와 공포’를 조형해낸다는 점이 이 영화의 가장 분명한 성취다.
역사적 사실에 대한 논쟁은 피할 수 없다. 여러 평자와 연구자들은 영화가 스탈린그라드 전투의 실상을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특정 사건과 설정이 과감하게 각색되었다는 점을 지적해 왔다. 그럼에도 흥미로운 건, 이런 논쟁 자체가 관객을 실제 역사로 끌고 가는 ‘입구’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신화는 사람을 살리고, 사람을 삼킨다
《에너미 앳 더 게이트》를 보고 나면, 저격 실력보다 더 무서운 능력이 무엇인지 남는다. 바로 ‘이야기를 만드는 능력’이다. 다닐로프가 자이체프를 영웅으로 빚는 장면들은 단순한 선전 비판을 넘어, 공포 속에서 사람들이 무엇에 매달리는지까지 보여준다. 총알을 막아주는 건 방탄복이지만, 마음을 버티게 하는 건 종종 “우리가 이길 수 있다”는 문장 하나다.
나는 이 영화를 보고 난 뒤, 뉴스나 여론의 흐름을 더 의심하게 됐다. 누군가를 ‘상징’으로 세우는 순간, 그 사람의 두려움과 망설임은 편집되기 쉽다. 영화 속 자이체프가 때때로 피로한 눈으로 주변을 훑는 장면이 좋았던 이유도 그 때문이다. 그는 영웅의 포즈를 취하기보다, 누군가의 기대를 견디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또 하나는 경쟁의 본질이다. 쾨니히와의 대치는 스포츠처럼 포장되지만, 그 승부의 배경에는 도시 전체의 죽음과 생존이 깔려 있다. 그래서 이 결투는 통쾌함보다 씁쓸함을 남긴다. 무엇을 이루기 위해 싸우는가, 그리고 그 ‘이룸’이 내 것이 맞는가. 영화는 답을 친절히 주지 않는다. 대신 전쟁이라는 극단에서, 인간이 신화를 필요로 하는 이유와 그 대가를 눈앞에 펼쳐 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