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17》은 참혹한 1차 세계대전 속, 두 병사에게 주어진 단 하루의 임무를 따라가며 전장의 숨결을 생생하게 담아낸 작품이다. 끝없이 이어지는 참호와 폐허가 된 마을을 통해 전쟁의 잔혹함을 체감하게 만들고, 한 병사가 수백 명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여정은 보는 이의 심장을 조여온다. 영화는 롱테이크 연출과 사실적인 사운드를 통해 전장을 직접 걷는 듯한 몰입감을 선사한다.
개봉: 2019
감독: 샘 멘데스
장르: 전쟁, 드라마
출연: 조지 맥케이, 딘 찰스 채프먼, 콜린 퍼스, 베네딕트 컴버배치
평점: 메타크리틱 78점 / 로튼토마토 신선도 89%
전쟁의 틈새에서 태어난 마지막 희망
1917년 봄, 참호전이 길어지던 어느 날. 영국군 사령부는 독일군이 퇴각하는 듯 위장하며 대규모 매복을 하고있다는 정보를 입수한다. 본부는 전면 공격을 준비 중인 두 번째 대대를 즉시 철수시키기 위한 명령서를 전달해야 했고, 이 막중한 임무는 스코필드와 블레이크라는 두 병사에게 맡겨진다. 블레이크에게는 더 절박한 이유가 있었다. 그 공격에 참여할 부대에는 그의 형이 있었다. 병사들과 형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스코필드와 블레이크는 힘겨운 여정을 떠난다.
두 병사는 지하 참호의 축축한 흙냄새와 죽음의 잔해가 남은 폐허를 지나며 천천히 전선 너머로 향한다. 처음부터 전장은 그들에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무너진 참호 속에서 시체를 밟고 지나가는 순간이나, 총알이 스치는 듯한 긴장감은 관객을 즉시 그 세계로 끌어당긴다. 블레이크는 낙관적이고 따뜻하지만 스코필드는 한 번 죽음의 위기를 겪었던 경험 때문에 모든 것을 경계한다.

두 사람에게 곧 비극이 찾아온다. 추락한 비행기에서 나온 독일 병사를 도우려다 블레이크가 치명상을 입는다. 스코필드는 손을 떨며 그를 안고 있고, 햇빛조차 차갑게 느껴지는 그 자리에서 블레이크는 형을 부탁하며 조용히 숨을 거둔다. 이 순간 영화는 전투의 잔혹함보다도, 전쟁이 개인에게 끼치는 절망적 상실을 부드럽지만 깊게 전달한다.
스코필드에게는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다. 메마른 호흡을 정리한 뒤, 동료의 죽음을 짊어지고 다시 전선 깊숙한 곳으로 달려간다. 강물이 들끓고 총성이 이어지는 마을을 지나며 그는 끊임없이 뛰고 또 뛴다. 빛이 거의 닿지 않는 폐허 속, 총구의 섬광이 그림자처럼 순간적으로 그를 비추는 장면은 마치 악몽의 한 장면처럼 느껴진다.
마침내 목적지에 도착한 스코필드는 혼란 속에서도 장교들을 설득해 공격을 중지시키고, 수백 명의 병사의 목숨을 구해낸다. 그는 블레이크의 형을 찾아 동생의 유품과 마지막 말을 전한다. 형은 충격과 슬픔을 삼키며 그 소식을 받아들이고, 스코필드는 고요한 나무 아래 앉아 잠시 숨을 고른다. 이 짧은 순간은 전장을 살아나온 인간에게 허락된 유일한 쉼표처럼 보인다.
총성과 침묵 사이에 선 인간의 용기
《1917》의 감상은 거대한 전쟁을 바라보는 영화적 시선과, 한 인간에게 집중된 카메라의 집요함이 조화를 이루며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가장 먼저 다가오는 것은 영화의 촬영 방식이다. 마치 끊김 없이 이어지는 것처럼 보이도록 설계된 롱테이크는 단순한 기술적 과시가 아니라 전장을 직접 걷는 듯한 체감의 중심에 놓여 있다. 스코필드의 발걸음 하나하나가 관객의 시선과 감정에 그대로 전달되며, 화면은 그가 보는 순간 그대로의 현실로 확장된다.
특히 기억에 남는 장면은 폐허가 된 마을에서 펼쳐지는 야간 시퀀스다. 불꽃이 하늘로 솟아오르고, 저 멀리에서 들려오는 총성은 스코필드를 끝없이 몰아간다. 빛이 그림자를 찢고 사람의 실루엣이 타오르는 도시 위로 묻혀 들어갈 때, 영화는 말보다도 강력한 공포와 아름다움을 동시에 만들어내며 전쟁이라는 공간의 불안정한 감정을 고스란히 체감하게 한다.
영화는 거대한 역사적 사건을 강조하기보다 한 명의 인간이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이유에 집중한다. 스코필드는 슈퍼 히어로가 아니다. 그는 지쳐 쓰러지고, 총알을 피해 숨고, 고통스러운 현실을 온몸으로 견디는 사람이다. 그러나 블레이크의 유언을 품고 다시 일어서는 순간부터 그는 단순한 전달자가 아니라 생명을 향해 나아가는 의지 그 자체가 된다. 이 지점에 영화의 감정적 무게가 실리며, 전쟁 속에서도 인간이 어떤 모습을 지켜낼 수 있는지를 조용하지만 단단하게 보여준다.
음악과 사운드는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이다. 침묵에서 터져 나오는 울림, 발밑을 가르는 흙의 마찰음, 먼 거리의 포격 소리는 단순한 배경음이 아니라 전장을 숨 쉬게 만드는 리듬처럼 작동한다. 특히 마지막 돌격 전투 직전에 등장하는 음악은 스코필드의 감정과 관객의 심장을 하나로 묶어 놓으며, 영화가 가진 몰입의 절정으로 이끈다.
끝없이 이어지는 참호 너머로
《1917》은 전쟁을 스펙터클하게 비추지 않는다. 오히려 그 잿빛 공간을 지나가는 개인의 발걸음에 집중하며, 죽음이 일상이던 시대에 누군가가 지켜내려 했던 작은 약속의 의미를 끝내 밝혀낸다. 영화는 관객에게 묻는다. 만약 우리가 그 순간에 서 있었다면, 무엇을 선택했을까. 인간은 잔혹한 시대에도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서로를 믿고,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앞으로 나아간다는 사실을 스코필드의 여정을 통해 느끼게 한다.

전쟁 영화의 새로운 형태를 완성한 작품이자, 한 사람의 용기를 세밀하게 조명한 《1917》은 강렬한 체험과 함께 묵직한 울림을 남긴다. 시각적 완성도와 감정의 깊이가 한데 어우러진 이 작품은 시간이 지나도 쉽게 잊히지 않을 것이다.