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성에 혼자 남겨졌다. 식량은 부족하고 지구와의 통신은 끊겼다. 당장 무엇을 해야할까? 여기서 와트니가 한 선택은 감자를 심는 것이다.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와트니는 자신이 가진 식물학 지식을 활용해 감자를 키워 구조대가 올 때까지 버틸 식량을 마련하고 희망의 끊을 놓치 않으며 지구로의 귀환을 준비한다. 《마션》은 과학을 기반으로 한 픽션 위에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인간의 강인한 마음을 보여준다.
개봉: 2015
감독: 리들리 스콧
장르: SF, 어드벤처, 드라마
출연: 맷 데이먼, 제시카 차스테인, 치웨텔 에지오포, 제프 대니얼스, 크리스틴 위그, 마이클 페나
평점: 메타크리틱 80점 / 로튼토마토 신선도 91%
혼자 남은 사람에게 남는 건 계산뿐
화성 탐사 임무 아레스 3는 거대한 모래폭풍을 만나 철수를 결정한다. 대피 과정에서 우주비행사 마크 와트니는 안테나 파편에 맞고 실종되며, 팀은 그가 사망했다고 판단한 채 떠난다. 와트니는 기적적으로 생존하지만, 통신 장비는 망가졌고 식량은 한정돼 있다. 그는 자신이 남은 보급품으로 버틸 수 있는 시간을 계산하고, 다음 임무인 아레스 4가 도착할 때까지의 생존 계획을 세운다.
가장 먼제 해결해야 할 문제는 식량이다. 와트니는 기지 내부를 온실로 개조하고, 남겨진 감자를 재배하기로 한다. 문제는 물과 비료, 그리고 화성 토양의 조건이다. 그는 장비와 화학 지식을 동원해 물을 만들어내고, 제한된 자원으로 재배 환경을 꾸린다. 그러다 예기치 못한 사고로 기지가 파손되며 수확이 날아가고, 그는 다시 생존 시간을 계산해 계획을 수정한다. 그 과정에서 그는 비상용 탐사차를 장거리 이동용으로 개조하고, 통신을 복구하기 위해 오래된 패스파인더 탐사선을 찾아내 NASA와 다시 연결된다.
지구에서는 NASA가 와트니 생존 사실을 확인하고 구조 방안을 마련한다. 보급선을 급히 발사하지만 실패하고, 시간은 더 촉박해진다. 그때 중국의 로켓 기술을 포함한 국제 협력이 대안으로 거론되고, 동시에 와트니의 동료들은 자신들의 임무를 포기하는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돌아가 구조하겠다고 결정한다. 마지막 작전은 와트니가 폭발성으로 기체를 가볍게 만들고, 우주복을 활용해 우주 공간에서 동료들과 접선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위험천만한 시도 끝에 와트니는 동료들의 손에 의해 구출되고, 임무는 무사히 마무리된다.
유머로 숨을 고르는 서바이벌, 리들리 스콧의 톤 컨트롤
《마션》을 다시 보며 가장 먼저 떠올랐던 건 “긴장을 오래 끌지 않는 연출”이었다. 리들리 스콧은 위기의 순간마다 감정의 과열을 선택하지 않는다. 대신 장면을 기능적으로 분해해 관객이 상황을 이해하도록 만든다. 와트니의 비디오 로그는 그 전략의 핵심이다. 관객은 그의 독백을 통해 ‘정보’를 받고, 표정과 호흡을 통해 ‘상태’를 읽는다. 이 구조 덕분에 영화는 재난의 스케일을 키우면서도 한 사람의 일기처럼 친밀하게 다가온다.
촬영은 화성의 광활함을 강조하는 와이드 샷과, 실내에서 압박감을 주는 클로즈업을 번갈아 배치해 리듬을 만든다. 특히 거주지 내부 장면은 프레임을 꽉 채운 장비, 튜브, 패널들로 인해 숨 쉴 틈이 줄어든다. 반대로 화성 외부는 수평선이 길게 열리며 ‘자유’가 아니라 ‘고립’을 더 크게 보이게 한다. 제작진이 요르단 와디 럼 사막 로케이션과 부다페스트 대형 세트에서 화성 지형을 구현했다는 이야기를 알고 나니, 그 질감이 왜 그렇게 현실적으로 느껴졌는지 납득이 갔다. 흙의 입자감이 화면에서 살아 있고, 햇빛의 방향이 일정해서 다큐멘터리처럼 보이는 순간이 많다.

시나리오는 앤디 위어의 원작이 가진 “문제 해결 퍼즐”의 쾌감을 살리되, 영화 문법에 맞게 속도를 조절한다. 계산과 실험을 늘어놓기만 하면 강의처럼 되기 쉽지만, 《마션》은 실패를 필수 이벤트로 배치해 긴장 곡선을 만든다. 보급선 폭발, 기지 감압, 통신 복구의 시행착오가 연속적으로 이어지면서도, 와트니의 농담과 디스코 음악이 숨 쉴 틈을 만들어준다. 이 유머는 캐릭터를 가볍게 만들기보다, 캐릭터가 무너지지 않게 지탱하는 버팀목처럼 기능한다.
평단의 반응도 이 지점을 짚는다. 로튼토마토의 평론가 지수는 91퍼센트로 높은 편이고, 메타크리틱도 80점으로 안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특히 “과학적 디테일과 대중적 재미의 균형”이 자주 언급된다. 개인적으로는 그 균형이 ‘정확함’만이 아니라 ‘편집의 결단’에서 나온다고 느꼈다. 와트니가 수학과 공학으로 버티는 과정을 다 보여주지 않고, 결정적인 선택과 결과를 중심으로 커팅해 리듬을 살린다. 그래서 2시간이 넘는 러닝타임인데도 체감은 훨씬 가볍다.
《마션》은 2016년 골든글로브에서 작품상 코미디 또는 뮤지컬 부문, 남우주연상을 수상해 분류 논쟁까지 만들었고,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작품상 포함 여러 부문 후보에 올랐다. SF가 ‘기술 쇼케이스’로만 소비되지 않고, 대중 영화의 중심 무대로 들어올 수 있다는 걸 보여준 사례로 기억된다.
버티는 기술은 결국 사람을 향한다
이 영화가 좋았던 이유는 “혼자서 살아남는 법”을 말하면서도 결론이 “혼자서는 끝까지 갈 수 없다”로 도착하기 때문이다. 와트니는 화성에서 철저히 개인의 두뇌와 손으로 버틴다. 그런데 그 생존이 의미를 얻는 순간은, 지구의 사람들이 그를 위해 계산을 시작할 때다. NASA의 회의 장면이 건조하게 흘러가도 마음이 뜨거워지는 이유는, 그들이 감정으로 설교하지 않고 숫자와 절차로 애정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살리기 위해 문서를 만들고, 궤도를 계산하고, 예산을 설득하는 일은 현실에서 가장 진한 형태의 책임일지도 모른다.
개인적으로 가장 오래 남는 장면은 와트니가 “오늘의 문제”를 정리하듯 카메라 앞에서 계획을 말하는 순간들이다. 나도 살다 보면 막막한 시기가 오는데, 그럴 때 머릿속에서 문제를 ‘작게’ 쪼개는 습관이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체감한다. 《마션》이 제일 현실적인 위로를 주는 방식은 바로 그거다. 거대한 미래를 한 번에 해결하려 하지 말고, 지금 당장 가능한 한 칸의 선택지를 만들라는 메시지. 그리고 그 선택지는 대단한 결심이 아니라, 어제보다 조금 덜 망가진 오늘을 만드는 작업에 가깝다.
또 하나, 영화는 낙관을 감정으로 밀어붙이지 않는다. 낙관은 태도가 아니라 기술처럼 보인다. 자료를 찾고, 실험을 기록하고, 실패의 원인을 분석하고, 다시 시도하는 과정이 낙관을 ‘증명’한다. 그래서 영화를 보고 나면 마음이 들뜨기보다, 책상 앞에 앉아 내 문제를 노트에 적어보고 싶어진다. 기적을 기다리는 대신, 기적이 오기 전까지의 시간을 설계하는 사람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