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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질 결심(2022) 영화 리뷰 <이별을 준비하는 사랑의 방식>

by dreamobservatory 2025. 12. 21.

영화-헤어질-결심-포스터
헤어질 결심 포스터

 《헤어질 결심》은 한 형사의 의심에서 시작된 감정이 어디까지 흘러갈 수 있는지를 집요하게 따라가는 영화다. 범죄 수사라는 외피를 두르고 있지만, 이 작품이 진짜로 파고드는 지점은 진실보다 감정이고, 증거보다 마음의 방향이다. 박찬욱 감독은 사랑을 말하면서도 그것을 단정하지 않고, 이별을 다루면서도 감정을 정리해주지 않는다. 남겨진 것은 설명되지 않은 여운과, 쉽게 정의할 수 없는 선택의 흔적이다.

개봉: 2022
감독: 박찬욱
장르: 멜로, 로맨스, 미스터리
출연: 박해일, 탕웨이, 이정현
평점: 메타크리틱 85점 / 로튼토마토 신선도 94%

의심에서 시작된 감정의 방향

 산에서 추락사한 한 남자의 사건을 담당하게 된 형사 해준은 사건 현장에서 사망자의 아내 서래를 처음 마주한다. 남편의 죽음을 대하는 그녀의 태도는 일반적인 반응과는 거리가 있다. 눈물도, 분노도, 과장된 슬픔도 없다. 그 미묘한 어긋남은 해준의 시선을 오래 붙잡는다. 그는 직업적 직감으로 서래를 의심하지만, 그 의심은 점차 설명하기 어려운 관심으로 변해간다.

 해준은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는 형사다. 불면의 밤마다 그는 사건을 곱씹고, 스스로를 단련하며 살아간다. 그런 그의 일상에 서래의 존재는 조용히 스며든다. 조사라는 명분으로 그녀의 일상을 들여다보고, 미행이라는 이유로 그녀의 공간을 공유한다. 그 과정에서 해준은 서래의 언어와 침묵, 어색한 한국어 발음과 표정의 결을 하나씩 기억하게 된다.

 서래는 늘 경계 위에 서 있다. 진실을 말하는 듯하다가도 결정적인 순간에는 한 발 물러선다. 그녀는 자신의 감정을 정확히 드러내지 않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숨기지도 않는다. 해준은 그녀의 말보다 말하지 않는 부분에 더 끌린다. 그렇게 사건은 수사의 대상에서 감정의 계기로 변하고, 해준은 형사로서의 시선과 한 사람으로서의 마음 사이에서 균형을 잃기 시작한다.

 첫 번째 사건이 정리된 이후에도 두 사람의 관계는 끝나지 않는다. 장소가 바뀌고, 새로운 사건이 시작되지만, 이미 형성된 감정의 궤적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두 번째 사건은 더 직접적이고, 더 깊은 선택을 요구한다. 이때부터 《헤어질 결심》은 범죄의 진실을 밝히는 이야기에서, 감정을 어디까지 책임질 수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이동한다.

 해준은 끝내 자신의 감정을 정확한 언어로 표현하지 못한다. 대신 행동과 침묵으로 선택을 남긴다. 서래 역시 마찬가지다. 그녀는 사랑을 증명하려 하지 않고, 감정을 붙잡으려 애쓰지도 않는다. 두 사람은 서로를 향해 다가가지만, 동시에 멀어질 준비를 하고 있는 인물들이다. 그렇게 영화는 만남보다 이별에 가까운 방향으로 천천히 흘러간다.

말하지 않는 감정, 흔들리는 시선

 이 영화가 특별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감정을 설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인물들은 자신의 마음을 길게 토로하지 않고, 결정적인 순간에도 감정을 명확히 정의하지 않는다. 대신 시선, 호흡, 침묵이 감정의 무게를 대신한다. 박찬욱 감독은 관객에게 감정을 이해시키기보다, 감정의 흐름 속에 그대로 머물게 만든다.

 카메라는 인물의 얼굴에 집요하게 머무르거나, 반대로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다. 가까워졌다가 멀어지는 이 리듬은 해준과 서래의 관계를 그대로 반영한다. 특히 서래를 바라보는 해준의 시선은 늘 경계와 연민, 호기심과 책임감이 뒤섞여 있다. 그는 자신이 무엇을 보고 있는지조차 확신하지 못한 채, 시선을 거두지 못한다.

헤어질-결심-스틸컷-남자와-여자
헤어질 결심 스틸컷

 탕웨이는 서래라는 인물을 극도로 절제된 방식으로 표현한다. 그녀의 표정은 거의 변하지 않지만, 미세한 눈빛의 흔들림과 말끝의 리듬이 감정을 전달한다. 박해일 역시 감정을 드러내기보다 억누르는 연기로 해준의 내면을 설득력 있게 구축한다. 두 배우의 연기는 부딪히지 않고, 서로를 조심스럽게 스쳐 지나가며 긴장을 만든다.

 영화의 후반부로 갈수록 감정은 설명될 기회를 잃는다. 선택만 남고, 그 선택의 결과는 관객에게 맡겨진다. 마지막 장면에서의 바다와 모래, 사라지는 시선은 감정의 종착지라기보다, 감정이 더 이상 도달할 수 없는 지점을 상징한다. 그 장면은 슬픔을 강요하지도, 해석을 유도하지도 않는다. 그저 남겨진 여백 속에서 관객이 스스로 감정을 정리하도록 한다.

 《헤어질 결심》은 사랑을 완성하지 않는다. 대신 사랑이 완성되지 못한 채 남을 때 어떤 흔적이 남는지를 보여준다. 그 흔적은 아프지만, 동시에 조용하고 아름답다. 영화는 끝났지만, 감정은 쉽게 끝나지 않는다. 그 점이 이 작품을 오래 붙잡게 만든다.

이별을 선택한 사람들의 마지막 거리

 이 영화의 제목은 상황을 단순히 설명하고 있지 않다. 이별은 감정이 사라져서가 아니라, 감정을 더 이상 유지할 수 없다고 판단했을 때 선택된다. 해준과 서래는 서로를 향한 감정을 부정하지 않지만, 그 감정을 지속하는 것이 옳은지에 대해서는 끝내 확신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의 선택은 도피가 아니라 결단에 가깝다.

 《헤어질 결심》은 이별 이후의 삶을 보여주지 않는다. 대신 이별을 결심하는 순간의 무게를 충분히 담아낸다. 감정을 끝내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책임지는 방식으로서의 이별. 그 선택이 얼마나 조용하면서도 잔혹한지를 이 영화는 끝까지 놓치지 않는다.

 《헤어질 결심》은 감정을 소비하거나 강요하지 않는다. 대신 감정을 존중한다. 쉽게 이해되지 않는 사랑, 설명되지 않는 이별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면, 이 작품은 충분히 추천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