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터슨》은 뉴저지의 소도시에서 버스 운전사로 살아가는 한 남자의 일주일을 따라가는 이야기다. 거창한 사건도, 극적인 반전도 없다. 대신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시를 쓰고, 아내와 대화를 나누고, 개를 산책시키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삶이 담담하게 흐른다. 짐 자무쉬 감독은 이 소소한 일상 위에 삶의 리듬과 창작의 본질을 조용히 얹어놓는다. 이 영화는 무엇을 이루는가보다, 어떻게 살아가는가를 바라보게 만든다.
개봉: 2016
감독: 짐 자무쉬
장르: 드라마
출연: 아담 드라이버, 골시프테 파라하니
평점: 메타크리틱 83점 / 로튼토마토 신선도 96%
반복되는 하루, 조금씩 달라지는 마음
영화의 주인공 페터슨은 뉴저지의 도시 페터슨에 산다. 그의 이름과 도시의 이름은 우연처럼 겹치지만, 영화가 진행될수록 그것은 하나의 암시처럼 다가온다. 그는 매일 같은 시간에 눈을 뜨고, 같은 길을 걸어 출근하며, 같은 노선을 따라 버스를 운전한다. 동료와 나누는 짧은 인사, 버스 안에서 흘러나오는 승객들의 대화, 집으로 돌아오는 저녁의 공기까지 모든 것이 규칙적으로 반복된다. 그러나 그 반복은 지루함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하루하루가 미세하게 다른 결을 지니고 있음을 보여준다.
페터슨은 시를 쓴다. 그는 유명한 시인이 되려는 욕심도, 작품을 세상에 알리겠다는 계획도 없다. 출근 전 식탁에서, 점심시간에 앉은 벤치에서, 혹은 잠들기 전 노트에 짧은 문장을 적어 내려간다. 영화는 그의 시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소리 내어 보여준다. 그의 목소리로 낭독되는 시는 화면 위에 자막처럼 떠오르고, 관객은 그의 생각과 시선 속으로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성냥갑, 폭포, 평범한 물건과 풍경이 시의 언어로 변하는 순간, 일상은 새로운 표정을 갖는다.
그의 아내 로라는 페터슨과는 또 다른 에너지를 지닌 인물이다. 그녀는 집 안을 흑백 패턴으로 꾸미고, 컵케이크를 굽고, 기타 연주와 컨트리 음악을 꿈꾼다. 그녀의 하루는 늘 새로운 계획으로 가득 차 있다. 페터슨은 그런 아내를 말없이 응원한다. 과장된 애정 표현 대신, 조용한 경청과 신뢰로 관계를 유지한다. 두 사람의 대화는 길지 않지만, 그 사이에는 서로를 존중하는 공기가 흐른다. 이 부부의 모습은 영화 전체의 톤을 닮아 있다. 크게 흔들리지 않지만, 단단하게 이어진다.

퇴근 후 페터슨의 하루는 동네 바에서 마무리된다. 바에서는 늘 비슷한 얼굴들이 등장하고, 소소한 사건들이 반복된다. 누군가는 사랑을 고민하고, 누군가는 인생의 선택 앞에서 망설인다. 페터슨은 그 모든 이야기를 판단하지 않고 흘려듣는다. 그는 관찰자에 가깝다. 그렇게 하루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그의 개 마빈은 여전히 그를 반기지 않는다. 작은 갈등처럼 보이는 이 관계 역시 영화의 일부다. 결국 이 개는 페터슨의 노트를 찢어버리며, 그의 일상에 처음으로 큰 균열을 만든다.
노트를 잃은 순간, 페터슨은 분노하거나 절망하지 않는다. 그는 잠시 멈춰 서서, 상실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다음 날, 공원에서 만난 한 일본인 시인과의 대화는 그에게 새로운 시선을 건넨다. 시는 기록에 남지 않아도 존재할 수 있고,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믿음. 페터슨은 새 노트를 받아들고, 다시 걷기 시작한다. 영화는 그렇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듯, 그러나 분명 이전과는 다른 마음으로 끝을 맺는다.
일상을 바라보는 시선의 온도
《페터슨》은 서사적 긴장 대신 밀도 높은 관찰로 채워진 영화다. 짐 자무쉬 감독은 인물의 감정을 직접적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반복되는 일상과 사소한 대화를 통해, 인물의 내면을 천천히 드러낸다. 이 영화는 사건 그 자체보다 바라보는 태도를 중요시한다. 페터슨이 세상을 대하는 방식은 급하지 않고, 조용하며, 늘 한 발 물러서 있다. 그는 세상을 바꾸려 하지 않는다. 다만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기록한다.
영화 속 시는 삶의 축약본처럼 기능한다. 길지 않은 문장 안에 감정과 관찰이 담겨 있고, 그것은 삶의 속도와 닮아 있다. 시가 특별한 장소에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출근길과 점심시간, 산책 중에 탄생한다는 점은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과 맞닿아 있다. 창작은 선택된 사람의 전유물이 아니라, 일상을 살아가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는 메시지가 자연스럽게 전달된다.
아담 드라이버의 연기는 이 영화의 중심을 단단히 붙잡는다. 그는 과장된 감정 표현 없이도, 인물의 성격과 내면을 충분히 전달한다. 무표정에 가까운 얼굴, 느린 말투, 절제된 몸짓은 페터슨이라는 인물을 현실에 존재하는 사람처럼 느끼게 만든다. 그의 연기는 눈에 띄지 않지만, 영화가 끝난 뒤 가장 오래 남는다.
또한 《페터슨》은 성공이나 성취에 대해 다른 질문을 던진다. 페터슨은 유명해지지 않는다. 그의 시는 출판되지도, 평가받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그의 삶은 비어 있지 않다. 오히려 충만하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알고, 그것을 조용히 이어간다는 사실만으로도 삶은 충분히 단단해질 수 있음을 이 영화는 보여준다.
영화의 마지막에서 페터슨은 다시 노트를 펼친다. 처음으로 돌아간 것처럼 보이지만, 그 출발선은 이전과 다르다. 상실을 겪고, 타인의 시선을 만나고, 다시 쓰기로 선택한 순간은 분명 하나의 변화다. 변화는 언제나 요란하지 않다. 《페터슨》은 그 조용한 변화를 끝까지 놓치지 않는다.
조용히 살아가는 삶에 대하여
《페터슨》은 큰 울림을 강요하지 않는다. 대신 관객 각자의 속도로 다가온다. 이 영화를 보고 난 뒤, 많은 이들이 자신의 하루를 돌아보게 된다. 반복되는 출근길, 늘 같은 풍경, 별일 없는 하루. 그러나 그 안에 얼마나 많은 생각과 감정이 숨어 있는지, 이 영화는 조용히 일깨운다.
만약 화려한 이야기보다 잔잔한 리듬을 좋아한다면, 그리고 삶의 속도를 잠시 늦추고 싶다면 《페터슨》은 좋은 동반자가 되어줄 것이다. 이 영화는 보고 나서 무엇을 남기기보다,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묻게 만든다. 조용하지만 오래 남는 영화를 찾는다면 이 영화가 제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