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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윅(2015) 영화 리뷰 <액션 영화의 새로운 지평>

by dreamobservatory 2025. 11. 26.

영화-존윅-포스터
존윅 포스터

 《존 윅》은 사랑하는 아내를 잃은 남자가 마지막 선물로 받은 강아지를 이유 없이 빼앗기고, 잊고 지내던 과거의 세계로 다시 걸어 들어가는 이야기다. 건조한 감정선과 절제된 대사, 그리고 한 폭의 안무처럼 흘러가는 액션으로 현대 액션 영화의 기준을 새로 세운 작품이기도 하다.

개봉: 2014
감독: 채드 스타헬스키
장르: 액션, 스릴러, 네오 누아르
출연: 키아누 리브스, 미카엘 뉘크비스트, 알피 앨런, 윌렘 대포, 이안 맥셰인 외
평점: 메타크리틱 68점 / 로튼토마토 신선도 86%

죽지 않은 전설, 다시 총을 들다

 《존 윅》의 시작은 의외로 조용하다. 존은 이미 조직을 떠난 전직 전설적인 킬러로, 아내를 병으로 떠나보낸 뒤 넓지 않은 집에서 홀로 남은 일상을 견디고 있다. 그런 그에게 어느 날 택배 한 상자가 도착한다. 아내가 미리 준비해 둔 작은 강아지 데이지와 편지 한 장. “당신이 다시 사람답게 살아가길 바란다”는 메시지와 함께 찾아온 이 작은 생명은 존이 절망에서 겨우 숨을 쉬게 해 주는 마지막 버팀목이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존은 주유소에서 러시아계 조직 보스 비고의 아들 요세프 일행과 마주친다. 요세프는 존의 차를 탐내지만 존은 무심하게 거절하고 돌아선다. 그 밤, 요세프와 부하들은 존의 집에 침입해 차를 빼앗고, 데이지를 잔인하게 죽인다. 피투성이가 된 채 바닥에 쓰러져 있는 강아지의 몸과 피 자국을 따라가던 존은, 자신이 힘겹게 지켜 왔던 새로운 삶이 한순간에 무너졌음을 깨닫는다. 그가 다시 차고 안쪽의 콘크리트 바닥을 부수고 오래된 무기와 금화 상자를 꺼내는 장면은, 은퇴한 인간 ‘존’이 사라지고 조직이 두려워하던 ‘바바야가’가 돌아왔음을 선언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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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윅 스틸컷

 존의 복수는 단순한 개인적 감정의 분출로 끝나지 않는다. 《존 윅》의 세계에는 자신들만의 룰을 가진 암살자 지하 사회가 존재한다. 존이 찾는 호텔 콘티넨탈은 킬러들만의 중립 지대로, 그 안에서는 누구도 살인을 저지를 수 없다. 금화는 암살자들 사이에서 통용되는 특별한 화폐로, 무기 조달, 시체 처리, 의료 지원까지 모든 서비스의 대가로 사용된다. 존이 예전 인맥을 하나씩 다시 불러내며 금화를 건네고, 콘티넨탈의 규칙을 지키면서도 복수를 위해 움직이는 과정은 이 세계가 단지 배경이 아닌 하나의 조직된 생태계라는 것을 보여 준다.

 요세프의 아버지 비고는 이 일을 알게 되자 절망 섞인 분노를 터뜨린다. 그가 부하에게 들려주는 존의 과거는 이 영화 속 전설의 무게를 짐작하게 한다. 비고의 말에 따르면, 존은 “불가능한 일을 해낸 남자”이자 조직이 최고로 두려워하는 존재다. 그는 한때 비고의 부탁을 받아 단숨에 조직의 적들을 정리했으며, 그 대가로 사랑하는 사람과 평범한 삶을 얻었다. 이제 비고는 아들의 목숨을 위해 과거의 ‘동지’를 제거해야 하는 역설적인 상황에 놓이고, 조직 전체를 동원해 존을 사냥하기 시작한다.

 이후 존은 침입한 암살자들을 집 안에서 차분하게 처리하고, 콘티넨탈에서 만난 옛 동료 마커스와 애매한 동맹 관계를 유지하며, 나이트클럽과 교회, 항구 창고를 오가며 비고의 세력을 하나씩 무너뜨려 나간다. 특히 붉은 조명이 쏟아지는 클럽 ‘레드 서클’에서의 전투는 이 영화의 세계관과 액션 스타일을 한 번에 보여 주는 장면이다. 음악이 울려 퍼지는 사이, 존은 군중 사이를 빠져나가며 목표를 향해 직선적으로 파고든다. 군더더기 없는 동선, 머뭇거림 없이 이어지는 사격과 제압, 그리고 롱테이크에 가까운 촬영은 그가 어떤 존재인지 말보다 먼저 납득하게 만든다.

 비고 역시 쉽게 물러나지 않는다. 그는 존을 제거하기 위해 현상금을 걸고, 콘티넨탈의 규칙마저 깨고자 하는 무리수를 둔다. 규칙을 어긴 암살자가 어떤 처벌을 받는지, 그리고 암살자 사회에서 약속과 신뢰가 얼마나 중요한 가치인지가 후반부에 드러나면서 이 세계의 구조가 한층 명확해진다. 존과 비고의 마지막 대치는 화려한 군중 대신 빗속의 어두운 부두에서 벌어진다. 첫 장면에서 잃어버린 일상과 대비되게, 존은 다시 혼자가 된 채 끝까지 걸어 나간다. 그러나 영화는 허무함만을 남기지 않는다. 그는 또 다른 강아지를 입양하며, 아직 완전히 끝나지 않은 삶을 향해 천천히 걸음을 내딛는다. 복수극의 결말이자, 이 세계가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이라는 조용한 암시다.

롱테이크 액션과 암살자 세계의 매혹

 《존 윅》의 가장 큰 매력은 액션의 시선부터가 다르다는 점이다. 많은 현대 액션 영화가 빠른 편집과 흔들리는 카메라로 ‘속도감’을 만들어내는 반면, 이 작품은 롱테이크에 가까운 길고 선명한 숏을 선호한다. 관객이 존의 움직임과 목표, 주변의 위협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게 프레임을 구성하고, 그 안에서 총격과 격투가 끊기지 않고 흘러가도록 설계한다. 덕분에 액션 장면이 단순한 폭발과 소음의 연속이 아니라, 무용 같은 리듬감과 체스 한 판을 보는 듯한 전략성을 동시에 품게 된다.

 특히 ‘건 푸’라 불리는 총격과 격투의 결합은 《존 윅》이 만들어 낸 독특한 미학이다. 존은 거리를 조절하며 몸을 낮추고, 상대의 팔을 꺾어 균형을 무너뜨린 뒤 가장 가까운 부위에 빠르게 탄환을 꽂는다. 하나의 동작이 끝나기도 전에 다음 동작이 이미 준비되어 있고, 카메라는 이 흐름을 따라가며 피격과 전환을 숨기지 않는다. 이 과정에서 피 튀기는 폭력이 과시적으로 소비되기보다, 숙련된 기술의 결과처럼 담담하게 스크린에 남는다. 영화가 전반적으로 차가운 색감과 절제된 대사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이 건조한 폭력성은 오히려 더 강한 여운을 남긴다.

 이 액션을 뒷받침하는 것이 곧 세계관이다. 《존 윅》의 암살자 사회는 정교하게 드라마를 이끌어 간다. 콘티넨탈 호텔은 겉으로 보기에는 고급 호텔이지만, 실상은 전 세계 암살자들이 머무르는 중립 지대다. 그 안에서는 누구도 살인을 저지를 수 없고, 이 규칙을 깨는 순간 어떤 일도 용납되지 않는다. 이 공간의 바텐더와 컨시어지, 심지어 의사까지 모두 이 세계의 룰을 몸에 새긴 인물들이다. 관객은 존이 호텔에 들어서는 순간, 현실과는 다른 또 하나의 도시가 층을 이루고 있음을 직관적으로 이해하게 된다.

 또한 금화라는 통화 시스템은 이 세계의 경제 구조를 간단하면서도 명확하게 드러낸다. 존이 시체 처리 전문가에게 금화를 건네고, 무기 상인에게 금화를 맡기며, 콘티넨탈에서 숙박과 서비스를 이용할 때마다 같은 금화가 사용된다. 이 단순한 장치 덕분에 관객은 ‘암살자 사회 안의 경제’를 별다른 설명 없이도 받아들이게 된다. 총성과 폭력만 오가는 세계가 아니라, 협회와 규칙, 계약과 보증으로 유지되는 또 다른 사회라는 점이 자연스럽게 전해지는 셈이다.

 키아누 리브스의 연기는 이러한 세계관과 액션 스타일을 하나로 묶는 중심축이다. 그는 많은 말을 하지 않는다. 감정을 과장된 표정으로 드러내기보다, 무거운 숨과 움직임, 잠깐씩 일그러지는 눈빛에 감정을 담는다. 아내를 잃고 강아지를 품에 안고 누워 있던 장면에서, 그리고 다시 총을 들고 복수를 결심하는 장면에서 그의 표정은 크게 변하지 않지만, 그 미묘한 차이가 캐릭터를 설득력 있게 만든다. 격렬한 액션을 소화하면서도 감정선을 놓치지 않는 균형감이 이 영화의 큰 힘이다.

 무기 사용과 동선의 고증 역시 눈에 띈다. 존은 총을 쏠 때마다 수시로 탄을 확인하고, 상황에 따라 탄창을 갈아 끼운다. 엄폐물 뒤에 숨을 때에도 몸을 많이 노출하지 않으려는 훈련된 움직임이 자연스럽게 배어 있다. 이런 디테일은 관객에게 ‘이 남자는 진짜 오랜 시간 훈련해 온 전문 킬러’라는 인상을 심어 주며, 과장된 슈퍼 히어로가 아니라 인간의 몸으로 가능한 최고 수준의 움직임을 보여 주는 인물로 느끼게 한다. 액션 장면이 길어질수록 이 설득력은 더 견고해진다.

 서사 측면에서는 복수의 이유가 과도하게 거창하지 않다는 점이 오히려 장점이다. 《존 윅》은 국가나 인류의 운명을 걸지 않는다. 아내의 마지막 선물이었던 강아지, 그리고 함께하던 차를 빼앗긴 한 남자의 분노를 정면으로 대한다. 어떤 이에게는 사소해 보일 수 있는 동기가 존에게는 삶 전체의 의미였다는 점을 영화는 반복해서 상기시킨다. 그렇기 때문에 관객은 존의 복수에 자연스럽게 감정 이입을 하게 되고, 그가 한 발 한 발 전진할 때마다 심리적으로 함께 밀려 들어가는 경험을 하게 된다.

 결국 《존 윅》의 감상 포인트는 액션, 세계관, 캐릭터가 따로 노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증폭시키며 하나의 경험을 만든다는 데 있다. 롱테이크 위주의 담백한 액션은 세계관의 규칙성과 냉정함을 시각적으로 구현하고, 키아누 리브스의 절제된 감정 표현은 폭력 속에서도 지키고자 하는 존의 내면을 드러낸다. 영화가 끝난 후에도 관객의 머릿속에는 화려한 폭발 장면이 아니라, 어두운 복도에서 조용히 걸어 나오며 다시 세상과 마주하는 한 남자의 실루엣이 오래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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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윅 스틸컷

 《존 윅》은 단번에 이해하기 쉬운 액션 영화이면서도, 그 안에 다시 보고 싶은 장면과 디테일을 촘촘히 숨겨 둔 작품이다. 복수 서사의 쾌감, 독특한 암살자 세계관, 그리고 롱테이크로 펼쳐지는 세련된 액션까지 한 번에 경험하고 싶다면 이 영화만큼 확실한 선택도 드물다. 조용히 끓어오르는 분노와 담백한 총성의 리듬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관객 역시 존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게 된다. 스릴 넘치는 액션과 스타일리시한 연출을 좋아한다면, 《존 윅》은 분명 후회 없는 한 편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