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커》는 한 개인의 비극이 어떻게 사회적 폭력의 상징으로 변모하는지를 담아낸 작품이다. 고담이라는 음울한 도시를 배경으로, 점점 벼랑 끝에 몰리는 한 남자의 내면을 따라가며 사회 구조의 균열과 무관심이 어떤 파국을 낳는지를 예리하게 보여준다. 인물의 감정이 고스란히 스크린을 통해 전달되며, 우리는 어느새 아서 플렉이라는 이름 대신 조커라는 상징과 마주하게 된다.
개봉: 2019
감독: 토드 필립스
장르: 드라마, 범죄, 스릴러
출연: 호아킨 피닉스, 로버트 드 니로, 프란시스 콘로이, 자지 비츠
평점: 메타크리틱 59점 / 로튼토마토 신선도 69%
고담의 균열 속에서 깨어나는 그림자
아서 플렉은 코미디언을 꿈꾸지만 현실에서는 사회의 밑바닥을 떠도는 가장 약한 존재이다. 그는 생계를 위해 광대 일을 전전하며 매일 달라붙는 폭력과 조롱을 묵묵히 견딘다. 불규칙적으로 터지는 병적 웃음 때문에 오해를 받고, 공공장소에서도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야 하는 삶은 그를 점점 고립시킨다. 아서는 유일한 정서적 지탱대였던 정부의 상담 프로그램마저 예산 삭감으로 사라지자 더 이상 기댈 공간조차 잃는다.
그의 삶은 지하철에서 몇몇 남성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사건을 계기로 급격히 무너진다. 아서는 자신을 조롱하며 폭력을 휘두르던 이들을 향해 총을 발사한다. 이 사건은 처음에는 충동적인 자기방어에 불과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아서에게는 그동안 억눌려온 감정이 폭발하며 새로운 감각을 깨우는 전환점이 된다. 그는 공포가 아닌 이상한 해방감을 느끼고, 고담 거리에는 정체불명의 광대 살인 사건이 사회적 분노를 촉발시키는 불씨가 되어 퍼져나간다.

한편 아서는 자신이 믿어왔던 가족사조차 모래처럼 흐트러지는 경험을 한다. 어머니 페니가 말해온 친부의 이야기는 허구였으며, 그녀가 정신병원 기록에서 드러난 과거는 아서에게 피할 수 없는 충격을 남긴다. 자신의 존재 기반이 되어주던 신념이 무너지는 순간, 그는 더 이상 현실을 온전히 붙잡을 수 없게 된다.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은 갈수록 흐려지고, 웃음은 공포와 불안의 뒤엉킨 감정으로 변해간다.
아서는 마침내 자신이 꿈꿨던 인기 토크쇼의 무대에 오르게 된다. 그러나 그곳은 성공을 위한 무대가 아니라, 자신을 조롱거리로 사용하던 사회에 대한 응답의 장이 된다. 그는 생방송 중 자신의 죄를 고백하며 사회가 자신을 어떻게 밀어내고 파괴했는지 말한다. 그리고 충격의 선택을 감행하며, 고담의 혼란은 단순한 범죄를 넘어 대규모 폭동으로 번진다. 눈앞에 펼쳐진 혼돈 속에서 아서는 조커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다시 태어난다. 시민들은 혼란을 영웅화하며 그를 우상처럼 떠받들기 시작하고, 그는 자신이 마침내 인정받는 순간이 왔다고 믿는다. 이렇게 조커는 개인의 몰락이면서 동시에 고담이라는 도시의 병든 심장이 만들어낸 산물로 자리 잡는다.
혼돈이 비추는 사회의 민낯
이 영화는 악당의 탄생을 영웅서사처럼 다루지도 않는다. 대신 사회가 가장 약한 존재에게 어떤 식으로 책임을 전가하며 무관심을 정당화하는지를 날카롭게 그려낸다. 아서가 파괴되어 가는 장면 하나하나에는 도시의 잔혹함이 응축되어 있고, 개인이 버틸 수 있는 한계가 얼마나 얇은지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감상중에 고담이라는 도시가 아서를 조커로 만든 또 다른 주체라는 것이 생각났다. 무너진 복지 시스템, 부유층의 오만함, 약자를 향한 일상적 폭력, 공권력의 무관심 등 도시 전체가 균열을 품고 있었고 그 틈에서 아서의 고립감은 깊어졌다. 영화는 ‘악’이라는 개념을 한 개인의 성향이나 충동으로 단순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오히려 개인의 무너짐이 사회의 균열과 맞물릴 때 어떤 파장이 생기는지 보여주며, 죄와 책임의 경계를 더욱 복잡하게 만든다.
아서가 상담 프로그램 중단 통보를 받고 들었던 “너 같은 사람에게 신경 쓸 사람은 없어”라는 말은 영화 전체의 정서를 압축한다. 이 대사는 단순한 대화가 아니라, 사회가 얼마나 쉽게 약자를 외면하는지 보여주는 상징처럼 다가온다. 아서는 그 무심한 구조 속에서 계속해서 자신을 잃어갔고, 결국 분노와 절망이 결합하면서 폭력적인 방식으로 세상에 자신을 드러내게 된다. 그의 행동을 옹호할 수는 없지만, 그가 내몰렸던 환경을 돌아보면 영화는 악인의 탄생을 비판하기보다 사회가 만든 비극을 고발하고 있다.
영화 후반부 토크쇼 장면에서 이 메시지는 극대화된다. 아서는 자신을 비웃던 사회를 향해 질문을 던진다. “누구도 나를 알아보려 하지 않았다.” 이 대사는 조커가 아니라 인간 아서의 마지막 목소리처럼 들린다. 이는 악당의 선언이라기보다는, 방치된 개인의 절규에 가깝다. 방송국에서 벌어진 충격적인 사건 이후 고담의 시민들은 조커를 혁명의 상징으로 떠받들며 폭동을 일으킨다. 이것은 아서가 바라던 인정의 왜곡된 형태이면서, 사회 불만이 어떤 식으로 폭발하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하다. 조커의 내면에 자리하던 혼란이 도시 전체로 확장되며, 영화는 선과 악의 경계가 사라진 혼돈의 그림자를 길게 드리운다.
《조커》는 폭력의 원인을 단편적으로 규정하지 않으며 그 이면을 다층적으로 들여다본다. 아서의 광기와 고담의 붕괴는 서로를 비추는 거울처럼 작동하고, 관객은 어느 한쪽에만 책임을 묶어둘 수 없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깨닫게 된다. 영화는 결코 가볍게 소비될 수 없는 질문들을 던지며,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구조를 되묻게 만든다. 무엇이 한 사람을 벼랑 끝으로 몰았는가, 그리고 우리는 그런 비극을 어떻게 방치해왔는가. 이러한 질문이 스크린을 넘어 현실의 감각으로 전해지며 깊은 여운을 남긴다.
웃음이 끝난 자리에서 남겨진 질문
《조커》는 단순한 범죄 영화가 아니라 인간과 사회의 균열을 비추는 날카로운 거울이다. 영화는 약자가 홀로 무너지고 있을 때 사회는 어떤 방식으로 그 붕괴를 방조하는지 가감 없이 보여준다. 장면마다 담긴 공기, 거리의 침울한 색감, 아서의 불규칙한 호흡까지도 사회적 무관심의 잔혹함을 증언하는 듯하다. 결말에서 조커가 군중의 환호 속에 서 있는 모습은 승리의 순간이 아니라, 파국의 시대가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신호처럼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