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울의 움직이는 성》은 전쟁의 기운이 드리운 마법 세계에서, 스스로를 평범하고 볼품없다고 여기던 소피가 움직이는 성과 마법사 하울을 만나 자신의 진짜 모습을 발견해 가는 이야기다. 삐걱거리며 언덕을 오르는 성, 하늘을 가르는 비행선, 숨결이 느껴지는 소도시의 풍경 속에서 소피는 저주를 딛고 다시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운다. 미야자키 하야오 특유의 상상력과 정교한 작화 덕분에 성장담과 로맨스, 반전 메시지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며, 오래된 동화책을 다시 펼쳐 보는 듯한 포근함과 묵직한 여운을 동시에 선사하는 작품이다.
개봉: 2004년
감독: 미야자키 하야오
장르: 애니메이션, 판타지, 로맨스, 모험
출연: 치에코 바쇼, 기무라 타쿠야, 미와 아키히로, 가슈인 다쓰야 등(일본어 더빙 기준)
평점: 메타크리틱 82점 / 로튼토마토 신선도 88%
저주받은 노신사 아가씨의 움직이기 시작한 인생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주인공 소피는 번화한 마을 한가운데 있는 모자 가게에서 하루 종일 모자만 만들며 살아간다. 동생들에 비해 예쁘지도, 사교적이지도 않다고 스스로를 낮춰 보며, 가게 뒤편에 숨어 살듯 지내는 인물이다. 어느 날, 바깥 나들이를 나섰다가 하늘을 가르며 내려온 젊은 마법사 하울을 우연히 만나고, 잠시의 동행 속에서 소피는 자신도 모르게 설렘과 두근거림을 느낀다. 하지만 그 만남은 곧 불길한 방문을 부른다. 소피를 질투한 사막 마녀가 찾아와 그녀에게 끔찍한 저주를 걸고, 소피는 하룻밤 사이에 주름진 얼굴과 굽은 허리를 가진 할머니의 모습이 되고 만다.
갑작스러운 변화를 가족에게조차 털어놓지 못한 소피는 집을 떠나 광야로 향한다. 자신의 이름과 얼굴을 잃어버린 채 바람 부는 들판을 헤매던 소피 앞에, 목이 부러진 허수아비 하나가 폴짝폴짝 나타난다. 소피가 장난삼아 세워 준 이 허수아비는 신비로운 힘을 지닌 존재로, 소피를 낡고 거대한 철제 다리와 굴뚝으로 가득한 움직이는 성으로 이끈다. 그렇게 소피는 하늘을 떠다니는 기묘한 성의 문을 밀어 열며 새로운 삶의 문턱에 선다.

성 안에는 하울의 제자인 마르클과 성의 심장이자 난로 불꽃인 불꽃 마물 캘시퍼가 살고 있다. 소피는 자신을 ‘청소부’라고 소개하며 성에 눌러 앉는다. 캘시퍼는 소피의 저주를 눈치채고, 자신과 하울을 묶고 있는 계약을 풀어 준다면 소피의 저주도 함께 풀어 주겠다고 제안한다. 소피는 본래의 얼굴을 되찾고 싶은 마음과, 어딘지 불안정하고 상처투성이인 하울에게 점점 이끌리는 감정 사이에서 묘한 동요를 느끼며 성 안 곳곳을 쓸고 닦기 시작한다.
한편 세상은 전쟁의 기운으로 점점 어두워진다. 왕은 뛰어난 마법사들을 전선으로 내몰고, 하울 역시 소환장을 받는다. 그러나 하울은 전쟁에 나서기를 거부한 채, 여러 이름으로 신분을 숨기고 사람들을 돕기도 하고 장난을 치듯 하늘을 누비며 살아간다. 그는 자신을 쫓는 사막 마녀와 왕실 마법사 설리먼을 피해 도망치는 나약한 인물이면서, 동시에 매번 몸을 희생해 폭격기와 전쟁 마수들을 막아내는 모순적인 존재다. 날개 달린 괴조의 모습으로 변신할 때마다 인간성을 조금씩 잃어 가는 하울을 지켜보는 소피의 마음에는 연민과 애정이 차곡차곡 쌓여 간다.
하울을 대신해 왕에게 간청하러 간 소피는 자신을 “하울의 어머니”라고 속이고 궁전으로 들어간다. 그곳에서 설리먼은 사막 마녀의 마력을 빼앗아 무기력한 노인으로 만들어 버리고, 하울 역시 전쟁에 참여하지 않으면 같은 운명을 맞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그 순간 하울이 폭풍처럼 난입해 소피를 구해 내고, 둘은 설리먼의 눈을 피해 성으로 도망친다. 그 뒤로 움직이는 성은 소피의 고향과 연결되어 가족과 함께 지낼 수 있는 새로운 안식처로 재구성되지만, 동시에 전쟁의 폭격과 설리먼의 추격을 한 몸으로 맞는 거대한 방패가 된다.
거세지는 폭격 속에서 하울은 점점 더 괴조에 가까운 모습으로 변해 밤하늘을 배회한다. 소피는 하울을 지키기 위해 성의 마법 장치를 조정하다가 그만 성을 산산조각 내 버리고, 캘시퍼의 불까지 꺼트리는 위기를 맞는다. 성이 무너지는 혼란 속에서 소피는 반쯤 부서진 성의 조각에 매달린 채 시간의 통로로 빨려 들어가 하울의 과거를 목격한다. 어린 하울이 떨어지는 별 하나를 품에 안고, 자신의 심장을 그 별에게 내어주며 캘시퍼가 탄생하는 장면을 본 소피는 하울과 캘시퍼를 묶어 둔 비밀이 심장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현재로 돌아온 소피는 불꽃처럼 자꾸 사라지려는 하울의 심장을 다시 돌려주기 위해 필사적으로 손을 내민다. 사막 마녀는 욕심에 심장을 움켜쥐었다가 불길에 휩싸이지만, 소피의 간절함을 보고 결국 심장을 내어놓는다. 소피는 조심스럽게 그 심장을 하울의 가슴에 되돌려 주고, 하울은 긴 꿈에서 깨어나듯 눈을 뜬다. 그 순간 소피의 저주도 서서히 풀리며, 머리는 은빛으로 남아 있지만 얼굴에는 젊음과 생기가 돌아온다. 자신이 얼마나 사랑받을 만한 존재였는지, 그리고 이미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된 순간, 소피는 더 이상 거울을 두려워하지 않게 된다.
이야기의 끝에서 허수아비 턴립은 왕자의 모습으로 돌아와 전쟁을 끝내고 돌아가겠다고 말한다. 설리먼 역시 더 이상 전쟁을 이어 가지 않겠다며 물러난다. 하늘 위에서는 새롭게 재구성된 성이 구름 사이를 떠다니고, 그 위에서 소피와 하울, 마르클, 캘시퍼, 사막 마녀와 설리먼의 개 히엔이 함께 미지의 땅을 향해 나아간다. 소피가 다시 찾은 것은 젊은 얼굴뿐 아니라, 자신을 사랑할 용기와 함께 나아갈 동료들이라는 사실을 보여 주며 영화는 포근한 장면으로 마무리된다.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가르쳐 주는 마법 같은 성장담
《하울의 움직이는 성》을 보다 보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환상적인 배경과 움직이는 성의 독창적인 디자인이다. 산자락을 기어오르는 철제 다리, 우거진 들판을 배경으로 느릿하게 걸어가는 성의 모습은 마치 거대한 생명체를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굴뚝에서 피어오르는 연기와 덜컹거리는 내부 구조, 문 하나로 여러 도시를 오가는 설정까지, 지브리 특유의 손맛이 살아 있는 작화와 상상력이 화면 구석구석을 채운다. 여기에 조 히사이시의 경쾌하면서도 서정적인 음악이 더해지며, 움직이는 성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인물들과 함께 숨 쉬는 또 하나의 주인공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이 영화가 오래도록 사랑받는 이유는 아름다운 배경을 넘어, 소피라는 인물을 통해 ‘자기 인식’과 ‘자기 사랑’의 과정을 섬세하게 그려냈기 때문일 것이다. 소피는 처음부터 끝까지 특별한 영웅이 아니다. 오히려 자신을 꾸미는 데 서툴고,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을 부담스러워하는 평범한 청년으로 등장한다. 마녀의 저주는 그런 소피의 콤플렉스를 극단적으로 시각화한다. 할머니가 된 얼굴은 소피가 마음속 깊이 숨겨 두었던 자기 혐오의 반영이기도 하다. 흥미로운 점은, 소피가 하울과 함께 있을 때 혹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겠다고 결심하는 순간마다 얼굴이 잠시 젊어졌다가 다시 늙어 보이는 장면들이다. 외모를 바꾼 것은 마법이지만, 그 마법의 세기를 조절하는 것은 결국 소피 자신이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하울 역시 흥미로운 인물이다. 겉으로는 잘생긴 마법사이자 모두의 시선을 사로잡는 존재이지만, 실제로는 전쟁과 책임을 두려워해 도망치고, 자신의 머리 색 하나가 변해도 세상이 끝난 것처럼 절망하는 유약한 면을 지녔다. 겁 많고 자기 중심적인 마법사가 전쟁의 참상을 눈앞에서 목격하며 조금씩 타인을 위해 몸을 던지는 인물로 성장해 가는 과정에는, 전쟁이라는 거대한 폭력 앞에서 개인이 어떤 선택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미야자키 하야오의 오래된 질문이 담겨 있다. 하울이 괴조의 모습으로 변해 밤하늘을 헤매는 장면들은 판타지이면서 동시에 전쟁이 인간에게 들씌우는 괴물 같은 얼굴을 떠올리게 한다.
그 가운데서도 이야기를 끝까지 지탱하는 힘은 소피의 시선이다. 저주를 통해 겉모습이 바뀐 뒤, 소피는 오히려 하고 싶은 말을 거침없이 내뱉고, 성의 구조를 바꾸고, 하울을 향해 “이제 그만 도망치라”고 말할 정도로 주체적인 인물이 된다. 젊은 얼굴일 때보다 늙은 얼굴일 때 더 용감해지는 역설적인 모습은, 나이와 외모가 곧 자신감의 조건이라는 고정관념을 뒤흔든다. 자신을 사랑하지 못했던 소피가 하울과 동료들을 돌보며 점차 타인을 향한 사랑을 넓혀 갈수록, 그녀는 스스로도 깨닫지 못한 내면의 아름다움을 드러낸다. 결국 저주가 풀렸을 때도 머리카락이 은빛으로 남아 있는 설정은, 과거의 상처와 시간의 흔적을 지운다고 해서 진짜 치유가 되는 것이 아니라는 섬세한 메시지로 읽힌다.
지브리 작품답게 자연과 전쟁에 대한 시선 또한 놓칠 수 없다. 푸른 초원과 투명한 하늘, 골목마다 다른 표정을 가진 도시 풍경은 보는 것만으로도 여행을 떠난 듯한 기분을 선사한다. 그런데 그 위로 검은 연기를 뿜으며 날아가는 폭격기와 불덩이처럼 떨어지는 폭탄이 겹쳐지면, 화면은 곧장 불안감으로 가득 찬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는 전쟁의 이유나 승패를 설명하는 대사가 거의 없다. 대신 폭격으로 무너진 마을과 길을 잃은 난민, 밤하늘을 어지럽히는 화염을 통해 전쟁이 일상의 풍경을 어떻게 짓밟는지 보여 준다. 전쟁의 한가운데에서도 하울은 어느 한 편에 서지 않고 폭격기들을 방해하는 그림자 같은 존재로 남는데, 그 모호함 속에는 “어느 쪽이 옳은가”보다 “전쟁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닌가”라는 질문이 배어 있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연출은 이번에도 단순한 선악 구도가 아닌, 서로 다른 상처와 욕망을 지닌 인물들의 관계를 따라 흘러간다. 처음에는 공포의 대상으로 등장했던 사막 마녀가 후반부에는 허술하고 외로운 노인으로 변해 소피와 함께 식탁에 둘러앉는 모습, 설리먼이 완전히 악인으로 그려지지 않고 질서와 안정을 중시하는 권력자의 얼굴을 지닌 채 등장하는 점도 그러하다. 누군가를 완전히 악하다고 규정짓기보다, 서로 다른 선택을 하는 존재들이 한 공간에서 어울려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 이 작품의 특징이다. 이 세계관에서 진짜 마법은 주문이 아니라,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내미는 작은 손길과 식사를 함께 나누는 평범한 일상에 가깝다.
개봉한 지 20년이 훌쩍 지난 지금 다시 《하울의 움직이는 성》을 보면, 당시에는 미처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디테일들이 새롭게 다가온다. 성 안 곳곳에 놓인 생활 도구, 먼지와 기름때가 뒤섞인 주방, 빛의 방향에 따라 색이 미묘하게 달라지는 하늘의 표현까지, 손으로 그려낸 애니메이션의 힘이 얼마나 섬세한지를 새삼 느끼게 된다. 동시에 소피가 자신을 사랑하게 되는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영화가 나이를 먹지 않는다는 말이 무엇인지 실감하게 된다. 관객이 어느 나이에 이 영화를 보든, 그 순간의 고민과 상처를 비추어 볼 수 있는 거울 같은 작품이기 때문이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은 어린 시절 보았을 때와 어른이 되어서 보았을 때 다른 감상을 느낄 수 있다. 어린 시절에는 움직이는 성과 마법, 허수아비와 불꽃 마물의 기묘한 동행이 넋을 잃게 만들고, 어른이 되어 다시 보면 소피의 자기 혐오와 하울의 회피, 전쟁이 일상을 파괴하는 풍경이 훨씬 더 깊게 파고든다. 그 사이를 이어 주는 것은 결국 서로를 지키기 위해 한 걸음 더 나아가려는 마음이다. 스스로의 아름다움을 알아보지 못하던 소피가 하울을 통해, 그리고 자신이 선택한 행동을 통해 조금씩 당당해지는 과정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은근한 위로를 건넨다.
지브리 특유의 상상력 넘치는 연출과 유려한 애니메이션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디지털 기술이 아무리 발달해도, 손으로 그린 듯한 선과 질감에서 오는 따뜻함은 쉽게 대체되지 않는다. 마법 같은 배경과 사랑스러운 캐릭터, 자기 자신을 사랑하게 되는 한 소녀의 여정까지, 어느 계절에 보아도 마음 한구석을 환하게 밝혀 주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