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호빗: 다섯 군대 전투》는 작은 존재였던 한 호빗이 거대한 전쟁의 한가운데에 서게 되는 마지막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드래곤의 죽음 이후 찾아온 평화는 오래가지 않고, 금과 권력을 둘러싼 탐욕이 중간계를 뒤흔든다. 이 거대한 혼란 속에서 빌보는 누구보다 작고 연약한 몸으로 가장 무거운 선택을 떠안는다.
개봉: 2014
감독: 피터 잭슨
장르: 판타지, 모험, 전쟁
출연: 마틴 프리먼, 이안 맥켈런, 리처드 아미티지, 리 페이스, 올랜도 블룸
평점: 메타크리틱 59점 / 로튼토마토 신선도 59%
금빛 왕국에 드리운 불길한 침묵
스마우그의 죽음으로 에레보르에는 마침내 평화가 찾아온 듯 보인다. 그러나 그 평화는 오래 머물지 않는다. 드래곤이 지키던 금은 이제 누구의 것도 아니게 되었고, 그 순간부터 탐욕은 얼굴을 드러낸다. 난쟁이 왕 소린은 조상의 왕좌를 되찾았다는 환희에 취하지만, 동시에 금에 사로잡혀 점점 변해간다. 빌보는 그 변화를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본다. 처음 만났을 때의 당당함과 고결함은 사라지고, 의심과 집착이 그의 눈빛을 채운다.
에레보르의 재건 소식은 곧 주변 종족들에게도 전해진다. 인간의 도시 레이크타운은 스마우그의 분노로 폐허가 되었고, 바드와 시민들은 살아남기 위해 난쟁이들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엘프 왕 또한 에레보르의 보물에 대한 오래된 권리를 주장하며 군대를 이끌고 나타난다. 각자의 명분은 달라 보이지만, 그 중심에는 모두 금이 있다. 이들이 서로를 향해 칼을 겨누는 동안, 진짜 위협은 어둠 속에서 조용히 다가오고 있다.

빌보는 점점 더 불안해진다. 전쟁이 벌어질수록 자신이 이 여정에 함께한 이유를 되묻는다. 그는 금을 위해 떠난 적도 없고, 영광을 위해 싸우겠다고 약속한 적도 없다. 다만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고, 친구들을 잃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 결국 빌보는 소린이 가장 집착하는 아르켄스톤을 몰래 손에 넣는다. 그것은 배신처럼 보일 수 있는 행동이었지만, 빌보에게는 피를 막기 위한 마지막 수단이었다.
빌보는 바드와 엘프 왕 앞에 나서 아르켄스톤을 협상 카드로 내민다. 이 장면에서 그는 처음으로 전쟁의 흐름을 바꾸는 중심에 선다. 작고 평범한 호빗이 왕과 군대 사이에 서서 목숨을 담보로 평화를 말한다. 소린은 분노하지만, 그 분노 속에는 자신이 얼마나 깊이 금에 잠식되었는지에 대한 두려움도 섞여 있다. 그러나 대화의 가능성은 오래가지 못한다. 오크와 워그의 대군이 모습을 드러내며, 선택의 여지는 사라진다.
다섯 군대의 전투는 순식간에 중간계를 뒤덮는다. 난쟁이, 인간, 엘프, 오크, 워그가 뒤엉켜 싸우는 전장은 혼란 그 자체다. 빌보는 전투의 한가운데서 기절하고, 깨어났을 때는 이미 수많은 희생이 지나간 뒤다. 전투의 끝에서 소린은 죽음을 앞두고 비로소 자신의 잘못을 깨닫는다. 그는 빌보에게 용서를 구하고, 우정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었다는 말을 남긴다. 빌보는 끝내 왕좌도, 금도 아닌 친구를 잃는다.
작은 선택이 남긴 큰 흔적
이 영화의 중심에는 거대한 전투보다 한 인물의 내면이 있다. 《호빗: 다섯 군대 전투》는 스펙터클한 전쟁을 전면에 내세우지만, 진짜 이야기는 그 전쟁을 막고 싶어 했던 한 호빗의 마음에 머문다. 빌보는 누구보다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 그는 칼을 들고 적을 쓰러뜨리는 대신, 위험을 감수하고 말로 해결하려 한다. 이 태도는 전투 영화에서 보기 드문 용기다.
빌보의 선택은 늘 손해처럼 보인다. 아르켄스톤을 내놓는 순간 그는 난쟁이들의 신뢰를 잃고, 어느 편에도 속하지 못한 존재가 된다. 그러나 빌보의 이러한 선택은 한가지 질문을 불러 일으킨다. 진정한 용기란 무엇인가. 상대를 쓰러뜨리는 힘인가, 아니면 모두를 살리기 위해 욕심을 내려놓는 결단인가. 빌보는 후자를 택한다. 그의 행동은 즉각적인 보상을 가져오지 않지만, 전쟁 이후에도 오래 남는 질문을 던진다.
소린의 변화 역시 이 작품을 깊게 만든다. 그는 탐욕에 잠식된 인물이지만, 끝내 스스로를 되찾는다. 죽음을 앞둔 순간에야 진실을 마주하는 그의 모습은 비극적이면서도 인간적이다. 빌보의 존재는 소린에게 거울과도 같다. 작은 친구가 끝까지 지키려 한 가치를 보며, 소린은 자신이 무엇을 잃고 있었는지 깨닫는다. 이 장면은 왕의 몰락이 아니라 인간의 회복으로 다가온다.
전투 장면은 압도적인 규모를 자랑하지만, 영화는 그것에만 집중하지 않는다. 혼란스러운 전장 속에서 누구도 완전한 승자가 되지 않는다. 많은 이들이 쓰러지고, 그 위에 남는 것은 침묵과 상실이다. 빌보가 전투를 기억하는 방식 역시 다르다. 그는 영광의 순간보다 잃어버린 얼굴들을 떠올린다. 이 시선 덕분에 영화는 판타지 전쟁을 넘어선다.
결국 빌보는 집으로 돌아온다. 샤이어의 평화로운 풍경은 여전히 따뜻하지만, 그는 더 이상 예전의 호빗이 아니다. 세상은 넓고, 욕망은 위험하며, 그 속에서도 지켜야 할 것이 있다는 사실을 그는 몸으로 배웠다. 《호빗: 다섯 군대 전투》는 성장담의 마지막 페이지에서 화려한 승리가 아닌 조용한 성찰을 남긴다. 그리고 그 여운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전쟁이 끝난 자리에서 남은 이야기
이 작품은 거대한 판타지 세계의 마무리이자, 작은 존재가 보여줄 수 있는 가장 큰 선택에 대한 이야기다. 모든 인물이 각자의 욕망과 판단으로 움직이는 가운데, 빌보는 끝까지 사람을 먼저 생각한다. 그래서 그의 여정은 화려하지 않지만 깊다. 집으로 돌아온 뒤에도 그는 그날의 선택을 잊지 않는다. 그리고 관객 역시 묻게 된다. 만약 우리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었을지.
《호빗: 다섯 군대 전투》는 완벽한 영화는 아닐지 모른다. 그러나 이 영화가 전하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세상을 바꾸는 것은 언제나 가장 강한 존재가 아니라, 가장 양심적인 선택을 한 이들이다. 전쟁과 탐욕의 한복판에서 빌보가 보여준 태도는 지금의 우리에게도 유효하다. 판타지라는 외피를 벗겨내도, 이 이야기는 여전히 현실적이다. 호빗 3부작의 마지막 장을 장식하는 이 작품은 단순한 결말이 아니라, 긴 여정에 대한 정리이자 질문이다. 화려한 전투와 함께 남는 조용한 울림을 느끼고 싶다면, 이 영화는 충분한 가치가 있다. 끝까지 남아 빌보의 선택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스스로의 기준을 돌아보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