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작된 도시》는 한때 태권도 유망주였다가 부상 이후 게임에 파묻혀 살아가던 청년이 어느 날 하루아침에 살인범으로 조작되는 과정을 따라가는 액션 스릴러다. 상류층의 범죄를 덮기 위한 덫에 걸려 살인자의 누명을 쓴 주인공이 온라인 게임 멤버들과 함께 현실에서 파티를 꾸려 반격에 나서는 통쾌한 재미를 앞세운 작품이다.
개봉: 2017
감독: 박광현
장르: 액션, 범죄, 스릴러
출연: 지창욱, 심은경, 안재홍, 오정세 외
평점: 메타크리틱 Metascore 미집계 / 로튼토마토 신선도 71%
게임 속 캡틴, 현실에서 살인범이 되다
《조작된 도시》의 주인공 권유는 한때 국가대표를 꿈꾸던 태권도 유망주였다. 하지만 부상으로 선수 생활이 끊기면서 삶의 방향을 잃고, 지금은 PC방에서 게임에만 몰두하는 백수 청년으로 지낸다. 현실에서는 가진 것 하나 없는 무기력한 청년이지만, 온라인 게임 속에서 그는 전략과 판단력으로 팀을 이끄는 리더 “캡틴”이다. 화면 속에서만 통하는 이 화려한 능력은 아직 현실에 적용될 기회를 얻지 못한 채 공중에 떠 있는 상태다.
어느 날 밤, 익숙한 PC방에서 게임을 즐기던 권유는 옆자리에서 울리는 휴대전화 벨소리에 짜증을 내며 전화를 받는다. 수화기 너머의 여성은 자신이 묵고 있는 모텔로 휴대전화를 가져다 주면 사례비를 주겠다고 제안하고, 권유는 가벼운 마음으로 그 제안을 받아들인다. 모텔에서 짧은 만남을 마치고, 그는 별일 없었다는 듯 집으로 돌아와 잠이 든다. 그러나 다음 날, 집 문이 부서지듯 열리며 경찰이 들이닥치고, 권유는 미성년자를 잔혹하게 살해한 범인으로 체포된다.
수사와 재판은 놀라울 만큼 빠르게 진행된다. 피해자의 집에서는 권유의 지문과 혈흔이 묻은凶기가 발견되고, 모텔 CCTV에는 피해자 방으로 들어가는 권유의 모습이 선명하게 남아 있다. 그가 아무리 결백을 주장해도, 눈앞에 제시되는 증거들은 하나같이 그를 가리킨다. 법정은 이미 판결을 내려둔 듯 냉담하고, 권유는 마침내 무기징역을 선고받는다. 자신이 모르는 사이에 인생 전체가 ‘완벽하게 세팅된 범죄의 결과’로 정리되어 버리는 순간이다.

교도소 안에서 권유를 기다리는 것은 더 잔인한 현실이다. 그는 마약과 무기 밀매로 악명을 떨치는 조직 보스 마덕수의 타깃이 되어 끊임없이 폭행과 괴롭힘을 당한다. 태권도로 단련했던 몸은 버티는 데 도움이 되지만, 누명을 쓴 채 벗어날 수 없다는 절망감은 점점 그를 짓누른다. 감방 안에서 흘러가는 시간은 끝이 보이지 않는 형벌처럼 길게 늘어져 있다.
그러나 권유를 믿는 이들이 어디에도 없는 것은 아니다. 게임에서 함께 뛰던 멤버들은 온라인에서 함께했던 리더를 떠올리며 이상함을 감지한다. 그중 초보 해커 여울은 사건 당시 영상을 집요하게 되짚다가, CCTV와 통신 기록에 3분 16초라는 의문의 공백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마치 보이지 않는 손이 시간을 잘라내고, 그 빈틈을 이용해 누군가를 범인으로 만들어낸 것 같은 정황이다. 여울은 특수효과 전문가 데몰리션과 다른 멤버들을 소집해, 현실에서도 “레이드 파티”를 꾸리기 시작한다.
이들은 게임에서 익힌 역할을 현실에 맞춰 재배치한다. 영상과 음향을 조작해 눈을 속이는 데몰리션, 정보를 긁어오고 감시망을 회피하는 멤버들, 여울이 이끄는 해킹과 추적이 더해지면서 팀은 권유를 구출하기 위한 전면전을 준비한다. 치밀하게 계획된 작전 끝에 교도소 이송 과정에서 버스를 전복시키고, 혼란 속에서 권유를 빼내는 데 성공한다. 이제 권유는 수감자에서 도망자 신세가 되었지만, 동시에 진실을 향해 직접 뛰어들 수 있는 위치에 선다.
도망자 신분의 권유과 팀은 사건의 배후를 추적하며, 정교하게 조작된 여러 사건들 뒤에 항상 같은 로펌과 스타 변호사가 등장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겉으로는 사회 정의를 대변하는 듯한 이 엘리트 변호사는 거대한 자본과 연결된 빅딜을 성사시키기 위해 사람들을 ‘범인’으로 가공하는 일을 서슴지 않는다. CCTV와 통신 기록, 포렌식 데이터를 마음대로 뒤틀며, 불편한 존재를 제거하고 의뢰인의 요구를 들어주는 존재다. 이 인물은 단순한 악당이 아니라 시스템 자체를 장악한 빌런처럼 그려진다.
권유와 멤버들은 게임에서 보스전을 준비하듯 최종 작전을 세운다. 고층 빌딩에 자리한 로펌과 비밀 서버실에 침투해 조작의 증거를 끌어내고, 동시에 실시간 방송과 전광판을 통해 세상에 진실을 흘려보내려 한다. 빽빽한 모니터와 데이터 줄기가 얽힌 공간에서 추격과 접전이 벌어지고, 권유는 태권도로 다져진 몸을 활용해 좁은 복도와 계단에서 상대를 제압한다. 게임 속에서 함께 연습했던 팀플레이가 현실의 액션으로 구현되는 순간들이다.
결국 조작의 퍼즐은 맞춰지고, 빌런 변호사가 자신이 저지른 일과 배후 세력을 변명하다가 그대로 폭로되는 장면이 공개된다. 권유의 누명은 하나씩 벗겨지고, 교도소에서의 기록과 조작된 증거가 재검토되면서 그는 마침내 무죄를 인정받는다. 긴 수감 생활 끝에 다시 햇빛을 마주한 그는, 자신을 기다려준 어머니와 동료들을 보며 뒤틀렸던 시간이 서서히 제자리로 돌아오고 있음을 실감한다. 여울과 팀원들은 다시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지만, 그들을 이어준 게임 속 채팅창은 여전히 켜져 있다.
영화의 마지막은 영웅담이라기보다, 가까스로 되찾은 ‘평범한 일상’의 귀중함을 강조한다. 권유는 다시 태권도 도장을 찾고, PC방에서 함께 웃던 멤버들도 자기 삶의 자리로 돌아간다. 상처가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최소한 누군가 마음만 먹으면 아무나 범인으로 만들 수 있는 세상을 그대로 두지는 않겠다는 다짐이 그들의 눈빛에 남는다. 게임에서처럼, 진짜 세상에서도 한 번은 끝까지 싸워 봤다는 기억이 그들을 붙들어준다.
디지털 시대의 불안 위에 세운 게임식 액션
《조작된 도시》의 재미는 무엇보다 속도감에서 나온다. 인물의 과거를 길게 설명하기보다, 게임 화면과 현실을 교차해 보여주며 캐릭터의 성격과 관계를 빠르게 제시한다. 초반부 PC방 장면에서 보여주는 권유의 리더십과 팀원의 개성은, 이후 이들이 현실에서 어떤 방식으로 활약하게 될지 미리 예고하는 장치처럼 쓰인다. 감독은 게임 인터페이스, 시점 전환, 화면 분할 등을 적절히 활용해 관객이 “온라인 파티가 그대로 현실로 튀어나왔다”는 느낌을 받도록 만든다. 이렇게 구축된 리듬 덕분에 두 시간이 넘는 러닝타임이 비교적 가볍게 흘러간다.
액션 시퀀스는 당시 한국 상업영화에서 보기 드물었던 밀도와 스타일을 보여준다. 교도소 이송 버스가 전복되는 장면이나 도심 추격전은 단순한 볼거리를 넘어 공간을 입체적으로 활용하는 쾌감을 준다. 좁은 복도, 계단, 지하 주차장, 고층 빌딩의 유리벽 같은 요소들이 하나의 거대한 게임 맵처럼 활용되면서, 권유와 팀의 움직임이 레벨 디자인을 따라가는 캐릭터처럼 느껴진다. 과장된 와이어 액션과 타격감 있는 격투가 뒤섞여 조금 만화 같다는 인상을 줄 수도 있지만, 애초에 게임적 세계관을 전제한 영화이기에 이런 스타일은 오히려 작품의 색깔을 분명하게 만들어준다.
연기 역시 액션의 설득력을 뒷받침한다. 지창욱은 태권도 유망주 출신이라는 설정을 몸으로 증명하듯, 점프와 회전, 밀착 격투를 자연스럽게 소화하며 액션의 중심에 선다. 동시에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무너져 가는 청년의 감정선도 놓치지 않는다. 초반의 무기력, 교도소에서의 분노와 체념, 탈주 이후 진실을 향해 달려갈 때의 눈빛이 조금씩 달라진다. 심은경이 연기한 여울은 사회적 관계에는 서툴지만, 키보드를 두드릴 때만큼은 누구보다 자신감 넘치는 인물로 그려진다. 차분한 말투와 서늘한 시선 속에, 자신이 믿는 정의를 향해 나아가는 단단함이 숨어 있다.
조연 캐릭터들도 영화의 분위기를 조절하는 역할을 한다. 특수효과 전문가 데몰리션을 비롯한 팀원들은 자칫 무거워질 수 있는 서사를 중간중간 유머로 환기시키면서도, 위험한 작전을 마다하지 않는 의리를 보여준다. 이들이 보여주는 허술한 모습과 치밀한 계획이 교차할 때, 영화는 현실감과 만화적 과장이 독특하게 섞인 톤을 유지한다. 완벽하게 균형을 잡았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오락영화로서의 목표는 분명히 잡고 나아가는 인상이다.
무엇보다 눈에 들어오는 지점은 영화가 다루는 “조작”의 방식이다. 《조작된 도시》 속 악당은 사람을 직접 해치기보다는 기록과 데이터를 조정한다. CCTV의 특정 구간을 잘라내거나, 통신 기록을 변조하고, 포렌식 정황을 교묘하게 엮어 완벽한 범죄를 만든다. 이 설정은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환경과 그럴싸하게 맞닿아 있어 공포감을 주기도 한다. 모니터 속 숫자와 영상이 조금만 바뀌어도, 누군가는 평생 붙어 살 오명을 뒤집어쓸 수 있다는 불안이 영화의 바탕에 깔려 있다. 영화는 이 불안감을 진지한 고발로 끌고 가기보다, 과감한 액션과 과장된 서사를 통해 관객에게 카타르시스의 형태로 돌려준다.
연출의 장점만큼 단점도 분명하다. 다소 만화적인 전개와 과하게 치밀한 우연의 연쇄는, 현실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관객에게는 부담으로 느껴질 수 있다. 빌런 변호사가 모든 일을 뒤에서 조정하는 악의 화신처럼 그려지는 부분도 입체적인 드라마보다는 장르적인 쾌감을 위한 선택에 가깝다. 그러나 이 작품을 진지한 법정극이나 사회파 스릴러라기보다는, 현실의 공포 위에 게임 감각을 덧입힌 액션 오락물로 받아들인다면 이야기는 한결 매끄럽게 들어온다. 영화는 끝까지 ‘재미’를 최우선 가치로 두고, 그 위에 디지털 시대의 불안을 가볍게 얹어놓는 방식을 택한다.
결국 《조작된 도시》는 과감한 액션과 게임적인 연출, 디지털 조작이라는 동시대적 소재를 한데 엮어 만든 팝콘 무비에 가깝다. 촘촘한 서사보다 박진감 넘치는 장면과 아이디어를 앞세우지만, 누명을 벗고 일상을 되찾는 과정에서 느껴지는 작은 안도감이 영화를 끝까지 붙잡고 있게 만든다. 현실에서 답답한 일을 겪고 있을 때, 시원한 액션신과 함께 스트레스를 날려버리기 좋은 작품이다. 오락영화로서 필요한 요소를 충실히 갖추고 있어, 액션 장면만으로도 러닝타임을 채우고도 남는 인상을 남긴다.

《조작된 도시》는 디지털 시대의 불안과 게임 세대의 감각을 한데 섞어 만든 액션 오락영화다. 정교한 사회 비판보다 속도감과 쾌감을 우선시하지만, 누명을 쓰고도 끝내 포기하지 않는 주인공과 그를 믿어주는 동료들의 연대 덕분에 엔딩이 의외로 따뜻하게 다가온다. 머리가 복잡할 때 깊은 사유를 요구하는 작품 대신, 박진감 넘치는 액션과 시원한 반격 서사로 스트레스를 날려버리고 싶을 때 보기좋은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