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크리스마스는 ‘무엇을 하느냐’보다 ‘누구와 함께 있느냐’가 더 크게 남는 계절이다. 거리의 불빛이 조금 더 반짝이고, 집 안의 온도도 한 칸쯤 더 따뜻해지는 날. 그럴 때 가장 쉬우면서도 확실한 선택이 있다면, 바로 가족과 나란히 앉아 한 편의 영화를 보는 시간이다. 오늘은 부담 없이 즐기기 좋고, 세대가 달라도 함께 웃고 공감할 수 있는 크리스마스 분위기의 영화 5편을 골라 소개해본다. 웃음과 포근함, 그리고 ‘집’이라는 단어의 의미가 자연스럽게 번지는 작품들이다.
나 홀로 집에 (1990) 크리스마스의 ‘웃음 버튼’을 누르는 영화
이 영화는 크리스마스를 대표하는 풍경을 통째로 들고 온다. 눈 내린 교외의 집, 들뜬 가족들, 그리고 “아차” 싶은 실수 하나가 만들어낸 대소동. 케빈은 우연히 ‘홀로 남겨진 아이’가 되지만, 이야기는 불쌍함으로만 흐르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집을 지키겠다는 단단한 의지와 기상천외한 아이디어로 상황을 뒤집는다. 도둑들이 집에 들어오는 순간부터는 그야말로 웃음이 연쇄적으로 터지는 시간이다. 덫이 완벽하게 준비된 집 안은 케빈의 작은 전쟁터가 되고, 관객은 깔깔 웃다가도 어느 순간 마음이 말랑해진다.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케빈은 ‘가족이 귀찮은 존재가 아니라, 돌아갈 곳’이라는 걸 깨닫는다. 그래서 마지막의 재회가 더욱 뭉클하다. 크리스마스 영화가 주는 가장 기본적인 선물, 즉 “다시 함께하게 되는 기쁨”을 가장 명확하고 유쾌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패딩턴 (2014) 친절이 쌓이면 집이 된다
패딩턴은 ‘따뜻한 영화’라는 말이 가장 자연스럽게 어울린다. 낯선 도시 런던에 도착한 작은 곰이 한 가족을 만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는 복잡한 장치 없이도 풍성하게 마음을 건드린다. 패딩턴은 어설프고, 때로는 사고도 친다. 하지만 그 모든 순간마다 그는 진심을 잃지 않는다. 그 진심이 주변 사람들의 표정을 바꾸고, 거리의 공기를 바꾸고, 결국은 한 가족의 일상을 바꾼다. 크리스마스가 ‘함께 나누는 친절’의 계절이라면, 이 영화는 그 정의에 딱 들어맞는다. 무엇보다도 패딩턴이 만들어내는 웃음은 누군가를 깎아내리는 방식이 아니라, 조금 부족해도 계속 노력하는 존재가 주는 귀여움과 인간미에서 나온다. 그래서 아이들은 신나게 보고, 어른들은 편안하게 본다. 다름을 받아들이는 태도, 누군가의 실수를 기다려주는 마음, ‘집’이란 결국 누군가가 나를 맞아주는 공간이라는 메시지가 차분하게 스며든다. 자극적인 장면 없이도 충분히 재미있고, 보고 나면 이상하게 기분이 정돈되는 영화. 연말에 가장 필요한 감정, 바로 그 포근함을 품고 있다.
폴라 익스프레스 (2004) 믿음이 흔들릴 때, 종소리를 다시 듣는 시간
크리스마스를 매년 맞이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설렘의 온도’가 내려가는 때가 있다. 폴라 익스프레스는 바로 그 순간을 조용히 붙잡는 영화다. 산타를 믿지 않게 된 아이가 한밤중 신비한 기차에 올라타 북극으로 향한다는 설정은 동화처럼 시작하지만, 그 안에는 꽤 진지한 질문이 숨어 있다. “우리는 무엇을 믿으며 살아가는가?” 영화는 답을 강요하지 않는다. 대신 아이가 겪는 여정 자체가 하나의 힌트가 된다. 기차 안에서 만나는 친구들, 예측할 수 없는 사건들, 북극에 가까워질수록 커지는 두근거림은 ‘믿음이란 단어’가 단순한 환상이 아니라는 걸 보여준다. 특히 종소리의 상징은 오래 남는다. 누군가는 들리고, 누군가는 들리지 않는 소리. 결국 그 소리를 다시 듣기 위해 필요한 건 논리보다 마음의 방향일지도 모른다. 크리스마스 영화 특유의 환상적인 분위기와 함께, 어린 시절의 감각을 잠깐이라도 되살려주는 작품이다. 가족이 함께 보면 대화도 자연스럽게 생긴다. “너는 지금도 그런 걸 믿어?” 같은 질문이 부끄럽지 않게 오가는 것, 그 자체가 연말의 선물 같다.
찰리와 초콜릿 공장 (2005) 달콤함 속에 숨은 ‘가족의 온기’
이 영화는 보는 순간부터 화면이 ‘선물 포장지’처럼 느껴진다. 색감과 상상력이 넘치고, 설정은 기묘하면서도 매혹적이다. 하지만 찰리와 초콜릿 공장이 단순히 화려한 판타지로만 기억되지 않는 이유는 그 중심에 찰리의 가족이 있기 때문이다. 찰리는 가난한 환경에서도 무너지지 않는다. 그를 버티게 하는 건 돈이나 운이 아니라, 함께 사는 사람들의 온기다. 초콜릿 공장에 초대받는 사건은 인생이 뒤집히는 기회처럼 보이지만, 영화는 “기회가 온다고 사람이 바로 빛나는 건 아니다”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공장 안에서 벌어지는 여러 아이들의 일탈과 욕심은 재미있게 소비되면서도, 결국 관객에게 작은 거울이 된다. 반대로 찰리의 선택은 단정하다. 무엇을 얻고, 무엇을 지키겠는지 망설이지 않는다. 크리스마스 시즌에 이 영화가 더 반짝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가족’이란 테마를 교훈처럼 설교하지 않고, 초콜릿처럼 달게 녹여서 건네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상상력에 빠져들고, 어른들은 찰리의 결을 따라가며 마음 한쪽이 따뜻해진다. 가벼운 듯하지만 은근히 오래 남는, 연말에 딱 맞는 판타지다.
작은 아씨들 (2019) 연말에 어울리는 건, 결국 사람의 마음
작은 아씨들은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소란스럽게 끌어올리기보다, 조용한 난로 앞 같은 감정으로 다가온다. 네 자매가 각자의 꿈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하고 성장해 나가는 이야기는 화려한 사건보다 관계의 결을 세심하게 보여준다. 그래서 오히려 연말과 잘 맞는다. 크리스마스가 ‘가족이 모이는 날’이라면, 이 작품은 가족이라는 단어의 여러 얼굴을 보여준다. 다정함도 있고, 서운함도 있고, 사랑하지만 이해하기 어려운 순간도 있다. 그럼에도 결국 서로에게 돌아오게 되는 마음. 영화는 그 과정을 섬세하게 따라가며, 우리에게도 묻는다. “너는 어떤 어른이 되고 싶어?” 특히 시간이 흐르며 각자 다른 길을 걷는 자매들의 모습은, 연말에 한 해를 정리하는 관객의 마음과 닮아 있다. 누군가는 성취를, 누군가는 사랑을, 누군가는 독립을 꿈꾸며 흔들린다. 그 흔들림이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는 듯, 영화는 따뜻한 시선으로 인물들을 감싼다. 크리스마스에 꼭 ‘웃긴 영화’만 필요한 건 아니다. 조용히 공감하고, 다정해지고, 사람을 더 이해하게 되는 작품도 필요하다. 작은 아씨들은 그 역할을 아주 우아하게 해낸다.

연말이 다가오면 마음이 괜히 바빠지고, 해야 할 일도 늘어난다. 하지만 크리스마스의 진짜 매력은 속도를 잠깐 늦추고 여유롭게 지난 한해를 돌아보게 한다는데 있다. 오늘 소개한 5편 중 한 편만 골라도 충분하다. 소파에 기대어 같은 장면에서 웃고, 같은 대사에 고개를 끄덕이며, “우리 지금 꽤 괜찮은 시간 보내고 있네”라고 느끼는 것. 그게 크리스마스다운 순간일 테니까. 좋은 영화와 함께 포근하고 행복한 연말을 보내길, 그리고 올 한 해 수고한 마음이 조용히 위로받길 진심으로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